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 추노와 세종시

머니투데이 송기용 정경부장 2010.02.17 1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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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아니면 거기 근처에 있겠지..." 장안의 화제작 '추노'에서 조선 팔도 최고의 추노꾼 대길이 도망노비의 갈 길을 내다보며 한 말이다. 인생사, 다 거기서 거기라는 운명론이 느껴지는 말인데 최근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대격돌은 두 사람의 운명이 '거기 아니면 거기 근처'의 정해진 길을 걷고 있다는 점을 새삼 일깨워 준다. 단지 나라의 운명을 좌우할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대회전(大會戰)의 단초가 '강도론'이라는 어처구니없는 발언이라는 게 의외일 뿐이다.

두 사람의 대립은 불가피한 것이다. 그것은 '뼛속까지 실용주의자' '죽어도 원칙주의자'라는 개인적 특성의 불협화음이 불러온 갈등이 아니다. 경선 과정의 진흙탕 싸움의 앙금 역시 부차적 요인에 불과하다. 현재권력과 미래권력의 충돌은 권력의 속성이다. 거슬러 올라가면 전두환과 노태우, 노태우와 김영삼, 김영삼과 이회창, 김대중과 김종필 등 1인자를 밟고 올라서려는 2인자와, 2인자를 견제하려는 1인자의 대립은 역대 모든 정권에서 반복됐다.



5년 단임 대통령제라는 세계사에 유례없는 독특한 권력구조가 이 같은 갈등을 부추겼다. 2인자를 통제하지 못하는 순간 레임덕의 나락에 빠져, 식물 대통령이 되는 모습을 지켜봤던 절대 권력자는 2인자를 철저하게 찍어 눌렀다. 권력은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빼앗는 것'이라는 점을 알고 있는 2인자는 호시탐탐 절대 권력의 빈틈을 노리게 마련이다.

정권을 접수하기도 전인 인수위원회 시절 최고의 파워를 누리다, 집권 2년차부터는 서서히 내리막길로 접어드는 게 정권의 실상이다. 3년차에도 지지율 50%를 넘나드는 이 대통령은 우리 정치판에서 이례적이다. 그런 이 대통령에게 박 전대표가 공개 도전장을 내민 것은 지금이 승부처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세종시는 그만한 폭발력이 있다. '충청'은 역대 선거에서 승부를 판가름하는 키워드였다. 영남과 호남의 대립구도에서 충청 민심은 권력의 향배를 좌우했다.



영남을 텃밭으로 한 박 전 대표에게 충청 끌어안기는 모험을 걸만한 가치가 있다. 게다가 세종시 원안 고수는 조변석개(朝變夕改)하는 정치판에서 '원칙'과 '신의'를 지켜온 자신의 가치를 빚내줄 것이라는 판단도 박 전 대표의 '세종시 다걸기'의 한 요인이 됐다. 반면 국가백년대계를 명분으로 한 이 대통령의 수정안 추진도 정치 공학적 셈법에서 밀리지 않는다. 충청을 제외한 지역의 반감을 결집할 수 있고 박 전 대표를 대권에 연연하는 계파 보스 수준으로 끌어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영남지역에서 박 전 대표의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친이-친박 진영의 갈등과 반목은 이제부터가 시작이라는 게 중론이다. 문제는 이 갈등이 세종시라는 실체를 둘러싸고 벌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1인자와 2인자의 싸움이 공천권이나 장관임명권 등 인사(人事)권 장악을 위해, 혹은 내각제와 대통령제 등 정치체제를 놓고 벌어졌던 것과는 판이하다. 세종시는 좁게는 충남 주민과 9부2처2청의 중앙부처 공무원 그리고 삼성, 한화 등 대기업의 이해가 걸려 있고, 시야를 넓혀 정부 행정기능 이전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전 국민이 이해당사자가 되는 사안이다. 정파간 대립의 산물이 되기에는 너무 중차대한 문제다.

다시 추노로 돌아와서. 조선 인조시대, 송태하 일파는 억울하게 죽은 소현세자의 유일한 혈육 석견을 적통으로 세우려 한다. 화순 운주사에서 어린 석견 앞에 무릎 꿇고 충성을 맹세하는 무인들의 결기는 피를 끓게 하지만 우리는 이 싸움이 실패로 끝나리라는 것을 이미 알고 있다. 그렇기에 대의명분을 향해 몸을 던지는 그들의 희생이 안타까울 뿐이다. 세종시 갈등의 끝은 어떻게 될까. 아직 우리는 그 결말을 알지 못한다. 다만 이 문제를 풀어나가야 할 책임이 동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다는 것은 알고 있다. 세종시는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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