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거 선례를 보면 이 같은 조기 금리인상론은 매우 성급한 주장이다.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의 경우, 경기침체 이후 금리인상을 재개하는데 대단한 인내심을 보여 주었다. 마지막 금리인하 이후 인상을 시작하기까지 12~17개월 가량이 소요되었다. 경기침체를 충분히 벗어날 때까지 충분히 기다린 것이다. 이번에는 최종 금리인하가 지난해 12월이었으므로, 과거 선례를 적용하면 빨라도 금리인상은 올해 12월이고 내년으로 넘어갈 가능성이 더 커 보인다.
조기 금리인상을 주장하는 의견은 인플레이션을 걱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세계적으로 막대한 통화량이 풀려 결국엔 심각한 인플레이션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는 것인데, 충분히 설득력이 있다.
서브프라임 부실에서 시작한 금번 금융위기 그리고 경기침체가 일어난 후, 경제에 대해 조금이라도 안다고 하는 사람들의 일관된 견해는 금번 위기는 오래 지속된다는 것이었다. 주요 연구소의 경기전망을 보아도 내년까지는 저성장이 대세이다. 그리고 2차 금융위기가 찾아올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친절한 설명도 덧붙여져 있다.
불과 몇 달 전만 하더라도 대공황에 버금가는 경제위기와 디플레이션을 걱정했던 것이다. 그런데,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고 언제 그랬냐는 듯 경기 문제는 등한시하고 인플레이션 방지를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지 의문이다. 마치 이제 막 의식을 차린 대수술 환자에서 진통제를 끊고 운동을 강요하는 모양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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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린턴 행정부 시절에 연준의 부의장을 지낸 앨런 블라인더 교수는 다음과 같은 말은 하였다. ‘이성적인 사람이라면 두통이 나는 감기를 치료하기 위해 뇌수술을 자청하지는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 전체로는 툭하면 인플레이션이라는 감기를 치료하기 위해 뇌수술에 버금가는 처방을 내리고 있다’
앞으로 닥쳐 올 인플레이션이 앨런 블라인더 교수의 말처럼 감기 정도로 경미할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러나 그것을 막기 위해 당장 뇌수술을 해야 할 일은 아니다. 전세계적인 수요부진을 감안할 때 내년까지 인플레이션은 감내할 수 있는 수준이 될 전망이다. 최근 원자재가격이 들썩이고 있으나, 이는 충분히 예견했던 바이고 또 감내해야 할 내용이다. 돈을 이렇게 풀고서 인플레이션 신호가 전혀 없을 수는 없으며, 전세계 중앙은행들이 이 정도를 예상하지 못했을 리 없다. 이 정도 신호에 놀라 금리인상을 시작한다면 애초에 공격적인 인하를 하지 말았어야 했다.
다행히 금융시장의 조급증과는 달리 전세계 중앙은행들은 중심을 잡고 있다. 지난 주 금통위에서는 기준금리가 넉 달째 동결되었고, 기자회견에서 한은총재는 당분간 금리인상의 의사가 없음을 분명히 했다. 이보다 앞서 지난 ECB도 기준금리를 동결하며, 트리셰총재는 ‘현행 금리는 적정한 수준이며 경기후퇴 영향으로 물가상승 압박이 크지 않을 것’이라고 언급하였다. 다가오는 23~24일에 열리는 미국의 공개시장위원회의 내용도 다르지 않을 것이며, 섣부른 조기 금리인상론을 반박할 가능성이 높다.
일반인들은 채권수익률 하나만 보고, 또 인플레이션 하나만 문제 삼아 금리인상을 쉽게 주장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경기도 돌봐야 하고 물가도 걱정해야 하고, 혹시나 모를 금융기관 도산도 대비해야 하고 국채 발행금리의 지나친 상승도 염려해야 하는 중앙은행은, 신중에 신중을 거듭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