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 이러다 2000 되나?

머니투데이 정영화 기자 2009.08.04 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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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위크 커버스토리]어! 2000? /①코스피 2000의 조건

‘주식은 비관 속에서 태어나 회의 속에서 자라고, 낙관 속에서 성숙한 뒤 행복감 속에서 사라진다.’

월가의 전설적 투자자로 불리는 존 템플턴이 남긴 유명한 격언이다. 수십년 동안 주식시장을 지켜봤던 그가 남긴 이 말은 그동안 국내시장에서도 절묘하게 들어맞았다.

사상 초유의 불황이니 대공황이니, 더할 나위 없는 극도의 비관이 시장을 지배한 가운데에서도 코스피지수는 올해 3월 저점 900에서 7월31일 현재 1550도 넘어섰다. 코스피시장의 시가총액도 1년 여 만에 800조원을 돌파했다.



주가가 쉼 없이 오른 만큼 지칠 법도 한데, 조정다운 조정 없이 내달리고 있다. 내친김에 2000도? 성급하다는 지적이 많지만, 지금까지 올라온 체력으로 견줘본다면 넘보지 못할 것도 없어 보인다.

시장 컨센서스(consensus)는 이미 비관을 지나 회의로 넘어간 상태. 시장 참여자들은 계속 반신반의하고 있는 상태다. 주가가 1300을 오를 때도 그랬고, 1500을 오른 지금도 그렇다. 아직까지 조심스러운 전망이 우세한 가운데 지난 2007년 11월 고점이었던 주가 2000에 대한 기대도 일부 나오고 있다.



주가 2000, 요원한 꿈일까? 아니면 재차 실현 가능한 수치일까? 주식시장을 예측, 분석할 수 있는 지표인 기업이익(PER), 경기 선행지수, 고객예탁금(유동성), 외국인 매매동향, 금리 등을 바탕으로 주식시장이 과연 2000까지 오를 수 있을지 그 가능성을 각각 짚어봤다.

◆가장 중요한 건 기업이익(PER)

주식시장을 전망하는데 있어 전문가들이 보는 지표는 조금씩 차이가 있다. 하지만 기업이익 지표인 PER(주가수익비율), 경기 선행지수, 금리, 환율, 유동성 지표인 고객예탁금이나 펀드 유출입동향, 외국인 매매동향 등은 공통적으로 보는 핵심 지표들이다.


주가가 2000까지 올랐던 2007년 11월과 비교했을 때, 지금 우리 시장은 어느 수준에 와 있을까. 이 궁금증을 풀 수 있는 열쇠는 바로 여기에 있다.

증시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가장 중요한 지표로 기업이익(PER)을 꼽았다. 신성호 우리투자증권 상품전략본부장(전무)은 "수출이니 고용지표니 여러 지표들이 있지만, 이 지표들을 압축적으로 볼 수 있는 최종 결과물은 역시 기업이익(PER)"이라며 "지금의 PER는 금리 수준 등을 감안할 때 그다지 고평가된 상태는 아니다"라고 말했다.



올 2분기 국내외 주요기업들은 어닝 서프라이즈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기대 이상의 수익을 올렸다. 국내 대표기업인 삼성전자 (63,000원 ▼100 -0.16%)는 전 부문 흑자 달성을 바탕으로 2조5000억원이 넘는 분기 이익을 기록했다. LG전자 (110,100원 ▲600 +0.55%)는 1조원이 넘는 분기 이익을 기록해 자사의 사상 최대치 기록을 경신했다.

FN가이드에 따르면 코스피 기업들의 PER는 2007년과 2008년에 모두 15배였고, 올해 예상 PER는 13배, 내년에는 9배로 예상된다. 내년 예상 PER를 놓고 본다면 앞으로 추가 상승여력이 많이 있다는 얘기가 가능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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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선행지수, V자형 회복중

시장 참여자들이 가장 반신반의하는 것 중 하나가 경기지표다. 세계 경기가 여전히 불황에서 허덕이고 있는데, 국내 경기만 회복되는 디커플링(탈동조화)이 가능하냐는 시각이 그것이다.



경기 지표들을 무시한 채 주식시장이 나홀로 상승세를 이어가기란 실제로 쉽지 않다. 당시에는 모르더라도, 결과적으로 놓고 볼 때 대체로 주식시장은 경기 사이클과 비슷한 흐름을 보이는 것이 대부분이다.

김영익 하나금융경영연구소 소장은 "여러 지표들 가운데 주식시장에 가장 영향을 주는 변수는 경기선행지수"라며 "경기선행지수는 종합주가지수와 연동되는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경기선행(종합)지수는 고용, 생산, 소비, 투자, 금융, 무역 등의 향후 흐름을 예측할 수 있는 10개 지표로 구성된다. 경기 선행지수는 지난 4월 10대 지표 모두 7년 만에 플러스로 돌아섰고, 5개월째 V자형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올 2분기 경제성장률도 전 분기에 비해 2.3% 성장해 5년6개월 만에 최고치를 경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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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같은 지표들은 국내 경기가 V자형의 빠른 회복이 가능하다는 기대감을 안겨주고 있다. 윌리엄 페섹 블룸버그 칼럼니스트는 “한국의 경제 회복세에 경의를 표한다"고 서두를 장식한 뒤 "한국이 지난 2분기에 전분기 대비 2.3% 성장세를 기록하는 등 6년 만에 가장 빠른 성장세를 기록한 점은 미국 경제가 혼란에 빠져 있음에도 아시아가 이에 굴하지 않고 있다는 단적인 예"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코스피지수가 1500선을 회복한 것은 주식시장이 이미 지난해 리먼 브러더스 사태 이전 수준으로 회귀했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비록 리먼 브러더스 사태로 인해 일시적으로 주식시장이 무너지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국내시장이 큰 피해 없이 넘어가면서 원래대로 회귀한 셈이다.

