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기에 남다른 STX의 절묘한 재테크 전략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9.06.16 14: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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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목을 사들이는 게 아니라 보유 현금으로 묘목을 사서 키운다"


- 범양상선, 아커야즈 등 대형 M&A 에도 불구 건재
- 주가 높을땐 주식으로, 낮을땐 채권으로 자금조달
- 금융위기 상황 전후로 거시적으로 절묘한 선택


대규모 인수·합병(M&A)을 단행한 일부 그룹들이 M&A의 후유증을 겪고 있는 것과 달리 비슷한 전철을 밟아온 STX그룹만은 건재를 과시하고 있다.



범양상선(현 STX팬오션), 아커야즈(현 STX유럽) 등 대형 기업들을 차례로 인수하면서도 STX그룹이 자금난을 피할 수 있는 비결은 뭘까? 전문가들은 인수 때 차입을 최소화하고, 상장 등을 통해 자금을 조기에 회수한 전략이 주효했다고 평가한다.

16일 업계에 따르면 STX그룹이 2004년 범양상선, 2007∼2008년 아커야즈를 인수하는데 투입한 자금은 약 1조9000여원에 달했다. 범양상선 인수에 4300억원, 아커야즈 인수에 1조5000억원을 썼다.



그러나 대규모 M&A 이후 유동성 곤란을 겪으며 채권단과 재무약정을 맺거나 자구안을 내놓은 그룹과 달리 STX그룹은 금융위기의 파고를 비켜갔다.

최근 인수한 아커야즈는 올해 영업흑자 전환이 예상되고, 2∼3년 내에는 상장도 추진된다. 지난 15일에는 STX조선이 유럽 선사로부터 탱커선 총 8척을 3억4000만 달러에 수주하면서 올해 국내 상선 부문에서는 처음으로 '수주 0' 상태를 벗어났다. 선수금 납입이 이뤄지면 유동성에 대한 걱정은 크게 줄어든다.

다른 그룹들처럼 대규모 차입을 일으켜 초대형 기업을 인수하는 대신 중간 규모 기업을 주로 보유 현금만으로 사들이는 것이 STX그룹이 구사한 전략이다.


강덕수 STX그룹 회장은 그동안 수차례 "남들은 거목을 사들이지만, 우리는 묘목을 사서 거목으로 키운다"고 말해왔다.

상장과 지분 매각을 통해 자금을 조기에 회수하는 것도 STX그룹 M&A 전략의 특징이다. 대동조선(현 STX조선해양)과 범양상선이 인수 후 상장으로 현금을 회수한 사례다. STX유럽에 대해서는 지난 2월 오슬로증권시장(OSE)에서 상장폐지시켰으며 향후 기업가치를 높은 뒤 재상장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STX그룹의 전략은 최근 경제위기를 전후로 절묘하게 맞아떨어졌다. 우선 2007년까지 주식시장 호황 국면에서는 STX조선해양과 STX팬오션을 상장시켜 현금회수 규모를 극대화했다.

지난해에는 STX유럽 지분 공개매수에 약 5000억원을 투입했지만, 리먼브러더스 파산(2008년 9월) 직전인 8월에 납입을 완료, 환율 급등으로 인수대금이 불어나는 사태를 피해갔다.

또 타기업 인수 과정에서 차입을 최소한했던 덕분에 올해초 경제위기 상황에서는 부채비율에 대한 부담없이 회사채를 충분히 찍어 자금난을 넘길 수 있었다. 올들어 16일까지 STX그룹 상장 계열사인 ㈜STX, STX팬오션, STX조선해양은 총 9200억원 어치의 회사채를 발행했다.



이어 3월 이후 주식시장이 호전 기미를 보이기 시작해 주식 값이 높이지자 STX그룹은 다시 상장 또는 지분 매각을 통한 현금 확보를 추진하기 시작했다. STX그룹은 지난 5월에는 STX엔파코를 상장시켰고, 현재 비상장 계열사인 STX중공업과 STX에너지의 지분 가운데 일부에 대한 매각을 추진 중이다.

특히 STX중공업에 대해서는 구주 매각과 유상증자를 동시에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STX그룹은 내년 2분기 중 STX중공업을, 내년 4분기 중 STX에너지를 국내 증시에 차례로 상장시킬 계획이다. 강 회장과 유천일 ㈜STX 전략기획본부장(전무) 등이 STX그룹의 이 같이 재무전략을 이끌고 있다.

STX그룹 관계자는 "차입보다는 보유 현금으로 기업을 인수한 뒤 상장을 통해 자금도 회수하고, 성과도 투자자들과 공유해야 한다는 것이 강 회장의 철학"이라며 "자금 운용의 안정성, 자금의 조기회수 등이 강 회장이 가장 크게 관심을 갖는 부분들"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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