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면칼럼] 5월의 어느 날

머니투데이 박종면 편집인겸 더벨 대표이사 부사장 2009.05.11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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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보다 나뭇잎이 더 아름다운 5월입니다. 이 계절만큼 아름다운 노래, 아그네스 발차가 부르는 '5월의 어느 날'을 듣습니다.
[박종면칼럼] 5월의 어느 날


"5월의 어느 날 너는 떠나버렸지/ 아들아 네가 그렇게도 좋아하던 봄날에 나는 너를 잃어버렸구나/ 너는 테라스에 올라서서 눈 속 가득히 햇빛을 받아 마시곤 했지/ 그리고 달콤한 목소리로 너의 큰 세상에 대해 얘기하고/ 우리가 함께 한 어느 날 내게 약속도 했었지/ 하지만 네가 사라진 지금 나의 빛도 사라져버리는구나."
 
그리스가 사랑하는 작곡가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의 곡에 그리스가 자랑하는 메조소프라노 아그네스 발차가 부르는 '5월의 어느 날'은 곡은 아름답지만 전쟁터에 나간 아들을 회상하며 아버지가 부르는 슬픈 노래입니다.
 
테오도라키스로 상징되는 민족성 가득한 그리스의 낭만주의가 탄생한 것은 한국만큼이나 외세의 침략과 암흑기가 많았던 그리스의 슬픈 역사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름다움은 슬픔의 또다른 이름입니다. 역사에도 노래에도 자연에도 통용되는 원리입니다. 아그네스 발차의 목소리가 특히 매력적인 것도 감미롭지만 동시에 낮게 젖어드는 애잔함 때문입니다.

☞ 아그네스 발차가 부르는 '5월의 어느날' 듣기




#5월의 아름다움과 5월의 낭만, 5월의 슬픔과 애잔함을 얘기하자면 중국 낭만문학의 대표인 초사(楚辭)와 5월의 시인인 전국시대 굴원(屈原)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쏜살같이 흐르는 세월을 쫓아가지 못할까 서두르고 세월이 나를 기다려 주지 않을까 두려워한다/ 봄에는 목련꽃에 굴러 흐르는 이슬 마시고 가을엔 떨어지는 국화꽃잎 먹는다(이소) 초여름의 짧은 밤이길 바랐는데 어찌 하룻밤이 일년처럼 긴가/ 길은 아득한데 넋은 하룻밤에 아홉 번이나 가노라(구장)."
 
초사는 중국 남방문학의 대표답게 이처럼 아름답지만 초사의 대표시인 굴원의 삶은 비운과 울분의 연속이었습니다. 마침내 59세의 나이로 굴원은 멱라수에 몸을 던져 자살하고, 후세 사람들은 그가 죽은 5월5일을 기려 단오절을 만들었습니다.

#굴원이 쓴 방황과 고뇌의 시 '구장'(九章)에는 '많은 입은 단단한 쇠까지도 녹여버린다'는 구절이 나옵니다. 젊은 나이에 왕의 총애를 받는 권력자가 돼 부국과 강병을 추진하지만 정적들의 모함으로 끝내 좌절하고 마는 굴원의 삶이 바로 입에 녹아버린 경우입니다.
 
'많은 입은 쇠까지도 녹인다'는 말은 지금도 여전히 위력적입니다. 신문과 방송 인터넷에 '찌라시'까지. 우리 시대의 입들은 예전과 비교조차 되지 않을 만큼 더 강력하고 폭발적입니다.
 
돌이켜보면 서브프라임발 경제위기 보다 더 무서운 것은 무수한 입들이 만들어 퍼뜨린 공포감이었습니다. 치사율에서는 일반독감 수준에도 못미치는 신종인플루엔자도 병원균 그 자체보다 입들이 만들어 퍼뜨린 폐해가 훨씬 치명적이지요. 죽은 여배우와 관련해 무수한 입이 조작해 퍼뜨렸던 허구와 왜곡은 어떻고요.



그러나 굴원의 삶과 시가 그랬듯이 고통과 울분을 기꺼이 감수함으로써 스스로의 존재를 확인할 뿐더러 더 성숙해지는 게 사람이고 문학이고 역사입니다.
 
그리스의 슬픈 역사가 없었다면 미키스 테오도라키스와 아그네스 발차의 '5월의 어느 날'이나 '기차는 8시에 떠나네'와 같은 노래가 나왔을까요. 강물에 목숨을 버릴 만큼의 비통함과 울분, 고독함이 없었다면 호메로스의 '일리아드'와 '오디세이', 단테의 '신곡'에 비유되는 초사의 대표작 '이소'(離騷)가 탄생할 수 있었을까요. 아름답지만 슬픈 5월의 시와 5월의 노래, 5월의 나뭇잎이 던져주는 5월의 메시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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