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삼구 금호아시아나그룹 회장이 28일 오후 종로구 신문로 금호아시아나 본관에서 퇴진 기자회견을 하며 고민스런 표정을 짓고 있다.ⓒ 이명근 기자
선친의 위패가 모셔진 곳 인만큼 과거에도 수시로 찾았던 곳이지만 올해에는 발걸음이 유달리 무거웠다. 대우건설 인수 이후 불거진 유동성 위기와 오너일가의 지분변동을 둘러싼 형제간 불화설 등 안팎 악재가 잇따랐기 때문이다.
그로부터 6일 뒤인 28일 박삼구 회장은 자신과 동생인 박찬구 화학부문 회장의 동반퇴진과 함께 박찬법 항공부문 부회장을 새 그룹회장으로 추대한다고 전격 발표했다. 1984년 창업주 박인천 회장에 이어 장남인 고 박성용 명예회장과 둘째 고 박정구 회장, 셋째 박삼구 회장으로 이어진 형제경영 전통이 25년 만에 막을 내리는 순간이었다.
특히 박찬구 회장 쪽에서 금호석유화학 지분을 늘리면서 지분경쟁이 본격화 됐다. 이 과정에서 박찬구 회장 부자의 지분율이 18.47%로 늘어났다. 이로 인해 과거 박삼구·박찬구 회장과 조카 박철완 부장이 각각 10.01%씩 금호석화의 주식을 보유하는 이른바 '황금 비율'이 깨졌다.
금호아시아나측은 이에 대해 금호석유화학 중심의 단일 지주회사 체제로 가기 위한 수순이라는 공식 입장을 밝혔지만 재계 안팎에서는 형제간 불화가 심상치 않다는 관측이 적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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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박삼구 회장은 이에 대해 "박찬구 회장이 공동경영 합의를 위반해 그룹경영에 차질을 초래하고 있다"며 격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룹 관계자는 "박찬구 회장의 지분변화로 인해 재무구조개선 약정이행 등 그룹의 산적한 현안을 두고 대주주간 경영권 분쟁 등이 거론되는 등 경영에 큰 차질을 초래했다"고 말했다. 결국 박찬구 회장 측이 지분확보를 통해 가족 간의 공동경영 합의를 깼고, 이로 인해 그룹의 경영에 큰 부담을 준 것이 직접적인 원인이라는 설명이다.
◇그룹경영 어떻게 되나= 박삼구 회장은 박찬구 회장의 해임을 결정하면서 자신도 명예회장으로 경영일선에서 물러났다. 그룹 측은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박삼구 회장은 그러나 재무구조이행약정의 이행 등 그룹의 핵심현안을 챙기는 등 명예회장으로서의 '책임경영'을 이어가겠다고 밝혔다. 경영일선에서 완전히 물러나는 박찬구 회장과는 달리 '대주주'로서 일정 역할을 하겠다는 뜻이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이와 함께 40년 넘게 근무한 전문경영인인 박찬법 부회장을 새 회장으로 추대, 그룹경영을 '전문경영인 체제'로 바꾸기로 했다. 박삼구 회장은 이에 대해 "아버님과 형님 두 분 등 선대회장이 살아계실 때 내가 유고하면 앞으로 어떻게 할 것인지와 관련된 논의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내부의 전문경영인이나 외부의 덕망 있는 분을 경영인으로 모시기로 결정했다"고 밝혔다. '형제경영'이 꼭 지켜야 할 의무는 아니며, 능력만 있으면 누구든 회장직을 넘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이에 따라 금호아시아나그룹은 앞으로 '박삼구 명예회장-박찬법 회장'을 축으로 '오너의 힘이 뒷받침 된 전문경영인 체제'로 운영될 것으로 보인다. 대우건설, 금호생명 매각 등 굵직한 그룹 현안의 경우 '오너의 결단'이 없으면 실행되기 어렵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동반퇴진 조치에 반발하고 있는 박찬구 회장 측이 법정대응 등에 나설 경우 '형제의 난' 등 그룹경영에 더 큰 부담을 주는 상황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박삼구 회장은 이를 의식 한 듯 "법적 하자가 있으면 누구나 대응할 수 있지만 법적하자는 하나도 없다"고 일축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