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몰랐던 韓 '위기대응'의 힘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9.06.18 07: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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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수년간 선제적 규제 '방패'… 외국 시각 달라져

편집자주 글로벌 경제위기 속 한국경제를 보는 세계의 시선이 달라졌다. 지난해 9월 위기가 시작될 때만 해도 한국을 향한 눈빛은 냉랭했다. 금융 선진국들도 버티지 못하는데 한국이 세계적 위기의 파도를 헤쳐나갈 수 있겠냐는 의구심이 강했다. 수출 의존형 경제구조를 감안할 때 위기탈출은커녕 침체의 장기화를 걱정해야 한다는 비아냥도 적잖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외환위기 이후 마련된 감독시스템은 위기 극복의 중요한 열쇠가 됐다. 사전적 규제, 선제적 대응, 적극적 홍보 등은 한국경제를 규정짓는 새로운 키워드로 자리잡았다. 금융선진국들은 외환위기와 글로벌 경제위기 등 2차례 험한 파도를 헤쳐나간 한국경제의 힘에 주목하고 있다.

[세계가 다시 보는 한국금융]

"한국을 보는 눈이 사뭇 달라졌다." 최근 영국을 다녀온 고위공무원의 말이다. 그는 글로벌 경제위기 속 도드라진 한국경제의 위상을 새삼 실감하고 왔다.

금융 최강국에서 부도 직전까지 몰린 영국에서 한국을 향한 부러운 눈빛을 접하니 '격세지감'도 느꼈다고 한다. 물론 한국만은 아니다. 그는 4개 나라를 꼽았다. 독일 네덜란드 캐나다 그리고 한국이다.



앞서 언급한 4개 나라 중 독일과 네덜란드는 '보수적' 금융으로 위기를 넘겼다. '커버드본드'(Covered Bond)가 좋은 예다.

미국이나 영국이 자산유동화증권(ABS)이나 여타 파생상품으로 '선진'을 과시했다면 독일 등은 튼실한 밑바탕을 토대로 채권을 발행했다. 이게 위기 때 빛을 발했다. 무리하지 않은 게 오히려 득이 된 셈이다.



한국은 다른 길을 걸었다. 규제의 힘, 감독의 힘이었다. 한때 '독'으로 여기던 규제가 '은인'이 됐다는 얘기다. 우선 글로벌 금융위기 폭풍의 바람막이가 된 것으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규제가 꼽힌다.

부동산 억제 정책으로 과도하다는 지적을 받던 규제지만 결과적으로 '효자' 노릇을 했다는 데 이견이 없다. 참여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이들도 LTV·DTI 규제에는 찬사를 보낸다.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로 촉발된 글로벌 경제위기의 직격탄을 피할 수 있었던 것도 사실 이 덕분이다.

외국의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또 있다. 위기가 닥친 후 취한 한국의 다양한 액션들이다. 국제결제은행(BIS) 기준 자기자본비율을 과도하다 싶을 정도로 끌어올린 게 대표적이다. 선진국들이 10%대 전후로 맞추고 있을 때 한국은 최소 12%의 잣대를 들이댔다. 민간은행들은 무리라고 강변했지만 당국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자본확충펀드까지 만들며 곳간에 돈을 쌓았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BIS비율이 높아지니 자연스레 한국 은행과 금융에 대한 불안한 시선이 사라진 것"이라고 말했다. 이른바 '선제적 규제'가 한국경제의 버팀목이 됐다.

적극적인 자세도 달라진 모습이다. 우왕좌왕하기보다 국제 금융시장에 적극적으로 알리는 게 더 낫다는 것을 알고 해외투자자를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긁어 부스럼 만든다는 게 10년 전 자세였다면 이젠 당당히 알리는 길을 택했고 이 방식은 통했다.



선제적 규제나 발빠른 행보, 적극적 대처 모두 외환위기의 '학습효과'다. 전직 고위관료는 "외환위기 이후 '컨틴전시플랜'이 마련됐고 수정작업을 거쳐 매번 업그레이드된다"고 말했다.

금융위원회 고위관료는 이를 두고 '좋은 상품'이라고 했다. 선진국들이 각종 파생상품을 '선진기법'이란 이름 아래 팔았다면 한국은 '위기대응법'을 선진국들에 알려줄 때란 얘기다. 감독시스템이나 각종 규제시스템도 포함된다.

금융위 관계자는 "글로벌 경제위기를 겪으며 한국경제의 위기대응능력에 대한 놀라움이 커졌다"면서 "영국 등 선진국 관료들이 한국경제의 시스템을 배우러 한국으로 몰려들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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