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 공정거래, 국제수준에 맞춰 리스크 줄여야"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배혜림 기자 2010.04.07 09: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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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조계 고수를 찾아서]법무법인 태평양 오금석 변호사

근대화 이후 정부가 주도해 온 산업정책은 1980년대 국내 산업을 보호하기 위한 통상정책을 거쳐 최근에는 완전경쟁 시장을 실현하려는 방향으로 진화하고 있다. 시장에서 '보이지 않는 손'이 제대로 작동하려면 공정경쟁이라는 질서가 확립돼야 한다.

기업이 운동장에 선 선수라면 공정거래법은 그 경기의 룰과 같은 셈이다. 룰이 공정하게 적용되면 경기의 승패는 오로지 선수의 능력에 달려있다. 이런 관점에서 공정거래법은 경제적 강자의 지위남용을 막고 약자에게 경쟁기회를 보장해 주는 '게임의 법칙'이라고 할 수 있다.



↑법무법인 태평양 오금석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 ⓒ배혜림 기자↑법무법인 태평양 오금석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 ⓒ배혜림 기자


법무법인 태평양의 오금석(46·사진) 변호사는 "공정거래를 또 다른 형태의 규제라고 오인하는 기업들도 있지만 자원을 효율적으로 배분해 경제정의를 실현한다는 점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독점 사업자의 지위 남용을 막고 능력 있는 후발 사업자가 경쟁에 동참할 수 있도록 시장 환경을 만들어야 정부의 경쟁정책도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정거래나 공정경쟁으로 이익을 내는 것이야말로 기업의 노블리스 오블리주(noblesse oblige)를 실현하는 방법 중의 하나일 겁니다. 인위적인 시장 진입 장벽을 만들지 않으면 후발 사업자도 시장에 들어와 자유롭게 경쟁하게 됩니다. 시장은 자유롭고 공정한 환경을 통해 자연스레 만들어져야 합니다."



◇기업거래 '포렌직'으로 관리한다
우리 기업은 과거 정부의 산업보호정책 우산 속에서 온실 속 성장을 해 온 측면이 있다. 하지만 우리 경제는 이미 선진국 대열에 들어서 글로벌 경쟁에 직면해 있다. 반도체 등 세계에서 독보적인 위치에 있는 산업분야에 대해서는 경쟁국의 감시도 철저해지고 있다. 선진국의 공정거래 기준은 우리보다 엄격하다. 국제적인 수준에 맞춰 리스크를 줄여야 하는 이유다.

오 변호사는 우리 기업이 국제경쟁에서 이익을 창출하려면 의사결정 구조와 거래형태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사소한 계약서 하나를 작성할 때도 국제 공정거래 기준을 염두에 둬야 한다"며 "경쟁사 정보를 수집하거나 경쟁사와 거래를 하는 경우, 나아가 공동사업체를 설립하는 등 경영적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 엄격한 법률적 검토와 조언을 받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공정경쟁연합회가 기업 스스로 공정거래를 준수토록 하는 자율준수프로그램(CP)을 시행하고 있지만 국제기준에 맞춘 실질적인 시스템이 도입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오 변호사는 국내 최초로 기업의 거래활동을 과학적으로 관리하는 '포렌직'(Forensic) 기법을 도입했다. 기업의 의사결정 과정을 세세하게 해부, 각 단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위험요소를 찾아내는 방식이다.


"포렌직은 기업의 업무 과정에서 해야 할 행동과 하지 말아야 할 행동(Do & Don'ts)을 알려줍니다. 누가 누구를 만나고 무슨 얘기를 해야 하는 지까지 가르쳐주죠. 행동 매뉴얼을 핸드북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언제 어디서든 펼쳐 볼 수 있습니다."

포렌직을 도입한 기업의 반응은 뜨겁다. 리스크를 사전에 줄이기 위해 이보다 효과적인 방법은 없다는 평가다.

"기업 공정거래, 국제수준에 맞춰 리스크 줄여야"
◇이론과 실제 모두 꿰뚫어
2004년 법복을 벗고 공정거래 전문 변호사로 나선 오 변호사는 풍부한 회계지식을 갖춰 의뢰인으로부터 이론과 실제를 꿰뚫고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특히 기업의 내부 의사결정 구조를 정확하게 파악해 '맞춤 해법'을 제공하는 것은 오 변호사만의 강점이다.

오 변호사는 공정거래법 제19조 5항의 위헌을 주장한 대한제강의 담합 사건을 가장 기억에 남는 사건으로 꼽는다. 담합 행위를 규정하기 위해서는 가격 인상이라는 외형상 일치 외에도 정황증거(plus factor)를 제시하도록 법률 개정을 이끌어 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대한제강이 2002~2003년 5차례 철근가격을 인상하자 다른 철강사와 담합했다는 이유로 과징금을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했다. 대한제강은 독자적인 경영판단에 따라 가격을 올렸다고 주장했고, 검찰은 증거불충분으로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그러나 서울고법은 다른 철강업체와 같은 시기에 가격을 인상한 행위가 외형상 일치하고 경쟁제한성이 있다는 이유로 담합 혐의를 인정했다. 공정거래법 19조5항은 '사업자들이 담합을 약정한 명시적 합의가 없는 경우에도 부당한 공동행위(담합)를 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공정위가 담합 증거를 찾아내는 게 아니라 사업자가 담합에 참여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도록 한 것이다.

오 변호사는 해당 조항이 자기책임의 원리에 위배된다는 점을 들어 위헌제청을 신청했다. 그는 당시 "마녀 사냥이 횡행했던 중세시대에 악마가 아니라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도록 하는, 이른바 '악마의 입증'과 다름없어 죄를 진 것으로 의심을 받으면 무죄를 입증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

결국 공정위는 선진국의 입법체계와 비교해 문제가 있음을 인정하고 2007년 8월 해당 조항을 개정했다. 대법원 역시 대한철강 사건에서 담합 행위가 일부 인정되지 않는다는 취지로 파기환송했다.

◇"경쟁 저해하는 규제 없애야"
오 변호사는 공정거래 분야에서 한국이 아시아에서 최선진국이라고 자부하지만 일부 법적 절차에 대해서는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불공정거래 조사 단계에서 변호인의 조사 참여권이 확대되고 조사대상 기업과 피해 기업의 진술기회가 충분히 보장돼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심판기일 이전에 시간적 여유가 부족하고 심판정에서의 변론이나 증거조사에서 방어권을 충분하게 받지 못하고 있다는 불만이 많다"며 "장기적인 측면에서 심판과 조사기관의 분리도 고려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기업 스스로도 불필요한 규제를 완화시키려는 노력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고 당부했다. 구조조정이나 기업 인수·합병(M&A)이 기업의 성장수단으로 활용되고 있는 요즈음 지나친 규제는 오히려 경쟁을 저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오 변호사는 "기업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규제 완화를 요청하거나 새로운 법률을 만들어 달라는 입법청원을 하지 않아 아쉽다"며 "기업성장에 장애가 되는 각종 규제를 정리하는 것도 경쟁 속에서 승리할 수 있는 방법 중 하나"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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