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태범 이상화의 금메달과 '알몸 졸업 뒤풀이'

머니투데이 홍찬선 금융부장 2010.02.19 10:34
글자크기

[홍찬선칼럼]이제 남은 벽은 단거리 육상과 노벨상

모태범 이상화의 금메달과 '알몸 졸업 뒤풀이'


한반도의 반만년 역사 가운데 가장 융성했던 시기는 언제였을까?

며칠 전 저녁 모임에서 문득 이런 화두가 던져졌다. 모태범과 이상화가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사상 처음으로 남녀 동시 스피드 스케이팅 500m에서 금메달을 딴 뒤의 일이었다.

고구려 광개토대왕과 장수왕 시절이라는 의견과 21C의 두 번째 10년이 시작되는 지금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섰다. 영토의 넓이나 군사력 등으로 봤을 때는 광개토대왕의 고구려가 가장 융성했다는 데 토를 달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국력을 경제력과 지력(智力) 및 문화력 등으로 판단한다면 지금이라는 의견의 설득력이 더 높아 보인다.



광개토대왕의 고구려 때보다 더 융성한 요즘

‘모-이의 기적’(모태범과 이상화가 동시에 500m에서 금메달을 딸 것이라고 예상한 사람은 전 세계를 통털어 아무도 없었기 때문에 기적이라고 할만하다)은 21C의 부상을 꿈꾸는 우리들에게 장벽은 없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줬다.



그동안 우리에겐 넘지 못할 것으로 여겼던 벽이 몇 개 있었다. 수영 자유형, 골프 메이저대회, 피겨 스케이팅, 스피드 스케이팅…. 하지만 우리의 겁 없는 젊은이들은 차례로 난공불락으로 여겨지던 벽들을 하나씩 정복했다. 박태환 양용은 김연아가 그 주인공이었고, 모태범과 이상화가 화룡점정(畵龍點睛)을 찍었다.

이제 남은 벽은 단거리 육상(100m 200m)과 테니스 정도다. 지금으로선 불가능할 것으로 여겨지지만, 불가능을 모르는 광개토대왕의 DNA를 이어받은 우리의 꿈나무들은 어디선가 그 벽을 무너뜨리기 위해 피땀을 흘리고 있어 멀지 않아 그 벽도 돌파할 것으로 믿는다.

‘모-이의 기적’은 또 ‘알몸 졸업식 뒤풀이’로 자칫 부정적으로 흐를 뻔 했던 우리 젊은이에 대한 믿음을 회복시켰다. 모-이의 기적이 언론의 집중보도와 술자리 화제를 독점함으로써 알몸 뒤풀이는 찬잔 속의 태풍으로 잦아들었다. 한 때의 객기로 알몸 뒤풀이를 했던 우리의 아들, 딸들도 모태범과 이상화의 자랑스런 눈물을 보면서 스스로 정화의 기회를 가졌을 것이다.


'모-이의 기적'의 힘은 어디서?

‘모-이의 기적’을 일궈낸 힘은 바로 그들 스스로의 자신감이었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금단의 벽으로 여겨졌겠지만, 피땀으로 준비해 온 그들은 밴쿠버로 향할 때부터 할 수 있다는 것을 확실히 믿었다. 경기가 열리는 날에 ‘인생역전’이라고 써 놓은 것은 각오이기 이전에 자신감의 표현이었다.

그들의 자신감은 ‘배고픔을 해결하겠다’는 한(恨)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반드시 이루고 말겠다’는 자아실현의 의지에서 나왔기에 우승이 확정된 뒤에 당당히 환한 웃음을 지을 수 있었다. 물론 그들의 엄마와 아빠, 감독과 선배들의 헌신적인 뒷바라지를 잊을 수는 없다.

‘모-이의 기적’을 보면서 ‘프로쿠르테스의 침대’로 전락해버린 우리의 교육을 생각해본다. 프로쿠르테스는 나그네를 자신의 집으로 유인해 그가 만든 침대에서 자도록 한 뒤 키가 침대보다 작은 사람은 늘려서 죽이고, 큰 사람은 잘라서 죽였다. 요즘 한국의 교육도 편집광(偏執狂, 앤디 그루버)이나 아웃 라이어(말콤 글래드웰)를 문제아로 만들며 나라에서 정한 ‘모범생 기준’에 맞추도록 강요하고 있다.

선생님이 답변하기 곤란한 질문을 하지 못하도록 하고, 엉뚱한 생각보다는 모범답안이 있는 문제만 풀도록 하는 교육. 그런 학교에서 과연 전 세계를 강타하고 있는 영화, “아바타(Avatar)"를 만든 제임스 캐머런 감독이나 핸드폰의 표준을 바꾸고 있는 iPhone의 스티브 잡스가 키워질 수 있을까?

'모-이의 기적', 노벨상의 기적으로 이어져라

‘모-이의 기적’은 ‘프로쿠르테스의 교육’을 거부하고 아들과 딸의 꿈을 알고 이룰 수 있도록 지원해준 부모가 있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꿈을 세우고 실현할 수 있는 길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은 본인과 부모일 터. 학교와 선생님을 선택하고 학교는 학생을 선발할 수 있도록 시장에 맡겨두는 것이 세계의 높은 벽을 넘어설 수 있는 지름길이 될 것이다.

세계 젊은이들이 기쁨과 슬픔의 눈물을 흘리는 시와 소설, 그림과 음악을 만들고, 밤새 술잔을 기울이며 뜨거운 설전(舌戰)을 벌일 수 있는 철학을 세우고, 그의 논문을 원서(原書)로 읽기 위해 한글을 배우도록 하는 경제학 물리학 등의 체계를 갖추는 것. ‘모-이의 기적’이 스포츠에서 학문분야로 확산돼 노벨상의 벽도 거뜬히 넘을 수 있는 날이 하루 빨리 왔으면 한다. 그러면 반만년 역사 중 지금이 광개토대왕의 고구려를 앞서 가장 융성한 시기로 기록될 수 있을 것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