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전 대통령과 재계 총수들의 애증

오동희 이진우 이상배 기자 2009.05.25 15: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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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 개혁" 긴장관계 시작.."기업은 애국자"로

“최초로 재벌 개혁에 성공한 대통령이 되겠다.”, "해외에 나와 보니 우리 기업들이 정말 애국자라는 생각이 든다."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 테니 투자를 늘려 달라."

노무현 전 대통령의 갑작스런 서거 소식을 접한 재계 총수들은 그의 영정을 바라보며 어떤 말이 가장 먼저 떠올랐을까.



주요 대기업 총수들은 재벌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고 출발한 노 전 대통령의 재임시절 동안 긴장과 대립, 협조를 반복하며 숱한 화제와 뒷얘기를 남겼다. 미운 정, 고운 정이 뒤섞인 5년의 세월을 보냈기에 착잡함과 함께 감회가 남다를 것으로 보인다.

재계의 한 관계자는 “총수들 입장에선 생각지도 못한 서거를 맞아 조문 기간은 물론이고 앞으로도 한 동안 노 전 대통령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귓가를 맴돌게 될 것”이라며 “공과(功過)가 교차하는 만큼 깊은 애도 속에 기업과 기업인들의 역할을 새삼 되새겨 보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대기업 총수들은 노 전 대통령 재임시절 적어도 1년에 서너 차례 씩 얼굴을 맞댔다. 주로 투자확대나 일자리 창출 등을 주제로 청와대에서 직접 간담회를 갖거나 대통령의 해외순방을 수행하면서 대화를 나눴다.

노 전 대통령 집권 초기 기업인들은 긴장의 세월을 보냈다.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와 반 기업 정서의 확산으로 재계 전체가 위기감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당시 기업인들 사이에서는 “기업을 몰라도 너무 모른다”는 푸념 섞인 불만들이 쏟아져 나오기도 했다.

노 전 대통령은 그러나 차츰 ‘기업과 기업인의 역할’에 대한 선입견을 바꿔 나갔다. 집권 초기인 2003년 첫 한미정상회담에서 노 전 대통령은 수행 기업인들과 만나 “적대적이거나 편파적이지 않겠다”며 신뢰 쌓기에 애썼다.


그는 이후 해외 순방에 나설 때 “기업들이 애국자라는 생각이 든다. 기업들이 한국의 위상을 높이고 알리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을 실감한다”는 소회를 피력하곤 했다.

아울러 주요 기업인들을 정기적으로 청와대로 불러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 테니 투자를 늘려 달라”고 당부했고, 기업인들은 “그러겠다”고 화답했다. 특히 참여정부 집권 중후반기 찬반여론이 극명하게 갈린 상황에서도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을 강하게 밀어 붙이면서 기업인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총수들은 노 전 대통령의 해외순방이나 남북정상회담을 수행하면서 여러 차례 ‘색다른 경험’을 하면서 강한 인상을 받기도 했다.

2007년 10월, 노 전 대통령의 남북정상회담을 수행한 대기업 총수와 최고경영자(CEO)들은 12시간 가까이 식사를 못하며 빠듯한 일정을 소화하는 강행군을 펼쳤다. 당시 이들은 버스를 타고 이동하면서 차 안에서 육포 등으로 허기진 배를 달래 화제가 되기도 했다. ‘방북’과 ‘대통령 수행’이라는 특수한 상황 이었던 만큼 비서 등 수행원들을 대동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앞서 2004년 노 전 대통령의 러시아 방문 때는 이건희 당시 삼성 회장, 정몽구 현대·기아차 (105,600원 ▲2,100 +2.03%) 회장, 구본무 LG (84,700원 ▲100 +0.12%)회장, 최태원 SK (207,000원 ▼12,000 -5.5%)회장 등 국내 내로라하는 총수들이 미니버스에 함께 타고 이동하는 모습이 연출되기도 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당시 워낙 파격적인 행보였기에 각 그룹의 비서진들은 적잖이 당황 했었다”고 회고하면서 “총수들 입장에서는 ‘권위주의’ 타파와 함께 해외에서 강행군을 펼친 노 전 대통령과의 ‘동행’에 강한 인상을 받았을 것 ”이라고 말했다.

그는 국제행사의 국내 유치전에서는 기업의 역할을 강조하고, 기업들의 노력을 치하하기도 했다. 평창동계올림픽 유치 때는 이건희 전 삼성회장과, 여수 세계해양엑스포 유치 때는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과 유치를 위해 함께 뛰며 희비를 같이 했다.

다른 대기업의 한 관계자도 “노 전 대통령은 후보시절을 제외하곤 기업과 기업인들에게 공개적으로 반감을 드러내지 않고 오히려 신뢰를 쌓으려는 흔적이 엿보였다”며 “특히 투명경영 유도와 기업의 정치적 부담 완화 등은 높이 평가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공과가 있지만 총수들 입장에선 그래도 ‘기업은 애국자’라는 말이 가장 기억에 남을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한 재계 관계자는 "한미 FTA를 추진하고, 규제 완화에 힘을 쏟았던 노 전 대통업의 유지가 그대로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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