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오바마의 생일 선물

머니투데이 윤석민 국제 경제부 부장 2009.08.05 07: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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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 클린턴 전 미 대통령이 4일 평양을 전격 방문했다. 북한에 억류된 미국 기자들의 송환 협상이 그에게 주어진 일차 임무이다.

그가 평양 순안 공항에 도착하자, 북측은 온갖 예를 갖춰 그를 맞이했다. 전 미국 대통령이자 현 미 국무장관의 남편을 대하는 예우이지만 배려가 남달라 보인다. 화동의 꽃다발이 전해지고 도열한 양형섭 최고인민회의 부위원장, 김계관 외교부상 등이 환히 웃으며 영접했다.

이로 미뤄 지난 3월 중국 접경지에서 붙잡힌후 평양에 4개월째 억류중인 두 여기자의 석방은 시간 문제로 보인다. 그런데 이를 위해 전직 미국대통령이 움직였다는 것은 태산명동 서일필격이다. 뭔가 더 큰 그림을 기대케하는 대목이다. 우연인지 몰라도 이날은 마침 오바마 대통령의 48번째 생일이다. 모종의 시나리오 냄새가 난다.



북측도 꿍꿍이가 있어 보인다. 특히 영접 인사중 김 부상의 존재가 눈길을 끈다.
그는 클린턴 행정부 당시 미국과 제네바 핵협상, 뉴욕 미사일 협상을 주도했던 인물이다. 그러나 최근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와병과 후계 승계 구도로 강경론자들이 득세하며 그의 존재감마저 잊혀져왔던 인사이다. 그러한 그가 다시 중앙 무대에 나왔다는 것은 북측의 전략이 유연해졌음을 의미한다.

실제로 클린턴의 방북은 북측의 요구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양측 관계 진전과 핵 문제 등을 동시에 푸는 포괄적 합의의 '원조'인 클린턴 전 대통령은 북측이 가장 신임하는 '미국 사람'이다.



그의 첫 임기시인 1994년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 최초로 북한을 방문, 당시 김일성 주석을 만나 핵 개발을 추진하는 북한과의 첫 대화 물꼬를 텄다.
이후 2000년 김정일 위원장의 특사인 조명록 차수, 매들린 올브라이트 미 국무장관의 상호 교차 방문을 통해 수교 직전까지 관계가 진전된 바 있다. 당시 양측은 ▲상호 적대 정책 배제 ▲ 주권 존중 ▲무력 불사용 ▲내정 불간섭 등 4가지 원칙을 채택하고 이를 공동성명으로 발표도 했다.

이어 퇴임을 앞둔 클린턴 본인이 미국 대통령 자격으로 직접 평양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으나 야당인 공화당의 반대 등의 이유로 성사 일보전 무산됐었다. 이에따라 클린턴 개인으로서는 이번 방문이 9년만에 지켜진 약속일 수도 있다.

나아가 민주당 클린턴행정부의 유지를 이어받은 오바마 행정부의 출범에도 불구, 평행선을 그어온 미국과 북한간 관계의 획기적 변화도 예고된다.
북측은 실제 민주당 오바마 행정부에 대해 은근한 기대를 보여왔다. 그러나 핵계획, PSI 등에 단호한 태도를 유지한 오바마 대통령에 대해 조지 부시 전 대통령과 다를 바 없다는 볼멘 소리만 가득했다. 아마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더했던 모양이다. 클린턴의 방북은 이를 일시에 날릴 한 방의 위력을 가졌다.


물론 클린턴의 존재가 모든 것을 일시에 바꾸는 디비디바비디두같은 요술주문은 될 수 없다. 그간의 북측 협상술을 생각하면 더욱 그러하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일 것이다. 어쩜 시계를 1990년대 중반으로 되돌려 또다시 울리는 평양 블루스에 몸을 맡겨야 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그동안 경색되던 남북 관계에도 자연스레 해빙의 균열이 생길 수 있다는 점이다. 미국과 직접 대화에 나선 북한이 의도적으로 우리를 배제하려는 태도를 보일지언정 큰 틀은 대결보다는 대화로 간다는 것이다.



지난 IMF 외환이후 또다시 경제 위기에 빠져 갈 길 바쁜 우리에게는 더 없이 좋은 소식중 하나일 것이다. IMF 당시 북미간 진전이 우리의 위기 탈출에 일조했던 것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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