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사민정, 사회적 대타협…'고통분담' 합창

신수영 기자 2009.02.23 1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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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외환위기 이후 두번째-민주노총 불참은 한계

노·사·민·정 4대 주체가 경제위기 극복을 위해 사상 최초로 임금 삭감을 전제로 한 사회적 대타협을 23일 타결했다.

타협안에 따라 기업은 고용을 최대한 유지하는 대신 노조는 임금 동결 또는 삭감 등의 고통분담에 동참키로 했다. 정부는 사회안전망 확충용 재정투입을 확대하고, 시민단체는 일자리 나누기(잡 셰어링) 기업의 제품을 우선 구입하는 방식으로 지원한다.

노사민정 비상대책회의는 이날 서울 여의도 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 대회의실에서 제2차 대표자회의를 열어 전문과 본문 64개항으로 구성된 합의문을 의결하고 공식 선포했다.



한국 역사상 경제위기로 사회적 대타협이 성사된 것은 외환위기 직후인 지난 98년2월 이후 두번째다. 글로벌 경제위기가 심화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세계에서 첫번째 사회적 합의다.

특히 98년 대타협 때는 '정리해고'에 중점이 주어졌다면 이번 대타협은 처음으로 임금 삭감에 노조가 합의했다는데 의미를 둘 수 있다. 합의 주체도 노사정에서 더 나아가 시민단체, 종교계 등 민간 부문으로까지 확대됐다.



김대모 비상대책회의 공동의장은 "우리사회 각계각층이 두루 참여해 포괄적이고 실질적 합의를 이뤄냈다는 데 의의가 있다"며 "이번 합의문은 국민 전체의 합의로 봐도 괜찮을 것"이라고 자평했다.

이번 합의문에서 사측은 인위적 감원을 자제하고 현 수준의 고용을 유지하는데 노력키로 했다. 노측은 파업 자제, 임금 동결 및 반납, 삭감 등으로 경영부담을 덜어주겠다고 화답했다.

정부는 이를 실천한 노동자와 기업에 세제 지원을 약속하고 실업급여 및 퇴직금 산정시 절감 전 임금을 기준으로 삼도록 하는 등 각종 지원책을 내놨다.


최종 합의까지는 진통의 연속이었다. 임금 삭감과 정부 예산확충 규모를 놓고 이해 주체 간 입장이 엇갈렸기 때문이다. 한국노총은 이날 아침까지도 산별 대표자 회의를 하며 합의문 초안을 놓고 격론을 벌였다.

가장 문제가 됐던 '임금 삭감'은 노사가 삭감 대신 '임금 절감'이란 용어를 절충안으로 타협을 이뤘다. 그동안 한국노총은 무급휴직 등으로 근로자 실질임금이 줄어든 상황에서 임금 삭감이 퇴직금과 향후 연봉협상 등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며 '삭감'을 포함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이에 대해 재계에서 임금이 삭감되더라도 자진 반납 형식으로 처리, 퇴직금을 임금 삭감 전의 수준으로 산정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안을 제시해 마지막 '산'을 넘을 수 있었다.

이세중 공동의장은 "어느 일방의 강요가 아닌, 함께 일자리를 나누고 양보하자는 뜻이 담겨있다"며 "용어 차이가 있는 것이지 고통을 나눈다는 의지는 같다"고 설명했다.
또다른 주요 쟁점사항으로 한국노총이 일자리 유지와 사회안전망 확충을 위해 요구한 32조원 규모의 재정 투입은 합의문에 포함되지 않았다.

이영희 노동부 장관은 "추가경정예산이 편성단계에 있어 규모를 미리 제시하기 어렵다는 점이 받아들여졌다"며 "관련예산이 반영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대타협에 실질적으로 노동계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민주노총이 빠진 것은 '한계'로 지적된다. 현대자동차 등 자동차 노조가 망라된 금속노조와 전교조, 보건의료산업 노조 등 강성 노조가 모두 민주노총 산하다. 정리해고를 골자로 하는 98년 대타협때는 민주노총이 동참했었다.

이에 따라 민주노총 산하 노조의 실질적인 고통분담 없이는 반쪽짜리 합의에 그칠 것이란 우려도 높다.

민주노총은 "노사 고통분담이 공정히 이뤄지려면 노동시간 단축이 중심이 되고 단축된 임금삭감분에 대한 공정한 노사정 분담이 필요하다"며 "이번 합의는 노동자에 고통을 전담할 뿐 아니라 대표성도 없는 빛 좋은 개살구"라고 혹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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