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이vs친박 잘못된 '권력관'… 자중지란 결말은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2010.02.22 16:12
글자크기

[정치야놀자]나누는 권력 vs 배제하는 권력… 권력에 대한 과대평가에서 자유롭게

친이vs친박 잘못된 '권력관'… 자중지란 결말은


#중국 고대 은나라(상나라)의 시조인 탕왕은 명재상 이윤에게 전권을 맡겼다. 국체(國體;나라의 동량. 덕-법-술을 겸비한 최고 인재)의 능력을 지닌 이윤을 전폭적으로 신뢰해 권력까지 일임했다. 이윤은 탕왕의 믿음을 바탕으로 새로운 가치와 비전을 세웠고 하 걸왕을 응징하고 건국 일등공신이 됐다.

하지만 탕왕을 이은 태갑은 탕왕을 본받지 않고 방탕했다. 이윤은 여러 번의 간언 끝에 태갑을 탕왕이 묻힌 동 땅에 보내 반성토록 했다. 임금의 잘못을 물어 유배보낸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윤의 본심을 의심했지만 결국 3년이 지나 이윤은 새 사람이 된 태갑을 모시러 갔고 비로소 왕의 자리에 올랐다.



탕왕과 이윤은 "권력은 나눌 수 없다"는 관례를 일찌감치 벗어난 인물이다. 바탕에는 믿음이 있었다. 고대 인물인 두 사람은 권력에 대한 길이 남을 모범을 남겼다.

#금호아시나아그룹은 '형제 승계'라는 아름다운 전통이 깨지며 해체위기를 맞았다. 고 박성용 명예회장은 고 박정구 회장의 능력을 인정해 총수의 권한을 넘겼다. 고 박정구 회장은 금호타이어의 중국 진출 등 그룹의 글로벌화를 적극 추진하며 성과를 올리는 듯 했다.



하지만 금호아시아나항공의 심각한 유동성 위기가 발목을 잡았다. 상호채무보증 및 출자로 그룹 전체가 흔들렸다. 강직하고 자존심이 강했던 박정구 회장은 세상을 등졌고 3남인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명예회장이 뒤를 이었다.

4남인 박찬구 전 석유화학 부문 회장은 이런저런 이유로 형에 맞서 화학부문의 계열분리를 시도했다. 하지만 박 명예회장은 동반 퇴진이란 초강수를 뒀고 박 전 회장을 그룹 경영에서 쫓아냈다. 하지만 그것은 겉모습이었을 뿐 박 명예회장은 그룹 경영에 전진배치된 최측근들을 통해 사실상 총수권한을 유지할 수 있었다. 절치부심한 박 전 회장은 그룹이 '승자의 저주'에 걸려 고통받는 과정에서 채권단으로부터 금호석유화학 회장으로 복귀해도 좋다는 허락을 받아냈다.

이전 회장들의 '아름다운 권력관'이 아래로 내려가지 못한 것은 금호그룹의 슬픔이다. 박 명예회장과 박 전 회장은 서로를 불신했고 "상대방을 지워야 한다"는 낡은 권력관에 의존했다. 결국 두 사람은 서로를 지우려다 스스로의 입지를 크게 줄이는 화를 자초했다.


#한나라당 내부의 친이(친이명박)계와 친박(친박근혜)계는 낡은 권력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당권 나아가 대권을 놓고 한치 양보없는 갈등양상을 보이고 있다 .

두 계파의 다툼 이면에는 상대방을 향한 '지우기 전략'이 자리잡고 있다. 세종시를 놓고 벌어지는 수정안 관철 대 원안 고수라는 이분법적 구도는 잠재갈등의 현재화일 뿐이다.

친이 쪽은 미래비전을 강조하고 친박은 신뢰를 말한다. 급기야 두 계파는 세종시 당론의 재설정을 놓고서도 엇박자를 내고 있다. "원안을 지지한 당론은 애초 당론으로서 자격이 없었다"(친이)라는 주장에 "믿음을 저버릴 수 없다"(친박)는 논리로 되받아친다.

갈등은 2007년 대선 이전부터 시작됐다. 경선 과정에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대표는 '그 이후'보다는 '지금 이 순간'에 매달렸다. 과당경쟁과 갈등은 서로에게 큰 상처로 남았고 두 사람은 2008년 총선에서 '공천파장'으로 사실상 결별수순을 밟았을 것이다.

두 계파의 갈등 뒤에는 불신이 놓여 있다. 한나라당 일각에서 흘러다니는 "적(야당)보다 더 얄밉다", "이 싸움은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라는 말은 섬뜩하기까지 하다.

친이-친박의 갈등, 세종시 논란은 낡은 권력관의 충돌이다. 두 계파의 다툼 속에 '국민'이 들어갈 자리는 없다. '그들만의 리그', '그들만의 다툼'으로 비춰질 뿐이다. '쟁취하는 권력'이란 낡은 가치는 '나누는 권력'이란 새로운 비전으로 바뀌고 있다.

애초 민주주의 국가에서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능력일 뿐이다. 하지만 친이-친박은 '권력'을 지나치게 과대평가하고 있고, 낡은 권력관에 몰입돼 있는 것은 아닐까. 내부권력 다툼은 늘 파국으로 이어졌다는 역사교훈을 애써 무시하려해도 역사는 냉정하게 자신의 갈 길을 지켜나갈 것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