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채시장 양극화와 좀비(Zombie)기업

더벨 김종민 삼성증권 채권사업부 연구위원 2009.07.17 16: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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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자주 자본시장 발전에 신용평가는 인프라와 같은 존재입니다.서브프라임사태로 신용평가의 공정성이 도마위에 오르고 있는 것도 신용평가의 중요성을 재차 일깨우는 사건입니다. 더벨은 신용평가를 포함해 크레딧시장의 전반을 전문가의 날카로운 시각을 통해 분석합니다.신용이슈는 일련의 현상에 대해 폭넓은 이해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기사는 07월16일(10:18)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경기가 예상보다 빠른 시점에 저점을 확인할 가능성이 높다는 말이 나오고 있지만 회사채 시장의 양극화는 장기간 고착화 될 태세를 보이고 있다. 표면적으로만 보면 리먼 파산 이후 극도로 경색되었던 금융시장 특히 회사채시장의 위험회피 성향이 크게 완화된 것으로 보인다.



표면적으로 개선된 시장 하지만 실제로는 여전한 양극화

최근 회사채 공급과 수요가 동시에 감소하는 축소균형 상태에서 스프레드가 슬금슬금 확대되고 있지만 우량등급의 경우 스프레드가 리먼사태 이전 보다 낮은 수준까지 회복되었다. 08.10월 이후 급락했던 BBB급 이하 회사채 발행 비중은 점차 높아져 09.6월에는 20%를 넘어섰다(그림1)





<자료-KIS채권평가 >

하지만 실제 내용을 뜯어보면 회사채시장에서 등급간, 그룹간, 산업간 양극화 현상은 여전히 해소되지 않고 있는 듯 하다. A급과 BBB급 회사채간의 스프레드는 여전히 좁혀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으며 BBB급 회사채 비중이 증가하고 있지만 일반회사채가 아닌 주식연계채권(BW,CB)이 상당비중을 차지하고 있다(그림2).


우량등급이라고 볼 수 있는 A급 회사채의 경우도 동일등급 내에서 업종별, 그룹별로 금리의 편차가 매우 심한 상황이다(그림3). 동일한 등급(A-) 내에서도 기업들 간에 평가수익율 분포는 리먼사태 이전과 현재를 비교할 때 매우 다른 양상을 보이고 있다

<그림2>좁혀지지 않는 비우량채 스프레드, 주식연계채권이 주를 이루는 BBB급 발행





<그림3>리먼사태 이전과 현재 비교 - 동일한 등급이라고 믿기 어려운 수익율 편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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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Kis채권평가

양극화의 주범은 경기, 신용등급, 구조조정, 재무제표 등과 관련된 불확실성

회사채시장 양극화는 특정섹터나 등급에 대한 과도한 선호 또는 극단적인 기피를 의미하며 그 정도가 심하거나 기간이 장기화될 경우 직접금융시장의 효율적인 자금배분 기능을 저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왜 회사채 시장의 양극화 현상이 지속되고 있는 것일까?



첫번째 이유는 향후 경기와 기업의 재무안정성에 대한 불확실성 이다. 경기회복기에는 신용공급도 확장 Cycle로 전환될 것이고 기업의 실적도 개선될 것이기 때문에 전반적인 신용위험이 감소하고 비우량채권의 부도위험도 줄어들기 마련이다.

따라서 경제주체의 경기회복에 대한 확신이 강해진다면 회사채시장의 양극화 현상은 자연스럽게 해소될 것이다. 다만 문제는 비록 경기의 자유낙하는 멈춘 것으로 보이지만 한계기업의 영업실적이 개선되는 것을 체감할 만큼 경기회복이 강하게 나타나지는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는 점에 있다.

또한 경기회복에 미국경제 등 외생적인 변수의 영향이 크기 때문에 우리의 자체적인 노력이 충분한 효과를 나타내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점도 불확실성을 증폭시키는 원인이다.



