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너지 낭비 졸부근성 어떻게 고칠까?

황국상 이언주 기자 2010.01.28 1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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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당똑똑코리아]<2부>한국인의 '에너지졸부' 근성

독일 쾰른에서 태어나 지금은 호주에서 회계사로 일하는 윤성우씨(30·남·가명)는 가끔 한국에 올 때마다 깜짝깜짝 놀란다.

겨울철 친구 집에 놀러 가면 실내온도가 25~26도를 훨씬 웃돈다. 밖엔 찬바람이 불더라도 방안은 한여름이다. 친구가 짧은 소매에 반바지 차림으로 자신을 반겨주는 것도 이해가 안된단다. 윤씨는 "이 겨울에 실내난방을 얼마나 했으면 이럴까 싶다"고 말한다.

절약정신이 투철하다는 독일에서 오래 살았기 때문인지 윤 씨와 그의 가족은 한국으로 이사 와서도 겨울이면 발목까지 감싸는 털양말인 '어그 양말'을 신는다.



심지어 저녁이 되면 윤씨 집은 난방을 모두 끈다. 집안 온도는 9도. 춥지 않냐고 물으니 "겨울에는 추운 게 당연하고 여름에는 더운 게 당연한 게 아니냐"고 반문한다.

커피숍에서는 점원이 손님에게 묻지도 않고 종이컵에 막 커피를 따라 준다. 그나마 예전엔 종이컵을 쓰면 개당 50원씩 환경부담금을 받아서 '한국이 이만큼 선진화됐나' 싶어 내심 뿌듯했다는 윤 씨는 재작년부터 그런 제도도 없어진 것도 내심 불만이다.



윤 씨의 별명은 '시어머니' '아줌마'다. 친구 집에 가서도 빈 방에 켜져 있는 불을 끄고 다니는 데다 틈만 나면 독일 주부들의 예를 들어가며 절약습관에 대해 잔소리를 하다 생긴 별명이다.

사람들은 윤 씨가 별나다고 하지만 윤 씨는 "석유 한 방울 안 나는 나라에서 전기나 자원을 낭비하는 한국사회가 되레 별난 것 아니냐"며 씁쓸해 한다.

◇20년간 물가 221% 상승, 전기료는 10%만 = 올 겨울 들어 16년 만에 겨울철 최대전력 사용량(피크전력)이 여름철 피크전력을 웃도는 기현상이 발생했다. 지식경제부와 한국전력공사에 따르면 지난 8일 오전 11시 피크전력은 6856만kW를 기록했다.


예비전력은 441만kW로 전력예비율(총공급 전력 중 사용하지 않는 전력의 비율)이 6.4%로 떨어졌다. 평시 20%대를 유지하던 전력예비율이 7% 이하로 떨어진 것. 전력예비율이 7%대로 떨어지면 가동 중인 발전시설 중 하나라도 멈출 경우 대규모 정전사태 등 큰 혼란에 빠질 수 있다.

전력사용량은 매년 늘고 있다. 2002년 2784억5000만kWh이던 전력소비량이 2004년 3121억만kWh로 늘더니 지난해에는 3944억7000만kWh로 증가했다. 7년 만에 41.7% 증가한 셈이다.

전기는 가장 비싼 에너지다. 액화천연가스(LNG) 100을 태워서 전기로 만들 때 48.3만큼의 에너지는 손실되고 나머지 51.7만 전기에너지로 남는다. 좀 더 값싼 연료인 중유(벙커C유)의 손실률은 58.2로 더 크다. 즉 중유 100을 태우면 전기에너지로 남는 것은 41.8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하지만 가정과 산업체 등 소비자가 느끼는 전기료는 그다지 비싸지 않다. 한국의 에너지 가격을 100으로 할 때 일본은 170에 달한다. 영국은 179, 프랑스는 148이다.

한국처럼 에너지 다소비 업종이 많은 산업구조인 일본과, 한국보다 원자력 발전소 비중이 더 높은 프랑스가 한국보다 훨씬 비싼 전기료 체계를 유지하고 있다. 전기료가 좀 더 싼 탓에 한국인 1인당 연간 전력 사용량은 7607kWh로 일본인의 전력사용량(1인당 7372kW)을 추월한 상태다.

그럼에도 전기료는 지난 20년간 다른 재화·서비스에 비해 요금이 거의 오르지 않았다. 지난 1982~2008년간 소비자물가는 221.4% 올랐지만 전기료는 단 10.2% 상승했다. 전기료 상승이 경제에 부담을 준다는 이유로 정부가 에너지 가격구조에 손을 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전기 뿐 아니라 상수도, 가스 등 다른 공공자원 역시 마찬가지다.

◇"가격구조 개선 외에 국민의식 변화 필요"=원종률 안양대 전기전자공학과 교수는 최근 한 토론회에서 "상대적으로 싼 전기요금 뿐 아니라 소비자들이 편리한 전기난방을 선호하기 때문에 전기난방이 증가했다"고 풀이했다.

조영탁 한밭대 경제학과 교수도 "에너지 효율을 따지자면 전기난방은 등유나 콘덴싱 보일러 난방에 비해 낮다"며 "전기난방으로 인한 연료낭비는 연간 8000억원 이상이며 국민경제 손실은 1조원에 달한다"고 평가했다.

하지만 값싼 전기료로 인한 국민경제 부담은 고스란히 국민 개개인의 세금 증가로 이어진다. 김정인 중앙대 산업경제학과 교수는 "전기에너지 현실화가 이뤄지지 않는다는 이유로 정부가 발전사에 지급하는 보조금은 연간 2조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즉 소비자가 싼 값에 전력을 소비하는 데 따른 발전사의 손실을 메우기 위해 다시 국민 세금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결국은 가격구조 현실화가 필요하다는 데 전문가들은 의견을 모은다. 비싸지 않은 자원을 아껴 쓰라고 강변해봐야 소용이 없으니 결국은 가격을 통한 수요관리가 답이라는 설명이다.

하지만 가격상승에 따른 시민들의 저항이 만만찮다. 윤씨는 "결국은 국민의식의 문제가 아닐까 싶다"고 말했다. 실내온도 9도를 감내하며 사는 것도 어릴 때부터 학교에서 줄곧 배워왔던 '에너지·자원 절약의 소중함' 덕택이란 말이다.

그는 "운전자들이 신호를 기다릴 때 시동을 끄면서까지 연료를 아끼고 병에 담긴 음료를 마신 후 병을 씻어서 재사용할 수 있도록 분리수거함에 넣는 독일인들의 절약정신을 우리도 배워야한다"며 "이게 가능해야 한국이 진정한 선진국이 되는 것 아니겠냐"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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