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 추기경 선종, 한국 천주교 제2부흥 오나?

머니투데이 정진우 기자 2009.02.19 1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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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추기경 선종, 한국 천주교 제2부흥 오나?


김수환 추기경 선종으로 천주교가 새롭게 부각되고 있다.

종교가 없는 사람들은 물론 다른 종교인들도 김수환 추기경의 생전 모습을 그리워하면서 천주교에 많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이로 인해 한국 천주교가 제2의 부흥을 맞을 것이란 분석도 나온다. 실제 전국의 각 성당에는 김수환 추기경을 애도하는 조문이 이어지고 있고 온·오프라인에서 가톨릭에 대한 문의도 늘고 있다.



김수환 추기경의 빈소가 차려진 명동성당에는 19일 새벽 1시까지 24만명의 추모객이 다녀갔다. 천주교 신자가 아닌데도 추운 날씨 속에서 3~4시간 줄을 섰다가 명동성당에 들어가고 있다.

가톨릭 장례의식을 보며 종교적 경건함을 느꼈다는 이들도 많다. 장례예식에서 들리는 전통적 창(唱) 음률의 노래 소리(연도)에 친근감과 편안함을 야기한다. 이 소리는 가톨릭에서 세상을 떠난 이를 위해 바치는 위령기도를 창 음률로 부르는 것으로 한국 가톨릭에만 유일하게 있다. 그만큼 토착화에 힘써왔다는 증거다.



김수환 추기경은 그동안 한국 천주교 부흥을 이끌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가 추기경이 된 이후 천주교는 일부 국민만 믿는 소수 종교에서 10%가 넘는 국민이 믿는 4대 종교로 급성장했다.

김수환 추기경의 교세 확장은 한국 천주교의 성장을 보여주는 것과 같았다. 지난 1968년 말 48개 본당, 14만여명이었던 신자는 30년 후인 1997년 말 197개 본당, 121만여명으로 급격히 늘었다. 그가 서울대교구장으로 있는 동안 교세는 8배 이상 커진셈이다.

김수환 추기경은 경북 안동 본당에서 사목 생활을 시작했다. 그는 지난 1956년 독일 뮌스터대학으로 유학을 떠나 1964년 귀국했다. 1968년 4월 서울대교구장에 임명됨과 동시에 대주교로 승품됐다.


다음해 교황 바오로 6세는 그를 추기경으로 서임했고 1970년에 아시아 천주교 주교회의 구성준비위원장으로 선출됐다. 여섯 차례나 세계주교대의원 회의에 참석해 한국 천주교의 위상을 드높였다.

김수환 추기경은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들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며 천주교의 양적인 팽창뿐 아니라 '사회 속 신앙'이라는 질적인 성장도 이끌었다. 한국의 역사 현실에 동참하는 교회 상을 제시해 교회 안팎의 젊은 지식인과 서민, 노동자들로부터 많은 지지를 받았다.

김수환 추기경은 한국을 대표하는 종교지도자다. 종교 지도자를 넘어서 한국 사회의 정신적인 지주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지난해 한 시사잡지의 설문조사 결과에서도 한국을 대표하는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인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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