아울러 건설, 조선, 해운, 철강, 캐피탈업종 등 그간 과도한 성장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산업의 높은 재무위험을 감안하면 턴어라운드 이전까지는 해당산업이 양극화 구조에서 불이익을 받는 것이 일견 당연할 수도 있다. 경기회복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면 회사채 시장의 양극화 문제가 완화될 것이 자명하지만 마냥 경기가 좋아지기만을 기다리기에는 마음이 바쁘다

두번째 이유는 신용등급과 관련된 불확실성이다. 전반적인 신용등급 인플레이션(?)과 등급쇼핑에 대한 우려감이 신용등급의 신뢰성을 떨어뜨렸고 신용등급에 대한 불신은 특정 그룹, 산업, 등급에 대한 과도한 기피를 가져오게 된다.

등급의 변별력이 떨어질수록 투자자는 보수적인 행태를 보이기 마련이다. 심리적인 허들(Hurdle)을 높게 설정하고 정말 믿을 수 있는 종목만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며 그 외 종목은 철저히 외면하게 되는 것이다



크레딧 애널리스트가 신용등급과 잘 매칭이 안되는 일부기업의 재무제표를 놓고 고개를 갸우뚱 하는 일이 잦아진지는 이미 오래되었다. “지금 A급 기업들은 실제론 BBB급 기업들 아닌가요?"라고 반문하는 채권시장 종사자를 무작정 탓할 수만도 없는 상황이다.

한 신용평가사의 등급 상하향배율(Up/Down Ratio, 등급상향업체수/등급하향업체수 비율)을 보면 03년 3배 → 04년 3.3배 → 05년 4.7배 → 06년 6.4배 → 07년 11.2배로 수직 상승하고 있다(투자등급 기업대상). 07년에는 BBB- 이상 기업중 1개 업체의 등급이 하락할 때 11개 업체의 등급이 올랐다는 말이다. 동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변화표(전이행렬)를 보면 BBB급에서 A급으로 등급이 상향된 업체의 비율은 03년 4.65% → 04년 7.32%배 → 05년 9.78%배 → 06년 7.22% → 07년 14.77% → 08년 9.30%를 나타내고 있다.

동 신용평가사의 신용등급 분포상 A급이상 기업의 비중은 02년 41.4%에서 꾸준히 높아져 08년에는 58.0%에 달하게 되었다. 물론 우리기업의 글로벌 경쟁력이 강화되면서 재무적인 펀더멘털이 개선되었음을 부인할 수 없으며 수치상의 재무지표도 적어도 07년 상반기 까지는 꾸준히 개선되는 모습을 보여온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나친 신용등급 인플레이션 결과 AAA도 노치를 세분화(+,0,-)해야 한다거나 Super-AAA를 만들어야 할 판”이라는 일각의 우스개 소리를 가벼이 지나칠 수 없는 이유는 펀더멘털 개선속도 보다 등급상향 속도가 더 빨랐던 때문이다. 신용등급의 하방경직성과 신용평가사의 속성을 감안하면 아직 판단을 유보해야 하겠으나 최근 일부기업 신용등급에 대한 신용평가사의 재평가 움직임이 있는 것은 바람직해 보인다

세번째 이유는 구조조정과 관련된 불확실성이다. 현재 채권단 중심으로 진행되는 구조조정 작업은 외견상 순조롭게 보인다. 구조조정 일정은 건설/조선업 1차 및 2차 신용위험평가, 해운업종 평가, 그룹사에 대한 평가와 재무구조 개선약정 체결, 500억 이상 신용공여 433개 기업에 대한 평가에 이어 중소기업에 대한 구조조정 단계로 넘어가 있다. 또한 정부와 채권단의 구조조정 노력으로 위험산업 및 위험그룹으로 인한 금융시장 불안감이 크게 완화된 것도 사실이다. 건설업종은 대주단 프로그램 가동으로 유동성이 수혈되었으며 조선업종과 해운업종은 제작금융, 선박펀드의 지원이 이루어지고 있다.

일각에서 금융시장 불안의 핵심으로 지적해 왔던 일부 그룹들은 채권단과의 재무구조개선약정(MOU) 체결로 적어도 단기적인 유동성위기로부터는 잠시 숨을 돌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시장은 여전히 구조조정에 대해 불확실하다고 말한다. 왜 그럴까? 아마도 현재 진행되고 있는 과정에서 대마불사의 기류, 시장원리 무시 흐름을 감지했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채권단의 익스포저가 클수록 C와 D를 받을 확률은 낮아지고 규모가 클수록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위풍은 오히려 당당하다. 채권단은 구조조정 대상 그룹에 친절하게 자산의 시장매각이 어려운 경우에는 현물로 대납(PEF형식을 거치겠지만)하는 방법도 있다고 안내해 주고 있다.



