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실패하지 않겠다면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인겸 더벨 대표이사 부사장 2009.06.0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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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은 어떤 자리입니까. 왜 성공하기보다 실패할까요. 왜 선거 때 그렇게 많은 지지를 받았다가도 취임하면 곧장 지지율이 30%, 10%로 떨어지는 것일까요.
 
'주역'에는 하늘 끝까지 오른 용은 후회한다는 '항룡유회'라는 말이 있습니다. '항룡'은 대통령일 수도 있고, 최고경영자(CEO)일 수도 있습니다. 주역을 아주 열심히 읽었다는 공자의 해석에서 답을 찾을 수 있습니다.

'항룡은 귀하지만 자리가 없고, 높지만 자기 백성이 없으며, 휘하에 현자들이 많지만 누구도 보좌하지 않는다. 그래서 움직이면 후회한다.'



대통령의 자리, CEO의 자리는 절대고독의 자리입니다. 많은 국민이 있고, 직원이 있지만 진심으로 따르고 지지하는 사람은 드뭅니다. 참모가 많지만 제대로 보좌하는 사람도 없습니다. 운명적으로 실패할 수밖에 없는 자리입니다.
 
실패의 운명을 어떻게 성공의 자리로 변환할 수 있을까요. 답은 있습니다. 이상과 현실의 조화입니다. 이상은 현실과 타협하고, 현실은 이상과 타협하는 것입니다.
 
중국 초나라 시대의 시 '어부사'에는 개혁을 추진하다 실패하고 멱라수에 몸을 던져 자살한 정치가이자 시인인 굴원이 어부와 대화하는 내용이 나옵니다.
 
'머리를 감은 사람은 관의 먼지를 털어쓰고, 몸을 씻은 사람은 옷의 먼지를 털고 입는다. 어찌 청결한 내가 세속의 더러운 먼지를 뒤집어 쓸 수 있겠냐'고 굴원이 자신의 고고함을 내세웁니다. 이에 어부가 빙그레 웃으면서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는 어디론가 가버립니다.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

자기의 주장과 이상만 고집하지 말고 맑은 세상에서는 맑게, 혼탁한 세상에서는 함께 흙탕물을 일으키며 타협하고 절충하며 살라는 충고입니다.
 
요즘 식으로 표현하자면 '이상'은 소통, 화합, 진정성, 탈권위, 지역주의 극복, 약자에 대한 배려, 균형발전 등이 될 것입니다. '현실'은 실용, 효율, 법치, 경제살리기, 일자리나누기, 국가브랜드 제고, 녹색성장, 구조조정, 자원외교 등이 해당될 것입니다. 실패하지 않겠다면 진보는 현실과 타협해야 합니다. 실패하지 않겠다면 보수는 이상과 타협하고, 조화를 모색해야 합니다.



보수는 진보에 비해 그래도 가진 게 있고, 기득권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때문에 스스로를 더 열어야 하고 관용과 아량을 보여야 합니다. 보수의 힘은 여기서 나옵니다.
 
항룡은 현자를 많이 거느리지만 진정 보좌하는 사람은 없다고 했습니다. 실패의 운명을 성공의 자리로 바꾸려면 사람을 어떻게 쓰는지도 중요합니다.
 
'한비자'에는 자기 아들을 삶은 국물을 마시면서까지 전쟁에서 이긴 위나라의 장수 이야기가 있습니다. 임금은 이 장수에게 전쟁에서 공로를 감안해 큰 상을 내리지만 결국 그를 멀리합니다.
 
반대로 왕이 사로잡은 어린 사슴을 어미가 따라오며 울부짖자 안타까움에 사슴을 살려보낸 신하를 처음에는 노여움에 내쫓지만 얼마 후 다시 불러들여 아들의 스승으로 삼는 왕이 나옵니다.
 
실패하지 않겠다면 대통령은 아랫사람을 고르는데 왕과 같은 안목이 있어야 합니다. 성공한 CEO가 되려고 해도 마찬가지입니다. 뭐든지 맡겨만 달라고 달려드는 참모가 제일 위험합니다. 하명만 하시라는 과잉충성의 참모가 제일 경계해야 할 사람입니다. 충성모드밖에 모르는 참모는 결국 보스를 곤경에 빠뜨립니다. 물론 자신도 얼마 안 있어 용도폐기되고 말지요.

성공하는 대통령, 성공하는 CEO를 많이 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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