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여 년 전에 3곳 장관을 모두 지낸 사람이 기획원과 재무부 및 상공부 장관의 특성을 묘사한 말이다. 경제기획원과 재무부는 통합돼 기획재정부가 되고(재무부의 핵심이었던 이재국은 금융위원회로 독립) 상공부는 동력자원부를 흡수통합해 지식경제부가 된지 오래여서 이런 말 자체가 고색창연하게 느껴진다. 파워가 약해져 ‘젊고 유능한 관료’가 스스로 관가를 떠나는 요즘에는 특히 그렇다.
김중수 한은총재에게 놓여진 과제
그만큼 힘 있고 화려하고 화려한 자리에 김중수 전 OECD 대사가 취임했다. 김 총재는 지금 원하던 대학에 합격한 신입생에 버금가는 행복을 느낄 것이다.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은 자신감도 있고, 어떤 문제든 해결하겠다는 의욕도 강할 것이다.
하지만 김 총재의 앞에 놓여 있는 과제는 쾌도난마식으로 해결하기가 쉽지 않은 난제들이다. 시중의 과잉유동성을 주식 및 부동산 등 자산가치의 급락을 초래하지 않으면서 흡수하는 것, 글로벌 금융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큰 폭으로 인하했던 금리를 정상수준으로 올리는 일이 당장 해결해야 할 과제다. 물가와 환율의 안정을 통한 통화가치 유지와 경제를 회복시키는 일도 미룰 수 없다. 7개월 앞으로 다가온 G20정상회담의 의장국 총재로서 참여국의 첨예한 이해관계를 조정해 함께 추진해야 할 어젠다를 설정하는 과제도 만만치 않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이런 과제를 의식한 듯 김 총재는 “시장의 평가와 실제의 나는 다를 것”(지난달 29일 귀국하면서)이라고 밝혔다. 유력하게 거론되던 후보들을 제치고 어부지리(漁父之利)했다는 평가를 의식한 것으로 보여진다.
한은총재는 권력보다 역사를 상대로 일해야
시장평가와 다른 김 총재는 이런 과제를 어떻게 풀어나갈 수 있을까? ‘스마트(SMART) 총재’가 가이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전략적이며(Strategic) 시장중심적으로(Market oriented) 예술적(Artistic)으로 접근함으로써 존경(Respect)을 받고 대전환(Transformation)을 이루는 게 그것이다. 열린 마음과 참여로 소통을 원활히 함으로써 시대에 뒤떨어져 약효가 떨어진 과거의 정책에서 벗어나 100년만의 위기를 효과적으로 극복하기 위한 새로운 정책을 발굴하는 데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
이번 위기를 겪으면서 한국은 저성장 저고용 저소비라고 하는 ‘뉴 노멀(New Normal)'에 빠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뉴 노멀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정부와 기업 등이 함께 노력해야 하지만, 한은의 역할도 매우 크다.
이명박 대통령은 31일 김 총재에게 임명장을 주면서 “한국은행 독립성도 중요하고, 대한민국 경제 전체를 보고 일하는 것도 중요하다”고 당부했다. 독립이라는 한은이 스스로 만들어 놓은 덫에서 벗어나 국민경제라는 보다 큰 틀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통화정책을 펴는 ‘고독한 결정’이 필요하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진다. 한은독립과 국민경제의 조화를 이뤄내야 하는 과제까지 떠안은 셈이다.
권력은 짧고 역사는 길다. 취임 첫날을 맞는 김중수 신임 한은총재는 4년 뒤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그리고 그 후에 어떤 평가를 받을 것인지를 항상 잊지 않고 업무할 때 스마트한 총재로 기록될 것이다. 화려하고 영예로우며 힘 있는 총재로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