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현장정치가, 탁월한 정치·경제이론가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2009.08.18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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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없는 진화… 그의 정치·경제철학은

-타고난 실용주의 감각…시대 흐름을 선도한 정치인
-IMF 조기 극복으로 한국 경제 재도약의 발판 마련

고 김대중 전 대통령(DJ)은 정부 수립 반세기만에 수평적 정권교체를 이뤘다. 북한과의 정상회담을 통해 한반도 평화체제를 선언하고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국제통화기금(IMF) 체제를 이어받아 조기에 이를 극복하는 업적을 남겼다.

DJ는 △정치적 민주주의 △권위주의 해체 △인권 향상 △정보화강국 확립 △노동자 권익 향상 등 여러 업적을 남겼다. 그는 박정희 정권의 권위주의 체제에서 민주화 운동을 시작해 대통령까지 올랐다. '맨몸으로 민주화를 일궜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이같은 그의 힘은 굳건한 정치·경제철학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게 주변 평가다. 그는 생명의 위협을 받는 치열한 정치현장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정치·경제 이론가'로서의 면모를 지속해서 다듬어 나갔다.

◇민주화의 선봉장= DJ는 '민족주의자'임을 평생 강조해 왔다. 박 정권은 그에게 '극좌', '용공의 우두머리'라는 굴레를 씌우며 핍박했지만 결코 굴하지 않았다.



일찌감치 비반미, 비용공, 비폭력 등 '삼비(三非) 정책'을 내세우며 특유의 정치감각을 발휘했다. 반미에 반대하면서도 민족주의자임을 강조했고 용공에 거리를 두면서 평화통일을 외쳤다. 비폭력을 기본으로 한 민주회복론을 펼쳤다.

그의 정치철학은 기본적으로 '실용주의'에 바탕을 두고 있다. 뛰어난 경제감각을 정치로 옮겨온 결과다. 도쿄 납치 당시 미국의 도움을 받아 극적으로 현해탄을 살아 건널 수 있었던 것은 그가 반미가 아닌 비반미를 선택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비폭력을 멀리함으로써 그는 자신의 목숨을 위기에 빠뜨리는 아둔함에서 자유로웠다. 무모함보다는 현실적인 판단에 주력했고, 몇 차례의 망명 생활 속에서도 신념을 잃지 않는 굳건함을 발휘했다.


그의 정치철학은 '이중성'을 아우르고 있다. 강력한 권위주의 체제에 맞서 무모하다는 평가를 받을 만큼 고집스레 민주화를 외쳤지만 자신의 원칙을 끝내 지키는 고집도 지녔다. 미국 망명시절 교포 중 일부 세력이 미국에 '망명정부'를 세우자고 제안했지만 이를 단호히 뿌리쳤다.

대통령이 된 뒤 진보세력은 반민주세력과 재벌에 대해 철퇴를 내려쳐야 한다고 거세게 외쳤지만 그는 용서와 화해가 기본이라며 사면 중심의 정책을 시행했다.



DJ의 정치철학은 그래서 늘 '줄타기'처럼 위태로웠지만 고난을 딛고 대통령에 당선되고 노벨평화상을 수상하는 성과로 이어졌다. '복잡한 실타래'를 그만의 원칙과 감각으로 헤쳐나간 결과다.

하지만 대통령 당선 이후 온정주의에 흐른다는 비판을 받았고 친인척 관리에서 '누수현상'을 보이며 도덕성에 타격을 받기도 했다.

◇IMF 졸업의 수문장= 박정희 정권의 '조국근대화론'에 맞서 1980년대 중반에 '대중경제론'을 내놓았다. 대중경제론은 '지속가능한 경제', '양적·질적 성장의 균형'을 강조한 원조이론이라 할 수 있다. 박 정권의 수출주도 자본주의 산업화에 맞서 대중의 역할과 가치를 회복해야 한다는 게 핵심 골자다. 경제에 '민중' 개념을 접목해 국민적 관심을 불러 일으킨 첫번째 시도였다.



그가 대통령에 당선되고 '국민의 정부'가 출범하자 재계의 관심은 온통 새롭게 펼쳐질 재벌정책에 쏠렸다. '친 민중, 반재벌 정책'이 등장할 것으로 우려했다. 하지만 'DJ노믹스'는 IMF 극복을 최우선 과제로 삼고 친재벌 성향의 정책과 서민지향 정책을 동시에 아우르는 내용으로 전개됐다. 당면한 경제·사회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실용주의'로 채색됐다.

DJ노믹스는 '민주적 시장경제론'이란 말로 요약된다. 사회 형평과 시장질서 확립을 위해 정부 개입을 허용하는 이원화된 지향이다. 대중경제론에서 주장했던 '생산적 복지론'(경제성장과 복지를 동시에 추구)의 세련된 버전이라 할 수 있다.

DJ노믹스는 미국 중심의 국제경제·정치 질서에 편입돼 성장을 찾는 '신자유주의적 전략' 쪽으로 많이 기울어졌고, 급진·진보진영의 거센 반발에 부딪히기도 했다. 하지만 △재벌의 독과점 폐해 견제 △재무구조 건전성 강화 △순환출자 및 상호지급보증 해소 △부실금융기관 퇴출 등 재벌·금융 구조조정은 기대 이상의 효과를 발휘하며 IMF를 4년만에 공식 졸업하는 밑거름이 됐다. 대우그룹 해체, 빅딜로 대표되는 사상 초유의 기업 구조조정 등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한국 경제가 새롭게 도약하는 계기를 마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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