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초 증자에 참여할 것으로 예상됐던 GM 본사측과 산업은행 간에 기싸움이 더욱 치열해지는 양상이다.
GM본사는 당초 4911억원의 증자 규모 중 지분(50.9%)에 해당하는 2500억원 가량을 청약할 계획이었지만 산은의 불참이 확실시되자 참여를 미뤘다. 아울러 GM과 제휴관계에 있는 상하이차와 스즈키 자동차도 불참했다. GM은 오는 23일 실권주 청약때 나설 것으로 관측된다.
◇GM의 버티기 언제까지 가능할까?
하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GM의 행보가 전혀 생뚱맞은 건 아니다. 가장 직접적인 이유는 당장 산은의 지원이 절실하지 않기 때문. 마티즈 크리에이티브와 라세티 프리미어 등 신차 판매가 호조를 보이고 있는데다 환율까지 하락하면서 달러 선물환 손실 규모도 줄어들었다.
GM대우의 신차 판매는 지난달 5만7543대로 올해 최고치를 기록한데 이어 10월에도 비슷한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특히 달러 선물환의 경우 수출을 통해 달러 현물이 계속 유입되고 있기 때문에 산은의 지원이 없더라도 상환에는 큰 문제가 없다. 여기에 환율이 하락하면서 GM대우의 부담도 가벼워지고 있다.
이 시각 인기 뉴스
이 때문에 GM과 산은의 줄 달리기는 내년 초까지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금융계 한 고위 관계자는 “GM대우의 현금흐름이 크게 나쁘지 않은 상황이고 내년 초까지는 큰 문제가 없을 것”이라며 “이번 유증을 통해 운영자금까지 확보했기 때문에 특별한 변수가 생기지 않는다면 내년 상반기까지도 채권단의 지원이 필요 없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5대 요구사항, 산은 속내는?
산은은 GM대우 지원을 위해서는 5가지 전제 조건이 충족돼야 한다는 입장이다. 산은은 △이익 시현이 가능한 수준의 생산량 확보 △하이브리드카 등 신기술 개발참여 및 생산 △GM대우가 개발한 지적재산권의 소유권 확보 △GM의 단독경영 견제를 위한 산은의 경영참여 강화 등을 요구하고 있다.
산은이 비록 5가지 요구사항을 내놓았지만 속내는 GM대우를 중국이나 인도로 이전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아내겠다는 것으로 읽힌다. 일정 수준의 생산량을 보장하라거나 지적재산권을 요구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다.
자동차업계 관계자는 “공장을 중국이나 인도로 이전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 산은이 가장 관심 갖는 부분”이라며 “만약 지원만 받고 공장을 옮겨 버린다면 산은은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 경우 산은은 기술 유출은 물론 국부 유출이란 비난까지 받게 된다.
이 때문에 민영화를 추진 중인 산은 입장에서는 ‘공장 이전 불가’는 양보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다.
◇ 힘겨루기 누가 웃을까?
두 골리앗의 싸움을 예단하기는 어렵지만 양쪽 모두 버티기로 일관한다면 최종 결과는 산은의 승리로 돌아갈 공산이 크다. 결국 돈줄은 산은이 쥐고 있기 때문.
하지만 GM 입장에서는 산은의 요구사항을 선뜻 수용하기 어려운 상태다. 경기 침체로 자동차 판매가 전세계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정 수준의 생산량을 확약해 주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지적재산권 보장 역시 GM의 개발 시스템 자체가 글로벌 공동개발 체제여서 특정 해외법인에 독점적 권한을 인정하기 어렵다. GM대우에 대한 직접지원을 늘리는 것도 GM 자체가 미국 정부의 지원을 받고 있는 상황이어서 정부 승인 등의 절차를 거쳐야 한다.
물론 변수는 아직 많이 남아 있다. GM이 빠른 속도로 정상화된다면 GM대우에 대한 지원을 늘릴 수 있고 산은의 지원이 필요없게 된다. 하지만 현재 상태라면 이런 시나리오는 가능성이 희박해 보인다.
GM이 벼랑끝 전술을 구사할 가능성도 남아 있다. 산은이 일정 수준의 지원을 하지 않는다면 GM대우를 포기하는 형태다. GM대우가 문을 닫는 시나리오는 산은은 물론 정부에게도 큰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말 그대로 GM이 꺼낼 수 있는 최고의 히든 카드다.
최근 민유성 산업은행장이 “독자생존이 가능하다”고 언급한 것도 이를 염두에 둔 발언으로 읽힌다. 히든 카드는 통하지 않을 것이란 점을 분명히 한 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