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협조바랍니다"-盧 "잘 알겠습니다"

김만배,류철호 기자 2009.04.30 16: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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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해 봉화마을서 대검청사까지 5시간 20분 대이동

경남 김해 봉하마을을 떠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입은 굳게 닫혀 있었다. 평소 그의 달변에 비춰볼 때 검찰 출석 전 많은 얘기를 할 것으로 예상됐지만 자택을 나설 때도 서울 서초동 대검청사에 들어설 때도 입을 열지 않았다. 굳게 다물어 있었다.

취재진으로 북새통을 이룬 대검 청사 앞뜰엔 '풍운을 상징'하는 만개한 영산홍이 노 전 대통령의 처지를 이해라도 한다는 듯 붉은 꽃잎을 봄바람에 날리며 그를 맞았다.



그는 30일 오전 8시 봉하마을 사저를 나서며 "국민 여러분께 면목이 없습니다. 실망시켜 드려서 죄송하다"고 소회를 밝힌 게 고작이었다.

노 전 대통령은 이날 자택을 나와 미리 대기하고 있던 버스 중간 좌석에 문재인 전 청와대 비서실장, 전해철 천 민정수석 등 수행원 4명과 청와대 경호원 등과 동승했다.



주변 접근이 철저히 통제된 가운데 봉화를 출발한 노 전 대통령 일행을 태운 버스는 남해고속도로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버스는 오전 8시17분께 남해고속도로 진례 나들목을 통과, 남해 고속도로로 진입한 뒤 칠원 분기점을 지나 중부내륙 고속도로로 갈아탔다.

이어 당진-상주 고속도로에서 청원분기점을 거쳐 경부고속도로로 경로를 바꾼 뒤 입장 휴게소에서 정차, 잠시 휴식을 취했다.


이후 경부고속도를 계속 달려 오후 1시 서울요금소를 거쳐 우면산 터널을 통과, 출발 후 5시간 20분 만에 대검 청사로 들어왔다.

오후 1시20분께 짙은 감색 톤의 양복에 연한 회색 넥타이를 매고 대검 청사에 도착한 노 전 대통령은 포토라인을 순식간에 거쳐 엘리베이터로 이동했다.



'왜 국민들에게 면목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면목 없는 일이지요"라고 짧게 답했다. 이어지는 질문엔 "다음에 하시죠"라고 말했다. 순간 긴장했던 그의 얼굴엔 애써 미소를 보이려는 흔적이 역력했다.

그는 대검청사 현관 왼쪽에 설치된 귀빈용 승강기에 올랐다. 이어 7층 중앙수사부장실에 들러 이인규 중수부장과 간단히 차를 마시면서 조사목적 등에 대해 설명을 들었다.

8분가량 진행된 티타임에서 이 중수부장은 "이 수사는 국민이 지켜보고 있고 시간이 많지 않으니 진실이 밝혀질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기 바랍니다"라고 말했고 노 전 대통령은 "잘 알겠습니다"라고 답한 것으로 전해졌다.



노 전 대통령은 티타임이 끝난 직후 문재인·전해철 변호사 입회 하에 11층 특별조사실에서 신문을 받았다. 조사를 맡은 우병우 중수1과장은 미리 준비한 300여개의 질문사항을 중심으로 노 전 대통령에 대해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으로부터 전달 받은 '600만 달러' 등을 포함한 각종 의혹을 집중 추궁했다.

우 과장은 이와 함께 정상문 전 청와대 총무비서관이 대통령 특수활동비 12억5000만 원을 횡령하는 과정에서 노 전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는지 여부도 조사했다.

검찰 수뇌부는 노 전 대통령에 대한 조사를 폐쇄회로 TV로 지켜보면서 수시로 신문과 답변을 주임검사로부터 전달받고 지시를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는 검찰의 신문조사가 진행되자 연신 초조감을 감추려고 애쓴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헌정사상 세 번째인 전직 대통령의 검찰 출두에 쏠린 국민적 관심을 반영하듯 300여 명의 기자들이 몰려와 노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 모습을 취재했다.

검찰은 노 전 대통령의 소환에 대비해 경호를 담당한 청와대 경호팀과 청사 외곽 경비를 맞고 있는 서울 서초경찰서와 사전에 치밀한 준비를 마쳤다.



또 법조 출입기자단과도 사전에 상의를 거쳐 각사 3명으로 취재진을 제한하는 등 만일의 불상사에 대비했다. 검찰 직원들도 일일이 신분을 확인한 뒤 청사출입을 허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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