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진짜 자본주의의 유령은 따로 있었다. 바로 금융위기라는 녀석이다. 호황 때 유동성을 잔뜩 머금고 자라나 어느 순간에 피도 눈물도 없는 저승사자로 나타난다. 아무리 죽이려 해도 죽지 않고 오히려 윤회를 거듭하는 양 스스로 확대 재생산한다.
되풀이될 때마다 같은 것 같은데 나중에 보면 다르다. 옛날에 발생한 위기만 생각하며 안이하게 대처하다 더 큰 화를 부른 적도 적지 않다. 97년말 우리나라의 환란도 처음엔 생각도 못한 것이었다.
자본주의가 금융화되면서 위기란 괴물도 덩달아 파워가 커졌다. 시장은 인간의 이기심을 성장동력으로 삼는 인센티브 구조다. 이기심이라는 것이 제어되기 쉽지 않은 본능인 바 탐욕에 의해 스스로 일그러질 운명을 태생적으로 갖고 있다.
글로벌 금융시장은 앞으로는 세계에 돈을 주는 자선무대로 홍보됐지만 뒤로는 돈을 쥔 자가 탐욕을 무한대로 채울 수 있는 공간이기도 했다. 저금리기에 풀려나간 유동성은 세계에 한순간 짜릿한 절정감을 준 뒤 지옥으로 밀었다. 요즘 채무 자체의 과다에 따른 위기보다 거품의 발생과 붕괴에 따른 위기가 주종인 것도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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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행히도 지난해부터 세계를 공포에 몰아넣은 모기지발 금융위기는 바닥에 닿은 듯하다. 천신만고의 노력 끝에 터진 수도꼭지는 간신히 막았다고 본다. 미국 주택시장, 전세계 주식시장, 원유값 등에서 언뜻언뜻 보이는 긍정적 신호가 예사롭지 않다. 바닥에 닿았으니 빠져나오는 것은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러나 바닥 탈출이 곧 끝은 아니다. 진행 중인 마이너스 성장이야 재정지출 등 대증요법을 쓰면 빨리 벗어날 것으로 보이지만 예전과 같은 고성장은 어쩌면 더이상 없을지도 모르겠다.
그동안 세계는 비정상적으로 낮은 금리, 유가 환경 하에서 비정상적인 성장을 해왔다. 저축하지 않고 빚으로 소비하고 재산형성을 해왔다. 지금 세계는 그 벌로 그 반대의 일(디레버리지)을 상당기간 해야 한다.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우리나라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정책적으로는 개방경제임을 고려해 항상 외화유동성이라는 성곽의 방비를 튼튼히 하고 정책의 틈이 보이지 않게 신뢰를 잘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