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인에게 IMF는 여전히 '호랑이'

머니투데이 강기택 기자 2009.04.23 14: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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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 트라우마로 국민들 과민반응, 정부는 정책 딜레마

국제통화기금(IMF)이 지난 22일 또 한번 세계경제와 한국경제 전망치를 수정하면서 IMF에 대한 불신론이 확산되고 있다. 전망치를 바꾸는 빈도가 잦은 점이 IMF의 신뢰를 떨어뜨리는 요인으로 지적되지만 보다 근원적으로는 전망치의 정확성에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나아가 정부나 국민정서가 IMF에 과도한 권위를 부여하면서 정책결정에도 IMF가 변수가 되고 있다. IMF 구제금융을 받으면서 그로 인한 트라우마(외상 후 스트레스)가 컸던 탓에 IMF의 영향력이 한국에서 실제 이상으로 강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IMF는 지난해 4월 한국의 올해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4%로 제시한 뒤 7월 4.3%, 10월 3.5%, 11월 2.0%, 올 2월 -4.0%로 낮췄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만 4번을 수정한 것. 22일에는 올 2월에 처음으로 내놓았던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를 4.2%에서 1.5%로 대폭 내렸다.

IMF는 당초 이번에 올해 성장률 전망치도 -5% 중반대로 낮추려고 했었다. 기획재정부 윤종원 경제정책국장은 “IMF가 올 성장률 전망치도 낮추려고 했으나 2월 광공업 생산과 심리지표 등이 개선되자 그대로 유지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같은 시기에 글로벌 투자은행들은 오히려 한국의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상향했다.

22일 미국계 씨티그룹은 올해 한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기존의 -4.8%에서 -2.0%로 높이며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를 4.0%로 내놓았다.

일본계인 노무라는 지난 7일 올해 경제성장률을 -6%에서 -4%로 상향 조정하고 내년 경제 성장률을 3.5%로 제시했다. 이중 내년 경제성장률 3.5%는 한국은행과 같은 수치다.


비영리 국제기구인 IMF와 영리 목적의 투자은행들 전망치를 단순 비교하기는 어렵지만 2000년 이후 IMF의 전망이 한국은행보다도 정확도가 떨어지는 경향이 있는데다 인력이나 정보 면에서도 IMF의 전망치에 높은 신뢰를 부여하기는 어려울 전망이다.

한국경제를 전망하는 IMF 아시아태평양국의 경우 6명의 이코노미스트가 아시아 경제를 전망하며 그나마 일본과 중국은 따로 담당자가 있지만 한국은 전담자도 없다. IMF 세계경제전망 총괄국도 개별국가에 대한 분석은 아태국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알려졌다.



IMF가 2개월 보름여 만에 내년도 성장률 전망치를 크게 낮추자 난감해 진 것은 정부다. 정부가 내년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4% 수준으로 내다 본 근거 중 하나가 IMF의 세계경제 성장률 전망이기 때문이다.

IMF는 한달만에라도 전망을 수시로 바꿀 수 있지만 정부가 정책기조를 그렇게 쉽게 바꿀 수는 노릇이다. 정부는 오는 6월께 하반기 경제정책 운용계획을 짜면서 실제 경기동향을 지켜 보면서 필요한 부분이 있으면 반영해 나가겠다는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

정부가 IMF의 전망치에 기대 내년도 경제회복이 세계에서 가장 빠른 것이라고 예상하고 국민들에게도 전달했던 만큼 IMF의 전망치 하향에 대해 국민들이 느끼는 충격이 큰 것도 정부엔 부담이다.



IMF에 대한 국민정서로 인해 정부가 정책적 딜레마를 겪기도 했다. 지난해 IMF가 새로 도입한 ‘신축적 신용제도(FCL)’가 대출조건 등 비용을 고려할 때 미국과의 통화스왑보다 훨씬 나았지만 한국은 IMF의 FCL은 신청할 생각조차 못했다.

이는 멕시코가 미국과의 통화스왑보다 FCL을 선호했던 것과 대조된다. 재정부 고위 관계자는 “멕시코는 미국과의 통화스왑 당시 석유를 담보로 제공하면서 국가적 자존심이 상했던 기억이 있어 IMF를 선택했고 우리는 반대로 미국과의 통화스왑을 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부의 다른 관계자는 “글로벌 금융 위기 이전에 한동안 관심을 끌지 못했던 IMF의 전망치가 요즘 다시 주목되고 있다”며 “1997년 외환위기 때 IMF 구제금융을 ‘국치’라고 표현했을 만큼 치욕으로 받아 들였던 국민정서를 무시하고 정책을 펴기는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 민간 경제연구소의 임원은 “외환위기를 겪은 이후 IMF가 갖는 상징성이 높아졌지만 이번 글로벌 금융위기 전까지 IMF 무용론이 나올 정도로 위상이 추락하기도 했다”며 “정부나 국민들이 IMF에 대해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는 측면이 있다”고 평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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