번짓수 못찾고 겉도는 SRI펀드

머니투데이 박성희 기자 2009.06.08 1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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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RI지수 부재, 지속가능보고서 부실..사실상 일반펀드화

사회책임(SR)이 지속가능경영의 화두로 떠오른 뒤 사회책임을 주제로 한 투자가 활성화됐으나 여전히 홀로서지 못한채 겉돌고 있다. 국내 시장에서 SRI 기반이 취약한 데다 3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투자 기준이 명확하지 않아 이론따로 현실따로인 모양새다.

◇ SRI펀드는 번짓수가 없다?



국내 처음으로 SRI 펀드가 출시된 건 2006년 8월이다. 환경, 사회, 지배구조(ESG) 요소를 바탕으로 기업의 지속성장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투자한다는 게 SRI펀드의 기본 전략이다. 앞으로 계속 성장할 수 있는 기업에 투자해 장기적으로 안정적인 수익을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SRI 이론에 맞게 '정석' 투자하는 펀드는 찾기 힘들다. 전문가들의 꼽는 국내 SRI펀드의 가장 큰 한계는 기업의 ESG 요소를 합리적으로 반영한 'SRI지수'가 없다는 것. 국내 출시된 SRI펀드의 벤치마크(기준지수)는 대부분 코스피200지수다.



이렇다 보니 SRI펀드의 투자 보유 종목은 누구나 알만 한 국내 대형주로 채워져 있다. 대신증권에 따르면 국내 SRI펀드 14개의 상위 보유 종목은 삼성전자 (63,000원 ▼100 -0.16%), 포스코(POSCO (375,000원 ▼500 -0.13%)), 현대차 (250,500원 ▲4,500 +1.83%), SK텔레콤 (57,500원 ▼900 -1.54%), 현대중공업 (198,300원 ▲7,300 +3.82%), KB금융 (83,600원 ▲1,100 +1.33%), KT (41,800원 ▲100 +0.24%), 신한지주 (55,500원 ▼1,400 -2.46%), 한국전력 (21,950원 ▼250 -1.13%), SK에너지 (111,000원 ▼1,700 -1.51%), LG전자 (110,100원 ▲600 +0.55%) 등으로 나타났다. 모두 시가총액 상위종목이다.

삼성전자는 14개 펀드 모두 편입돼 있고, 포스코, 현대차도 각각 12개, 11개 펀드가 투자했다. SRI펀드 내 대형주 비중은 2006년 이후 평균 77.34%에 달한다. '무늬만 SRI펀드'라는 지적이 사라지지 않는 것도 이 때문이다.

SRI지수가 없으니 기관별로 국내 SRI펀드 유형조차 파악되지 않는 실정이다.


국내 펀드 가운데 'SRI' 문구가 들어간 펀드만 SRI펀드로 보느냐 기업의 ESG 요소를 감안한 투자 전략까지 감안하느냐에 따라 SRI펀드 수는 11~15개를 오간다. 굿모닝신한증권의 경우 최근 보고서에서 '미래에셋3억만들기좋은기업K-1'(설정액 2조1580억원)을 SRI펀드로 규정하면서 국내 공모 SRI 펀드 전체 설정액을 2조6000억원으로 집계했다. 그러나 정작 미래에셋자산운용측은 "기업 지배구조가 우수하고 배당성향이 높은 기업의 주식에 투자하는 성장형펀드이지 SRI펀드는 아니다"라고 설명했다.

운용사 입장에선 투자할 종목이 많지 않다는 게 고민거리다.



SRI펀드를 운용중인 한 펀드매니저는 "기업의 '지속가능보고서' 발간 여부가 SRI 투자 대상 결정에 중요하지만 권장사항이다 보니 이를 제대로 발간하는 기업이 많지 않다"고 토로했다.

또 다른 운용사의 매니저는 "생존에 급급한 기업은 ESG 요소를 고려하지 못한다"며 "어느 정도 기업의 규모가 돼야 지속성장이 가능하기 때문에 SRI 초기인 국내 실정상 대기업 위주로 투자가 이뤄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 SRI펀드 성적을 결정짓는 건 SRI가 아니다?



포트폴리오 구성상 일반 주식형펀드와 다를 게 없다 보니 SRI펀드 성과를 결정짓는 건 종목과 업종 비중이다. 얼마나 지속성장 가능한 기업에 투자하느냐 여부는 찾아볼 수도 없다.

펀드평가사 제로인에 따르면 지난 5일 현재 '동양Great Company(SRI)증권투자신탁 1(주식)A'는 연초 이후 39.92%의 수익률로 SRI펀드 가운데 최상위권에 올랐다. 반면 '신영SRI주식(C/A)'는 올들어 20.54% 이익을 얻는 데 그쳤다.

'동양Great Company(SRI)증권투자신탁 1(주식)A'는 3월 말 현재 전체 자산 내 중소형주 투자 비중이 15.8%, 코스닥 5.01%로, '신영SRI주식(C/A)'(11.03%, 1%)보다 높다. 연초 이후 국내증시가 중소형주 위주로 종목장세를 펼치면서 중소형주 비중이 높은 펀드가 성과 회복에 덕을 본 셈이다.



번짓수 못찾고 겉도는 SRI펀드


권정현 굿모닝신한증권 애널리스트는 "일부 SRI펀드는 SRI 기준에 적합한 기업을 70% 수준 편입하고 나머지는 업종 대표주나 우량주를 편입해 성과를 극대화한다"며 "특히 운용사 내부에 SRI전문 애널리스트나 매니저가 없는 경우 수익 확대를 위해 재무적 요소를 더 많이 반영하게 된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현재 국내 SRI 시장이 열악하지만 국민연금이 유엔책임투자원칙(UNPRI) 가입을 계기로 SRI 규모를 주식 투자 전체로 늘리고 올 하반기 SRI지수가 탄생하면 국내 SRI 시장도 빠르게 성장할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에 따르면 5월 말 현재 국내 SRI 투자 규모(공·사모 포함)는 2조9100억원으로, 2008년 이후 정체 수준이다. 미국의 SRI 규모가 1995년 6390억달러에서 2007년 2조7110억달러로, 유럽이 2002년 3360억유로에서 2조6650억유로로 성장한 것과 사뭇 다르다.



자산운용업계 관계자는 "SRI펀드의 정체성 혼란은 SRI 초기 단계에서 겪어야 하는 성장통"이라며 "기업의 ESG 정보 공개가 의무화되고 SRI가 장기적으로 이익이라는 공감대가 형성되면 SRI 저변이 확대될 것"이라고 기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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