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뀐' 현대차,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

이진우 박종진 기자 2009.09.28 07: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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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브랜드들 반격... "기술 개발 전력해야"

"이제 싸움 좀 그만하고 세계 1등 공장 함 만들어야지예" (현대차 울산 5공장 한 조합원)

14년 만에 강성 대신 중도 실리파 노조 지도부를 선출한 현대차 조합원들은 27일 주말인데도 밤새 특근을 이어갔다. 울산 5공장 신차 '투싼 ix' 라인을 비롯해 3공장(아반떼, i30), 4공장(포터)도 13~26시간씩 가동했다.

현장에는 새 지도부에 대한 기대가 한껏 높아져 있다. 한 조합원은 "우선 중단된 올해 임단협이 빨리 마무리되길 바란다"며 "주위에선 앞으로 소모적 파업보다 실리와 복지 중심으로 갈 것이란 희망이 많다"고 전했다.



경기회복세에다 투쟁 일변도가 아닌 실리추구형 노조 지도부 당선 등으로 현대차가 새로운 기회를 맞았다.

'바뀐' 현대차, '진짜 승부'는 지금부터


한때 기술과 가격경쟁력 면에서 선진국에 밀리고 중국에 쫓기는 처지에 몰렸던 현대·기아차가 최근 국내외에서 선전하고 있다. 하지만 기회를 맞고 있을 뿐 여전히 갈 길은 멀다는 지적도 만만치 않은 상황이다.



올들어 글로벌 시장에서 현대·기아차의 기록적인 성장세는 이른바 '5가지 행운'이 겹쳐서 가능했다는 분석이다. 무엇보다 원화환율이 높아 수출경쟁력을 가질 수 있었고, 각국 정부가 자동차세 감면 등 자동차산업을 위주로 한 경기부양책을 펼쳤다.

이 와중에 미국 빅3 등 경쟁사들이 고전하고 더욱이 엔화 초강세로 도요타가 수출경쟁력에 어려움을 겪어 현대차가 상대적으로 각국 부양책의 수혜를 많이 받았다.

게다가 경기 침체로 글로벌시장에서 중·소형차 수요가 상대적으로 늘면서 현대차의 강점이 부각됐고, 현대차가 비교적 일찍 진출한 중국 인도 등 신흥시장이 이번 글로벌 경제위기속에서 약진한 것도 호재가 됐다.


선전의 이면에 제조업 경쟁력의 핵심인 ‘기술 경쟁력’ 보다는 우호적인 외부환경의 도움이 훨씬 더 많이 작용했다는 얘기다. 특히 경쟁사들이 경영난에 몰려 휘청거리는 사이에 환율효과를 이용해 공격적인 마케팅을 퍼 부으면서 브랜드 인지도와 고객층을 넓히는 전략이 어느 정도 맞아떨어졌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 같은 우호적 외부환경이 불리한 쪽으로 방향을 틀게 될 경우 지금까지의 장점이 도리어 '짐'으로 바뀌면서 '질주'에서 '정체' 심지어 '후진'까지도 감수해야 할 지 모른다는 지적도 있다.



실제로 최근 시장과 경쟁사의 움직임을 보면 상황이 그리 녹록치 않다. 이미 ‘5가지 행운’의 효과가 흔들리기 시작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300원대를 유지하던 환율은 1100원대로 떨어졌으며 주춤하던 글로벌 브랜드들이 구조조정을 마치고 신흥시장을 포함한 주요 시장에서 중소형차를 중심으로 속속 공격적 경영전략을 펼치고 있다.

제너럴모터스(GM)는 구매 후 60일 이내 전액 환불을 보장해주는 파격적 제도를 도입하고 최근 매달 판매가 회복됨에 따라 내년 말까지 직원 수를 3000명 가량 충원하기로 했다. 포드 역시 '포커스', '퓨전' 등 중소형차를 중심으로 지난 8월 전년대비 17%까지 판매 증가율을 끌어올리며 회복 중이다. 토요타는 경기 회복세가 뚜렷함에 따라 방어적 자세를 멈추고 올 연말 미국시장에 마케팅 비용으로만 10억 달러를 투입하기로 했다.



현대차로서는 위기 속 '나홀로 독주'가 위협받을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인 셈이다.

유지수 국민대 경영학부 교수는 "GM, 크라이슬러 등이 복지비용을 줄이고 구조조정을 거치면서 원가경쟁력 면에서 우리와 차이가 없게 됐다"며 "게다가 전미자동차노조(UAW)가 대폭 양보해 새로운 노사관계가 수립되면서 강한 경쟁력을 갖게 됐다"고 밝혔다.

관건은 핵심 경쟁력인 생산성과 품질 향상이다. 현대차 울산공장의 경우 조립생산성(한대 생산에 투입되는 총시간, HPV)이 35.7시간(전경련 자료)에 불과해 20시간 남짓의 GM, 포드, 토요타 등에 비해 크게 뒤쳐진다. 특히 현대차 공장인 앨라배마 공장의 HPV는19.88시간에 불과하다.



이항구 산업연구원 기계산업팀장은 "생산성이 떨어지면서 임금은 더 받는 '고비용, 저효율' 시스템의 수정이 필요한 상황"이라며 "이를 바탕으로 한 친환경차 개발, 품질향상 등 기술 경쟁력 강화가 절실하다"고 지적했다.

현대차 노조가 14년 연속 파업을 통해 낮은 생산성에도 불구하고 미국 앨라배마공장보다 높은 고임금을 유지해온 노사관계는 글로벌 위기에 치명상을 입은 'GM 모델'과 유사하다.

현대차 노조원들이 이번에 변화를 택한 것은 현대차에게 주어진 5가지 행운, 즉 '기회'를 살리려는 노조원들의 바람이 모아진 것으로 볼 수 있다. 현대차는 막대한 비용과 장기적 투자 및 생산계획이 동반돼야 하는 친환경차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만큼 노조의 적극적 동의와 협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김기찬 가톨릭대 경영학과 교수는 "다행히 경기불황 속에 노조원들 사이에서도 바뀌지 않으면 모두 공멸한다는 인식이 늘고 있다"며 "이제 합리적 노사관계를 바탕으로 고연비·친환경차 개발 등 기술혁신에 전력을 쏟을 때"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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