구조조정의 핵심이 「디레버리징, 선택과 집중, 산업구조의 개편」 이라면 현재까지 진행된 것은 구조조정 이라기보다는 금융시장안정대책에 더 가까운 듯하다. 구조조정이 해당기업의 부도를 막기 위한 유동성공급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그러한 기간이 장기화되면 해당기업은 좀비(Zombie)화 될 것이다.

시장원리에 입각한 직접금융시장은 좀비기업에 관심이 없을 것이다. 오로지 채권단과의 지극히 사적인(Private) 관계 속에 남게 되는 좀비기업은 향후 더 큰 부담으로 되돌아 올 수 도 있을 것이다. 적기에 구조조정 되지 못한 좀비기업이 많을수록 다른 기업을 전염시켜 해당 산업 나아가 경제와 금융시장을 좀비화 시킬 수 있다.

금융위기와 실물침체가 악순환되고 위험회피 성향이 극도로 강화된 패닉상황에서의 섣부른 구조조정은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수도 있다는 의견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현재는 위기가 한 고비를 넘기고 금융시장 경색도 상당부분 완화된 상황으로 지금이야말로 강력한 구조조정의 적기가 아닌가 싶다



네번째 이유는 재무제표와 관련된 불확실성이다. 재무제표는 현재와 미래의 재무상태를 판단하는데 있어 가장 중요한 근거자료다. 회사채 투자는 재무제표에 담긴 수치와 그 수치의 배경을 통해 발행기업을 이해하는 데서부터 출발한다. 하지만 최근 재무제표의 불확실성을 증대시키는 요인들이 늘어나고 있다.

미국의 경우 금융기관의 시가평가제도를 완화하여 모기지증권 등에 대해 Mark-to-Model을 허용하였다. Model은 해당금융기관이 만들기 때문에 대손비용을 인식하는데 있어 재량적인 룸(room)이 커졌다. 국내의 경우 자산재평가가 조기에 허용되었고 해운업체의 기능통화제도가 도입되었다. 조선업체의 파생상품회계처리 방식도 변경되었다.

외감이상 기업의 08년말 자산재평가에 따른 자기자본증가액은 약 30.3조원에 달하며 이로 인해 해당기업들의 부채비율은 약 80%p 개선된 것으로 추정된다. 6개 대형해운사의 08년 4분기 영업이익은 4,751억에 불과했는데 08년말 자기자본은 08년 3분기말 대비 무려 3.2조원이나 증가하였다. 가히 기능통화제도의 마법이라 부를 만하다.



물론 자산재평가제도 조기허용, 기능통화제도도입, 조선업체 파생상품회계처리 변경 등은 모두 합리적인 측면도 있음을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도입 전후로 재무구조의 변동 폭이 너무 커서 추세의 단절이 생기고 비교가능성이 떨어졌다. 또한 우발채무에 대한 공시 강화, 선박가격의 적정한 시가평가 등도 균형 잡힌 시각으로 동시에 고려되었으면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신용등급 및 구조조정과 관련된 불확실성은 우리 노력으로 해소할 수 있어
특히 회사채 시장에 좀비 바이러스가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해

향후 경기에 대한 불확실성 부분은 우리가 통제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치부한다고 하더라도 회사채시장의 양극화 해소를 위해 적어도 신용등급 및 구조조조정과 관련된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한 노력은 필요할 듯하다.



기업의 실질적인 재무상태와 매칭이 잘 안 되고 있는 신용등급을 현실화 하려는 노력, 실질적이고 강력한 구조조정 진행으로 해당 그룹/산업/기업이 좀비화 되는 것을 막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회사채 시장에 좀비 바이러스가 더욱 힘을 발휘하게 되면 양극화 문제는 상당기간 지속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글로벌 금융위기가 잠시 숨을 돌린 것으로 보이는 지금이 신용등급 및 구조조정과 관련한 불확실성을 조금이나마 해소할 적기인지도 모른다.

회사채시장 양극화와 좀비(Zombie)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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