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365일 '공연대신 관객구경'

머니투데이 전예진 기자 2009.05.19 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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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EO&LIFE]안호상 서울문화재단 대표

↑ 안호상 서울문화재단 대표 ⓒ송희진 기자↑ 안호상 서울문화재단 대표 ⓒ송희진 기자


"극장 로비에서 관객들을 만나고 관찰하는 것을 즐깁니다. 공연 보는 것 못지않게 아주 재미있어요."

공연장 앞에서 사람을 구경하는 독특한 취미(?)를 가진 CEO가 있다. 안호상(50) 서울문화재단 대표다.

서울문화재단은 문화예술을 통해 삶의 질을 높이고 서울의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2003년 설립된 단체다. 문화예술교육프로그램을 만들고 연극·창작센터를 운영하는 등 예술가들의 창작활동을 지원하는 일을 담당하고 있다. '청계천 축제'를 비롯해 지난 10일 폐막한 '하이서울페스티벌' 등 축제와 공연예술제도 서울문화재단이 일궈낸 성과다.



◇ 관람객 향수 냄새로도 공연 성향 파악해

서울문화재단 대표이사로 취임한지 올해로 2년째를 맞이한 안 대표는 공연장을 지나가다보면 호기심이 발동해 한번쯤 멈춰 선다. "자세히 살펴보면 공연마다 관람객의 나이, 남녀구성이 각각 다릅니다. 한사람씩 오는 경우도 있고, 커플 또는 떼거지로 몰려올 때도 있죠. '말러'의 공연 같은 경우 짝을 지어오기보다는 표를 1장씩 사서 오는 경우가 많아요. 마니아층이 두터운 것이지요."



그는 공연장에 들어서는 관객의 향수냄새만 맡아도 어떤 공연인지 예상할 수 있다고 한다. 이미 관객분석에 있어서는 '도'가 텄다. "관람객 그룹에는 어떤 동질성이 느껴져요. 가끔 낯익은 얼굴이 많이 보일 때는 걱정이 들기도 합니다. 그만큼 초청관객이 많다는 뜻이기 때문에 표가 잘 안 팔렸나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이 정도 판단을 내릴 정도이니 얼마나 공연을 많이 봤을지 짐작이 간다. 그는 바쁜 와중에도 주말에 2개 씩 공연을 본다. "요즘은 바빠서 주말에 시간을 내 틈틈이 공연을 봅니다. 어떤 때는 점심 저녁으로 하루에 두 번 볼 때도 있습니다."

◇ 예술 '까막눈' 정치외교학도, 공연에 눈뜨다


1년365일 '공연대신 관객구경'
공연 '귀신'인 그도 처음엔 문화예술공연과 담을 쌓고 지냈다. 문화재단 대표이사란 직책에 걸맞게 음악이나 미술을 전공했을 것 같지만, 그는 사실 정치외교학과 출신이다.

"우연한 기회에 공연과 인연을 맺게 됐어요. 우리나라 최초의 예술행정요원을 모집한다는 공고를 보고 남들이 안 해본 일을 하고 싶어 지원했다가 예술의전당 공채 1기로 덜컥 채용됐습니다."



그에게 처음 맡겨진 일은 예술의전당의 운영계획을 세우는 일이었다. 예술의 '예'자도 모르던 터라 시행착오가 많았다. "오페라에는 치마폭이 넓은 유럽귀족들의 의상이 등장하는데 통로가 좁아서 애를 먹었습니다. 또 오케스트라 규모와 악기 특성을 고려하지 못하고 극장 입구에 마감재를 돌로 처리해 소리가 울리기도 했죠."

'좌충우돌' 실수도 있었지만 결국 그를 성장시킨 것은 공연에 대한 끊임없는 관심과 노력이었다. "주변사람들에게 인문학을 배운 놈이 왜 뜬금없이 예술이냐는 질문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럴수록 예술가들과 극단들을 만나고 공연을 관람하다보니 빠져들기 시작했죠."

예술의전당에서 23년간 근무하면서 무대에 오르는 공연은 대부분 섭렵했다. 시간이 여의치 않으면 리허설 현장에 찾아가서 보기도 했다. "전문가는 아니지만 무대예술작업현장에서 스텝들의 영향, 출연자 한사람을 볼 수 있는 기회를 놓칠 순 없죠."



기억에 남는 공연을 물으니 그는 외국 작곡가와 지휘자의 이름을 줄줄이 나열했다. 그러면서도 특정 작품을 꼽는 대신 "예술가들의 열정과 노력이 들어간 모든 공연에는 다 감동이 있다고 생각한다."고 대답했다.

◇ '진실의 눈'을 지닌 가난한 예술가 돕겠다

1년365일 '공연대신 관객구경'
안 대표는 '예술가'란 '진실을 보는 눈을 가진 사람'이라고 정의했다. 그는 가난한 예술가들의 눈을 통해 우리나라 문화예술의 미래에 대해 책임감 느끼게 됐다고 말했다.



"예술의전당만 보더라도 이미 스타덤에 오른 예술가 중심으로 공연하고 있어요. 소외된 젊은 예술가가 수도 없이 많은데 말이죠. 훌륭한 예술가들의 수명이 오래못가는 게 아쉬웠습니다. 이들을 보면서 예술경영, 예술매개활동이 제 책임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는 이같은 사명감으로 서울문화재단을 통해 젊은 예술가를 지원하는 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제작비가 없어서 작품을 못 만들었던 작가들이 상을 받고 인정받았을 때 제일 뿌듯합니다. 민간에서는 아무래도 영리목적을 배제할 수 없지만 공공기관은 순수한 목적으로 차별화된 예술가 관리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다는 확신도 생기고요."

그는 은퇴 후에도 예술행정가로서의 경험을 발휘해 예술가 매니지먼트로 활동하는 것이 꿈이다. "앞으로 국내의 재능 있는 예술가를 널리 알려서 서울의 문화적 튼튼함을 보여주고 싶습니다. 피카소가 유명해질 수 있었던 것은 그를 제대로 평가해주는 미술 평론가와 사회적 뒷받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시민들에게 예술적 가치를 전달하고 공유할 수 있도록 도와서 서울이 아시아 중심, 문화적 리딩시티로 우뚝 서게 만드는 것이 제 소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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