당진제철소에는 '정몽구 강철 리더십' 보인다

진상현 서명훈 김태은 박종진 기자 2010.04.08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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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주 두번꼴 수시방문...'아버지의 꿈' 15년만에 완성

지난 7일에도 헬리콥터가 양재동 현대기아차 본사 상공에 날아올랐다. 현대제철소 준공식을 하루 앞두고 정몽구 회장이 당진을 향하는 길이었다. 4년째 1주일이 멀다하고 오가던 길이다.

악천후로 헬기가 뜨지 않으면 자동차로 달려갔다. 토요일 임원회의를 하다가 갑자기 '제철소 현장을 둘러보고 싶다'며 떠난 것도 여러 번이다. 비가 쏟아지는 날에도 공사장 곳곳을 누비며 점검하고 또 점검했다. 지난해에만 64번, 올 들어 벌써 20번째다. 매 주 두 번 꼴이었다.



제철사업은 '정몽구 리더십 사전'이나 다름없다. 그의 모든 것이 녹아있다. 수차례 좌절에도 포기하지 않는 뚝심, 기회가 왔을 때 놓치지 않는 과감한 결단력, 사무실보다 현장을 중시하는 관리능력, 친환경 등 사회적 관계도 소홀히 하지 않는 책임감 등이 모두 스며있다.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지난 2008년 8월 현대제철의 당진 일관제철소 친환경 핵심설비인 밀폐형 원료처리시설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정 회장은 전 세계 일관제철소 최초로 도입되는 밀폐형 원료처리시설의 완벽한 시공을 강조하며, 녹색경영 실천을 당부했다.<br>
↑정몽구 현대·기아차그룹 회장이 지난 2008년 8월 현대제철의 당진 일관제철소 친환경 핵심설비인 밀폐형 원료처리시설 건설현장을 둘러보고 있다. 정 회장은 전 세계 일관제철소 최초로 도입되는 밀폐형 원료처리시설의 완벽한 시공을 강조하며, 녹색경영 실천을 당부했다.


"제철(일관제철소) 사업을 꼭 시작할 것입니다." 1995년 말 옛 현대그룹 회장으로 취임한 뒤 첫 신년사에서 제철 사업 진출을 선언했다. 부담스러운 일이었다. 아버지인 정주영 명예회장도 이미 20년 가까이 노력했지만 결실을 맺지 못하고 있던 터였다.



정주영 회장은 지난 1977년 현대제철주식회사 설립안을 만들었으나 박정희 대통령 재임당시 제2제철 사업권이 포항제철(현 포스코)로 가면서 실패했고, 1994년 제3제철 사업을 하겠다고 선언하지만 정부의 '공급 과잉론'에 막혔다.

아버지도 못다 이룬 꿈이었으나 정 회장은 취임후 '일관제철소 프로젝트'를 밀고 나갔다. 당시 현대그룹 종합기획실내 '종합제철사업 프로젝트팀장을 맡았던 이계안 부사장은 정 회장에게 특명을 받아 추진했다. 하지만 정부는 그해 11월 다시 공급과잉론을 내세워 제철 사업 참여를 허락하지 않았다.

정 회장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있던 1997년 7월 제철사업 추진 의지를 다시 밝혔다. 지역 여론도 큰 도움이 됐다. 현대그룹과 경남지역 관민 합동으로 이뤄진 가두 서명운동에서 280만 명이 서명, 서명록 분량이 2.5톤 트럭 3대에 달했다.


한보철강 부도로 '공급 과잉론'이 수그러들던 그 해 10월 경남과 하동 갈사만에 고로제철소를 건립하겠다는 내용의 기본합의서를 체결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외환위기가 발목을 잡았다.

정 회장의 의지는 더 강해졌다. 현대차그룹은 2004년 충남 당진의 한보철강을 인수했다. 포스코와의 경쟁이 치열했었다. 입찰 마감 하루 전날 김원갑 하이스코 사장이 8000억 원대 입찰가격을 정 회장에게 보고했지만 정 회장은 "이 가격으론 안된다"며 9100억 원대로 직접 고쳐 썼다. 뚜껑을 열자 포스코도 비슷한 가격을 써 낸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가격 외에 할인율과 근로자 고용 조건에서 나은 점수를 받은 현대차그룹이 극적으로 승리했다.



정 회장은 인수 후 울산 보다 당진을 더 자주 방문할 정도로 공을 들였다. 품질개선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마침내 2006년 1월 충청남도로부터 당진 일관제철소 건설을 승인받았다. 정 회장의 '제철사업 의지'가 꼭 10년 만에 결실을 맺는 순간이었다.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던 2008년 하반기 복병이 나타났다. 금융위기가 불어 닥친 것이다. 현대기아차그룹에 우려의 눈길이 쏠린 것은 당연했다. 일관제철소 건설에 6조원이 넘는 투자금을 쏟아 붓고 있었기 때문이다. 98년 외환위기로 제철소 건설이 무산된 기억이 떠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공사가 진행됐다. 한 철강업계 관계자는 "정 회장은 주위 참모들이 제철 사업과 관련된 우려에 대해서는 단 한마디도 꺼내지 못하게 했다"고 전했다.

제철소 건설은 정 회장에게 끊임없는 결단을 요구했다. 평소 공장 청결을 강조하던 정 회장은 제철소에서 발생하는 비산 먼지를 방지할 친환경 제철소를 건설키로 결정했다. 철광석 유연탄 등 원료를 맨땅에 쌓아두지 않고 밀폐형 실내 저장고에 보관하고 재료의 운반도 밀폐형으로 설계하면 먼지가 날리지 않는 제철소를 구현할 수 있었다. 이를 위해 전체 투자비 6조2300억 원의 8~9%를 투입했다.



정 회장은 "자동차 경쟁력은 강판에 달려 있다"고 늘 강조해 왔다. 자동차 강판을 만들 수 있는 열연 강판을 당진에서 직접 생산할 수 있게 되면서 자동차 사업의 '수직 계열화'를 완성하게 됐다. GM의 부진과 토요타의 몰락이란 기회를 맞고 있는 현대기아차에게 또다른 터보엔진이 추가된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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