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中企 구조조정 "고민되네"

머니투데이 김익태 기자, 임동욱 기자 2009.07.08 14: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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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D 등급 솎아 내기 막바지..당국 눈치도 살펴야

"이 회사는 충분히 살아날 수 있습니다. 필요하면 부도 시 책임지겠다는 서약서까지 쓰겠습니다."

은행 여신 50억 원 이상 500억 원 미만 중소기업에 대한 구조조정을 진행 중인 시중은행의 한 부행장은 얼마 전 여신 심사역들에게서 이 같은 보고를 받았다. 금융감독 당국이 엄정한 심사를 요구하고 있는 터라 "내년까지 부도가 날지 여부까지 판단하라"고 한층 보수적인 평가를 지시했다. "구조조정 기업 수를 무시할 수 없지만, 심사역들이 이렇게까지 나오는데 뭐라고 할 수 있겠느냐"며 그는 고개를 저었다.

중소기업 1차 구조조정이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C등급(기업개선작업 대상) D등급(부실기업) 대상을 놓고 감독당국과 채권은행간 줄다리기가 한창이다.



당국은 엄격한 심사를 독려하고 있다. 직접적인 지시는 없었지만, 은행들은 구조조정 기업 수를 늘리라는 압박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자체적으로 객관적인 평가를 하고 있는데 간섭이 지나치다는 불만 섞인 목소리도 나온다.

◇"압박 한다고 될 일이냐"= 이번 신용위험평가 대상은 861곳. 기본평가대상인 5000여 회사를 대상으로 기본평가를 진행한 결과 세부 평가가 필요하다고 판단된 업체들이다.



당국은 당초 이달 15일까지 평가를 마무리하려다 10일까지로 일정을 앞당겼다. 갈 길이 먼만큼 속도를 내겠다는 의지다. 최근 주채권 은행의 단독 워크아웃(기업개선작업)을 활성화시킨 것도 이 때문이다.

속도가 빨라지는 것에 비례해 여신과 리스크를 관리하는 은행원들의 피로는 쌓여가고 있다. 과거 외환위기 때는 대기업 중심의 구조조정 이뤄졌지만, 이번에는 중소기업과 가계여신이 핵심인 탓이다. 기업의 미래가치는 물론 등급 간 경계선에 걸린 곳들을 솎아 내기가 간단치 않다.

은행별 차이는 있지만 대략 10% 가량을 구조조정 대상에 올려놓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이번 평가에서 C등급을 받으면 워크아웃에 들어가고 D등급은 퇴출 절차를 밟게 된다.


C,D 등급 기업 수를 놓고 당국의 눈치도 살펴야 한다. 구조조정이 잘못되면 해당 임원은 물론 은행장까지 책임을 묻겠다고 벼르고 있는 탓이다. 시중은행의 한 임원은최근 '엄정하게 심사해 달라'는 당국의 전화를 받았다. 업계에서 잔뼈가 굵은 그가 '엄정한 심사'의 의미를 모를 리 없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었는데 당국이 전화했다고 그대로 따라갈 수는 없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에 평가 내용을 재차 들여다봤다고 했다. 또 다른 은행 관계자는 "기업들이 부당하게 평가받았다며 소송을 제기할 수 있어 C,D 등급을 쉽게 늘릴 수도 없다"며 "일부 건설업체들의 경우 은행과 당국이 생각하는 게 다르다"고 말했다.



◇문제는 10억원 미만 中企= 1차에 이어 9월말 까지 신용위험평가를 받아야 하는 곳도 있다. 외부감사를 받는 여신 30억 원 이상 50억 원 미만의 중소기업들이다. 11월 말까지는 여신 30억 원 이상의 비외부감사 기업과 개인 사업자, 여신 10억 원 이상~30억 원 미만인 외부감사 기업들 등 총 4만여 개의 중소기업이 평가를 거쳐 수술대에 오를 예정이다.

은행권은 특히 10억 원 미만의 기업을 주목하고 있다. 사실상 재무제표가 없는 탓이다. 있어도 믿을 수가 없다. 은행 대출을 유지하려 매출 등을 부풀릴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당국은 영업 현금흐름, 이자지급능력 등 재무적 기준 외에 연체 상황, 당좌한도 소진율, 할인어음 연장률 등 질적 기준을 더해 평가하라고 지도하고 있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10억 원 미만의 기업들은 해당 지점장이 가장 잘 아는데 당국이 불명확한 잣대를 갖고 일률적으로 평가하라며 강제하는 것은 지나친 과욕"이라며 "시한이 11월 말로 여유가 있는 만큼 합리적인 기준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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