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이 되어 남겨 봅니다"

봉하(김해)=김지민 기자 2009.05.28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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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태백'이라는 필자가 전하는 글 읽으며 조문객들 눈물

고인이 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발인제를 몇 시간 앞둔 28일 봉하마을의 밤. 고인을 추모하듯 어둠이 소리없이 내려앉고 있지만 조문객들은 담벼락에 붙어있는 글귀 하나 하나를 울음 속에 삼키며 발길을 떼지 못하고 있다.

'백태백'이라고 밝힌 필자는 봉하마을 안 노사모(노무현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 회관 옆 담벼락에 자신이 적은 글을 쓴 대형 플래카드를 걸어놓았다. 조문객들은 이 앞에 빼곡히 모여 글을 읽어 내려가며 노 전 대통령을 애도했다.



필자는 '난 돈보다 지지자들의 따뜻한 눈빛을 먹고 사는 사람이다. 평생 나만 보며 열광하는 따뜻한 그들의 가슴을 먹고 살았다. 돈이 탐날 이유가 없다. 돈 벌려고 했으면 변호사를 계속했지 정치판에 왜 왔겠느냐'며 노 전 대통령의 심경을 헤아리듯 밝혔다.

"정치적 득실을 따지려고 정치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나를 바보 노무현이라고 했고 부족한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어준 것 아닌가'라고도 했다.



서울에서 가족들과 함께 조문하러 온 한영혜(53)씨는 "이 글을 읽으니까 더욱 눈물이 나고 바위에서 뛰어내리던 순간을 생각하면 가슴이 찢어진다"며 손수건으로 얼굴을 가린 채 한동안 눈시울을 훔쳤다. 한씨는 노 전 대통령의 자살 직전 심경을 대변하기라도 한 듯한 문장을 바라보며 오열했다.

'날자. 한번 날아보자. 부엉이 되어 날아보자. 처음 하는 날개짓 서툴겠지만 내가 누구냐 노무현 아니냐. 한번 부딪혀보자. 되도록 세게. 아프게. 부딪혀보자'

◇다음은 내용 전문.


<감히 따라가 헤아려본 노 대통령님의 심정>

돈벌이 혼자 호의호식 하려고 했으면 변호사 계속했다.



힘없는 사람도 돈 없고 빽없는 사람도 열심히 일하며 잘 살 수 있는 나라를 만들고 싶어 정치에 뛰어들었다.

남북으로, 전라도, 경상도로, 이념으로, 빈부로 나눠 갈등하는 대한민국을 '어떻게 한번 구해볼까'하는 마음에 정치에 입문했다.

강금원, 박연차, 이기명...등 뜻있는 분들의 금전적 후원과 노사모와 많은 국민의 헌신적인 지지로 대통령에 당선되어 <참여정부>라 불렸다.



50여년간 이 나라는 친일세력/군부독재/정경유착으로 돈 번 부패재벌/보수신문 등 보수라는 가면을 쓴 부정한 세력이 지배하고 있었다.

이들과 결탁 않고 역사를 바로 세울 수 있는 길은 주인인 국민을 참여시켜야 한다는 생각에 <참여정부>라 했다. 국민만이 유일한 나의 빽이라 믿었기에 검찰권마저 되돌려 주었다. 국민을 위한 정책이면 국민의 지지는 반드시 따라오리라 믿었다. 성공하리라 확신했다.

오판이었다.



보수라는 세력의 저항은 강했고 꼬투리만 잡는 조중동 신문, tv편파 방송에 믿었던 국민들 마저 그들의 집요한 이간질에 하나둘씩 멀어져만 갔다.

아, 어쩌면 좋아. 국민만 믿었는데..그것만의 나의 힘이라 믿고 설쳐댔는데...

더 이상 정치를 할 이유가 대통령을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회의가 들었다. 그만두고 싶었다.



내키지 않았지만 국민을 위해 몇 가지 정책을 폈더니 진보쪽에서도 공격해왔다. 나도 진보일텐데 그들은 나를 얼치기 진보라 몰아부쳤다. 의외의 공격이 더 무서웠고 서러웠다.

5년 내내...

드디어 임기 끝나고,



와~아! 기분좋다! 고함쳤다. 5년간 쌓였던 피로가 한방에 날라갔다. 나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반겨주는 그 눈빛이 너무 좋았다.

지지자들에게 "강물은 굽이치지만 바다를 포기하지 않는다"는 멋진 멘트를 날렸다.(사실 이 말은 명계남꺼 슬쩍했다)

이들을 실천하기 위해 준비도해야 했고 동네사람들과 오리농법도 지어야 하는 등 쉴새없이 분주했다.



그리고 많은 방문객이 찾아주어 인사도 해야했다.