◆수급은 외국인이 쥐고 있다



어! 이러다 2000 되나?
주식시장을 900에서 1500까지 끌어 올린 데는 유동성이 큰 뒷심이 됐다. 비록 펀드와 관련한 여러 잡음 등으로 펀드 환매가 꾸준히 늘어났지만, 펀드를 깬 대신 직접 주식투자에 나선 개인 투자자들 덕분에 수급이 보강됐다. 앞으로도 증시 전망을 하는 데 있어 수급은 매우 중요한 변수다.

개인 투자자들의 수급을 살펴볼 수 있는 지표로 고객예탁금을 들 수 있다. 지난 2007년 11월 고점 당시 고객예탁금은 13조원이었다. 하지만 점차 줄어들면서 이듬해초 9조원까지 줄어들었다. 지난해 리먼 브러더스 사태가 났던 당시 고객예탁금은 8조원까지 줄어들었다.

그러나 올해 4월 고객예탁금은 16조원까지 급격히 늘었고 7월28일 현재 이보다는 조금 줄어든 14조원을 기록하고 있다. 이 지표로 개인 투자자들의 주식에 대한 매수여력과 관심도를 짐작해볼 수 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외국인 투자자들의 매수여력이다. 김영익 소장은 "지금 수급여건은 펀드 환매 등의 영향으로 펀드 열풍이 불었던 2007년 11월 당시보다 사정이 좋지 않지만, 대신 외국인 투자자들이 매수에 나서면서 이를 보강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앞으로 외국인 투자자들의 포지션(입장)이 어떠한가가 주가 2000 고지를 재탈환하는데 중요한 변수가 될 것으로 내다봤다.

외국인 투자자들은 2006년 10조7000억원, 2007년 24조7000억원, 2008년 33조6000억원 등 줄곧 '셀 코리아(sell korea)' 기조를 이어왔다가 올 들어 '사자(buy)'로 입장을 바꿨다.

외국인들이 올 들어 7월30일까지 순수이 사들인 금액은 약 17조원(코스피 기준)이다. 올 들어 지난 5월 중순까지 약 7억원어치를 순매수했고, 그 이후 두어달 동안 무려 10조원어치를 추가로 사들였다.



올 들어 외국인이 매수 포지션으로 바뀌었지만, 2006년 이후부터 지금까지 누적치로 보면 아직도 52조원어치를 순매도한 상태다. 최근 국내 주식을 많이 늘렸지만 여전히 실탄에 여유가 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특히 외국인 투자자들은 대체로 돈의 규모가 커서 단타보다는 롱텀(장기)으로 가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매수 기조가 어느 정도 형성된 만큼 더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금리, 환율 등 외부변수도 관건



올해 주식시장을 끌어올린 원동력은 역시 금리효과가 가장 컸다. 저금리 기조 하에서 주식시장의 매력도가 상대적으로 증가했기 때문. 시중 유동성이 결국 위험자산에 속하는 주식시장으로 상당 부분 몰렸기 때문에 주식시장도 가파르게 오를 수 있었던 것으로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3년 만기 국고채 수익률이 올 초 연 3%대 초반에서 7월30일 현재 4.15%까지 올랐지만 2007년 11월 당시 5~6% 사이였던 금리에 비하면 1%포인트 이상 낮은 상태. 저금리의 매력이 아직까지 유지되고 있는 상태다.

신성호 전무는 "자산의 선택적 관점에서 판단할 때 2007년 당시보다 저금리로 인해 주식시장의 상대적 매력이 높아진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내년에 주가 2000까지도 바라볼 수 있다"고 전망했다.



현재 원/달러 환율은 지난 2007년 11월 900원대보다 300원가량 높은 1200원대에 거래되고 있다. 앞으로 환율이 점차 하락할 가능성(원화강세)에 무게를 둔다면 환차익을 노린 외국인의 매수세도 더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물론 여러 경기지표들의 개선과 우호적인 변수 등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유동성 과잉(버블) 논란, 경기회복세가 일시에 그칠 수 있다는 우려 등 암초가 많다.

'주가예측은 신의 영역'이라고 부를 만큼 주가 전망이 정확히 들어맞기란 쉽지 않다. 그렇다고 주가가 다시 2000까지 오를 수 있는 가능성을 미리 차단할 필요는 없을 것이다. 이보다는 최소한 내년까지를 감안한 넓은 시야에서 열린 자세로 유연한 투자전략을 세워보는 것이 바람직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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