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소통, 주역으로 풀어보면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인겸 더벨 대표이사 부사장 2009.06.22 1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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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상의 기호로 표현한 우주론인 '주역'의 64괘 가운데 12번째가 '천지비'(天地否)입니다. 괘의 모양으로 말하자면 하늘이 위에 있고 땅이 아래에 있는 형상입니다.
 
땅 위에 하늘이 있으니 가장 자연스럽다고 할 수도 있지만 주역에서는 이를 소통되지 않고 막혀 있는 상황으로 해석합니다.
 
왜 그럴까요. 임금이, 지도자가, 혹은 리더나 CEO가 위에 앉아서 자기 목소리만 내고, 자기만 높다고 하고, 자기만 옳다고 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요. 반대로 민초는, 국민은, 회사의 일반 직원들은 자꾸 아래로 아래로만 향하면 그 나라는, 그 회사는, 그 조직은 어떻게 될까요.
 
하늘과 땅이 교감해서 생명을 낳게 하는 게 사람의 도리인데 천지비의 상황은 당연히 사람의 도리가 아닙니다. 그 결과 큰 것이 가고 작은 것이 옵니다. 대인이 가고 소인이 옵니다. 소인의 도는 자라고 군자의 도는 소멸합니다. 내부는 사실 아주 취약한데도 겉으로는 강한 것처럼 포장합니다. 상하가 교통하지 못하니 천하에 나라는 없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군자가, 나라의 인재가, 조직의 핵심 인력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군자는 큰 갓을 쓴 채 말이 없고 마음만 썩입니다. 군자는 자신의 덕을 숨김으로써 어려운 시절을 피하게 됩니다. 당연히 녹을 받는 벼슬길에 나가질 않습니다. 결국 안방을 차지하는 것은 소인배들입니다.
 
이런 군자의 처세를 잘못이라고 할 수도 있지만 난세에는 덕을 숨기고 강호에 묻혀 사는 게 최고의 지혜입니다.
 
짧게 보면 2500년 전, 길게 보면 5000년 전부터 쓰이고 해석된 주역은 지금 읽어봐도 가슴에 와 닿습니다. 무섭고 두렵다는 생각조차 듭니다. '위편삼절'이라고 해서 공자가 죽간을 꿰맨 가죽끈이 3번이나 끊어질 만큼 수없이 읽은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신문과 방송이 있고 인터넷이 있고 메신저가 있고 휴대폰이 있는데다 기술과 문명의 발달로 우리가 대화하고 소통하는 방식이 획기적으로 변화한 시대에 하늘과 땅이 막혀 버린 사방불통의 천지비를 말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렇지만 누구도 한국 사회의 불통을 부인하지 못하는 게 우리의 상황입니다. 소통이 부족하다는 지적을 받는 우리 대통령은 오죽했으면 관계맺기 사이트 '트위터' 가입을 고려하고 있다고 했을까요.
 
최근 머니투데이 조찬간담회 자리에서 한국 경제의 상황과 위기 대응책을 설명하던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이 마지막으로 부탁하고 당부한 것도 다름 아닌 소통이었습니다.
 
사실 윤증현 장관 등 2기 경제팀이 그나마 금융위기라는 급한 불을 끈 것도, 실물경기의 급격한 추락을 막은 것도 시장과 소통을 통한 신뢰 회복 덕이었습니다.
 
중간지대가 사라지고, 소통을 주도해야 할 언론조차 좌우 양 극단으로 치닫는 지금 하늘과 땅이 막힌 상황을 뚫으려면 하늘이 아닌 땅이 위로 가고, 하늘은 아래로 향하는 '지천태'(地天泰)의 괘로 돌아가야 합니다.
 
지도자는 아래로 내려가고, 민초는 위로 가는 형국이 돼야 합니다. 진보는 보수의 자리로 가고, 보수는 진보의 자리에 앉아봐야 합니다. 좌파는 우파의 입장에 서보고, 우파는 좌파의 시각에서 세상을 보는 아량과 여유를 보여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작은 것은 가고 큰 것이 옵니다. 임금과 신하와 백성과 하늘의 뜻이 하나가 되는 '대동'(大同)의 세상이 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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