"그렇게 욕하더니만 왜 왔어요" 농담도 건넸다. 사실..반은 진담이었다.

그렇게 그렇게 세월이 흘러 조용히 살 줄 알았는데, 이게 웬일?



내가 뇌물 사건의 중심에 서 있었다. 그들은 집권하자마자 집요하게 나를 조사한 모양이다.

난 돈보다 지지자들의 따뜻한 눈빛을 먹고 사는 사람이다. 평생 나만 보면 열광하는 따뜻한 그들의 가슴을 먹고 살았다. 돈이 탐날 이유가 없다.

돈 벌려고 했으면 변호사 계속했지 뭐하러 정치판에 뛰어들었겠는가? 다른 사람은 모르지만 난 그렇지 않다. 정치적 득실을 따져 정치를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를 <바보 노무현>이라 했고 부족한 나를 <대통령>으로 만들어 준 것이 아닌가 생각했다.



전직대통령의 대부분이 로비에 곤욕을 치뤘기 때문에 이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 자식놈 미국으로 보냈다. 그 과정에 정상문 비서와 박연차가 자식놈 위한답시고 돈을 보낸 모양이다. 있어서는 안될 일이었다. 그것 자체가 문제가 될 줄은 몰랐던 것 같다.

이 사실을 재임 중 내가 알았냐 몰랐냐 하는 것이 검찰 조사의 핵심인데 진실을 말해도 아무도 믿으려 하지 않는다.

검찰은 흘리고 기자들은 '설마 몰랐겠냐'에서 '틀림없이 알았을거야'로 국민에게 중계방송했다.



재판정에 서기전에 나의 재판은 이미 유죄로 결론 난 셈이다. 억울한 피해자를 막기 위해 만들어 놓은 피의자의 권리조차 나에게 주지 않으려는 듯 몰아부쳤다.

진실을 말했다. "집에서 한 일이라 몰랐다"하니 구차한 변명이라 했다.

정말 구차했다.



지지자들마저 혼란에 빠졌고 "전두환 노태우는 몇천억씩 해먹었는데 그것 조금 가지고"라며 나를 위안하려 한다. 마음이 아프다.

나와 지지자들을 이간시키고 나아가 진보진영의 분열 몰락을 노리는 그들의 속셈은 보기좋게 달성된 셈이다. 이 지경에 몰리게 되니 잠이 오지 않는다. 모두 내 죄다. 내가 부족해서다.

재판정에 서면 난 무죄일 수밖에 없다. 결백하다.



하지만 난 이미 국민으로부터 "설마 몰랐을까?"의 중죄를 받았다. 무슨 능력으로 결백을 증명하며 그들의 멍든 가슴을 치유한단 말인가? 참 구차하다. 집밖을 나갈 수 없다. 얼굴을 들 수 없다. 몸도 마음도 망가졌다.

집요한 조사로 오랜 후원자이자 영원한 동지인 강금원, 오랜친구 정상문, 이광재, 안희정...나를 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것 같다. 끝이 보이지 않는다.

나로 인해 이들이 고통 받으니 그 고통 또한 적지 않다.



이쯤에서 그들의 고통을 덜어줘야하지 않겠는가. 그들에게 신세진게 얼마인데 무슨 염치로 지켜본단 말인가? 앞으로 나를 아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고통을 겪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내가 진 빚을 갚은 일이 고작 이 방법밖에 없다 생각하니 서글프다.

이번일로 집에서 미안해한다.



미안해하지 마라. 혼자 남겨두고 떠나는 내가 더 미안하다.

원망하지 마라. 부족한 내가 더 초라해질 뿐이다.

사랑한다.



여기까지가 우리의 운명이다.

집사람 따돌리고 저승으로 향하는 길에 부모님께 인사드렸다. 어릴적 놀던 부엉이 바위, 부엉이가 날아서 부엉이 바위라 불렀겠니?

날자. 한번 날아보자. 부엉이 되어 날아보자. 처음하는 날개짓 서툴겠지만 내가 누구냐. 노무현 아니냐.



한번 부딪혀 보자. 되도록 쎄게, 아프게 부딪혀보자.

세상의 잡다한 고통 다가져 갈 수 있다면 속세에 내 허물 한 번의 고통으로 씻을 수 있다면 어디한번 부딪혀보자! 좀 더 세게 부딪혀 볼란다.

이승에서의 인연들을 위해 힘없는 노무현이 할 수 있는 마지막 사랑의 몸짓이라 생각하고 힘껏 날아야겠다.



사랑했습니다. 사랑합니다. 여러분...!
이승의 끝에서...

(대통령님의 고통의 순간을 감히 헤아려 본 한 국민의 생각입니다)
2009.5.26 백태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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