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묘한 타이밍…외환당국의 '패'는?

머니투데이 이승제 기자, 박상주 기자 2009.02.23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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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글로벌 달러 약세 전환을 십분 활용

-개입 시기와 방법 놓고 고심 끝에 올해 첫 본격 개입
-'말없이 신속하게'…"시장흐름에 순응하라"
-다단계 시나리오 전략 펼칠 듯

아찔할 정도로 상승을 거듭하던 원/달러 환율이 23일 17원이나 급락하며 1489원으로 내려앉았다. 10거래일 만의 하락이다. 환율 급락(원화가치 상승), 주가 상승, 채권금리 하락(채권값 상승) 등 트리플 강세 현상이 두드러지며 '3월 위기설'이 잦아질 것이란 기대를 낳았다.



이날 원/달러 환율의 하락은 글로벌 달러의 약세 전환과 외환당국의 '절묘한 개입'에 따른 것으로 풀이된다.

미국 정부가 씨티그룹의 우선주를 보통주로 전환해 국유화할 것이란 소식이 전해지며 글로벌 달러가 약세를 보였다. 엔화와 유로화가 달러 대비 강세였다.



외환당국은 이를 예상이라도 한듯 이날 장초반과 오전장 두차례에 걸쳐 시장 개입에 나선 것으로 관측된다. 올들어 첫번째 본격 개입이다.
절묘한 타이밍…외환당국의 '패'는?


◇절묘한 타이밍= 환율이 수직상승하며 1500원대를 손쉽게 넘어서자 외환당국은 개입 시기와 방법 등을 놓고 고심하기 시작했다. 글로벌 위기라는 외부충격으로 환율이 상승하는 가운데 효과는 없이 실탄만 낭비할 것이란 비판도 무시할 수 없었다.

윤증현 기획재정부 장관과 외환당국자들은 최대한 말을 아끼면서도 개입에 대한 의지를 내비쳤고, 이날 '행동'에 나선 것으로 분석된다. "외환보유액 2000억달러라는 수치에 매달리지 않겠다"(한국은행), "쏠림이 심하거나 투기세력이 개입하고 있다면 그냥 두고 볼 수만은 없다"(윤증현 장관) 등은 사전포석이었다.

외환시장에서는 이날 정부 개입을 긍정평가했다. 개입 시기도 적절했고, 효과도 컸기 때문. 외환은행 관계자는 "외환당국의 개입으로 추정되는 매물이 나왔지만 그보다 글로벌 달러 약세전환이 단기호재로 작용한 측면이 크다"면서도 "외환당국은 이날 적은 물량으로도 큰 하락효과를 봤을 것"이라고 말했다.


외환당국의 이날 개입은 "시장에 맞서지 말고, 흐름에 순응하라"는 격언에 딱 들어맞았다는 게 시장 평가다. 원/달러 환율이 1500원대까지 숨쉴틈 없이 수직상승함에 따라 당국의 고충은 더욱 커졌다. 강력한 상승 에너지를 줄이기 위해서는 그에 맞설 만큼 충분한 개입이 필요한데, 최악의 경우 개입 후 효과가 크지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이날 글로벌 달러 약세라는 최적의 '타이밍'이 마련됐고, 외환당국은 신속하게 이를 활용한 것으로 보인다.

삼성선물 정미영 리서치팀장은 "지난해의 경우 구두개입과 물량개입이 빈번해 시장에 충분한 경계감을 일으키지 못했다"며 "이번 개입은 환율 상승세를 충분히 허용한 뒤 이뤄진 것으로 달러매입 세력들을 크게 긴장시켰다"고 말했다.



◇향후 개입 어떻게= 시장에서는 외환당국의 개입이 어떻게 펼쳐질 지 촉각을 곧두세우고 있다.

외환당국은 현 상황에서 말이 아닌 '행동'이 필요하다고 판단, 최근 환율과 관련한 내용에 대해 일체 '함구령'을 내렸다. 이날 개입은 '말없이 신속하게'라는 원칙을 보였다.

외환당국은 1기 경제팀의 오류를 타산지석으로 삼고 있다. 외환당국 한 관계자는 "개입 시기와 규모, 방법 등을 놓고 여러 방안을 신중하게 검토하고 있는 상태로, 곧 그 실체가 나타나게 될 것"이라며 "시나리오별 대응방안을 다각적으로 모색하고 있고, 1단계가 아닌 다단계식 접근이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이어 "지금 상황에서 외환당국의 입이 아닌 행동을 눈여겨봐야 한다"며 "지난해처럼 '순진하게' 개입하진 않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개입을 통해 외환투기 세력에 대한 견제 등 여러 효과를 예상하고 있다는 속내를 내비쳤다.

1기 경제팀이 말바꾸기 환율정책으로 역외세력 등 투기세력에 공격의 빌미를 제공했다는 반성이다. 지난해 외환당국은 사용할 카드를 미리 공개적으로 밝힘으로써 투기세력이 국내 외환시장을 쥐락펴락하는 기회를 제공했다. 이 과정에서 대규모 실탄(외환보유액)을 낭비했음은 물론이다.

외환 전문가들은 당국이 여러 수단을 적절하게 동원하는 '다차원 개입'에 나설 것으로 보고 있다. △외국환평형기금 채권 발행 △통화스와프 확대 및 연장 △보유중인 미국 국채를 담보로 한 달러 조달 등은 단기 방안으로 꼽힌다. △해외 투자자나 교포의 국내투자 확대 유도 △정부투자기관의 대외자산 매각을 통한 달러 유입 등 중장기 방안도 거론된다.



한편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주말 대비 33.60포인트 상승한 1099.55로 장을 마쳤다. 3년만기 국고채 금리는 전주말 대비 0.09%포인트 하락한 3.83%를 기록했고 3년만기 회사채, 양도성예금증서(CD), 기업어음(CP) 등 금리도 일제히 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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