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업급여 신청센터에서 만난 사람들

머니투데이 신수영 기자 2009.02.12 08: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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붐비는 고용지원센터 "그래도 나 같은 사람 많아서 위안"

중국 당나라 때 백장산에 오래 머물러 백장선사라 불렸던 회해 스님은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一日不作, 一日不食)"고 말했다. 모 운동가요의 한 구절인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는 철칙을 일찌감치 설파하신 셈이다.

평소에 별 감흥이 없었던 "일하지 않는 자여 먹지도 말라"란 말이 이곳에선 가슴 짠하다. 이 곳은 서울시 중구 장교동 서울종합고용지원센터. 구직자의 고용을 지원하는 온갖 일을 다하는 곳이다. 하지만 실직자는 넘치고 일자리는 없으니 이 곳은 일하지 않아도 먹어야만 하는 슬픈 실직자들의 생계지원센터쯤으로 보인다.



실업급여 신청을 받는 센터 2층은 문을 연지 한시간도 채 안 돼 사람들로 가득 찼다. 한 150여명 될까. 대한민국 온갖 종류의 사람들이 다 모인 '인간시장' 같다.

서울종합고용지원센터를 찾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다. 실직자들은 이곳에서 구직 등록을 하고 실업급여를 신청하게 된다. 수급자격 신청여부는 2주일 안에 통지되며, 이후 적극적 구직활동을 했음을 증명해야 수급자격이 유지된다. 서울종합고용지원센터를 찾은 사람들이 차례를 기다리며 서성이고 있다. 실직자들은 이곳에서 구직 등록을 하고 실업급여를 신청하게 된다. 수급자격 신청여부는 2주일 안에 통지되며, 이후 적극적 구직활동을 했음을 증명해야 수급자격이 유지된다.


전혀 실직자처럼 보이지 않는, 그럴듯한 금융회사에 다닐 것만 같은 넥타이 차림의 중년 남성부터 언뜻 보기에도 힘든 노동을 해온 것이 분명한, 손에 굳은살 박힌 아주머니까지, 20대를 갓 넘었을까 발랄해 보이기만 하는 젊은 여성부터 머리가 희끗한 할아버지까지.



윤정진 취업지원과 팀장은 "지난해 11월부터 실업급여를 받으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며 "그래도 지난해 말엔 하루에 400명 정도 상담했는데 올해 들어선 500명쯤으로 더 늘었다"고 말했다. 지난 1월 서울종합고용지원센터를 포함해 서울청 산하 16개 센터에서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은 모두 10만5363명이었다. 지난해 1월에 비해 28% 늘어났다.

윤 팀장은 "전반적으로 취업이 힘들어 한 번 실업급여를 받은 사람들은 계속 찾는다"며 "나이 드신 분이나 젊은 사람이나 다들 나이 때문에 구직을 못 한다고 하소연한다"고 전했다. 젊은 사람은 경력이 부족해 숙련되지 않았다고, 나이 드신 분은 기력이 달린다고 이래저래 직장에서 내몰리고 있다고 한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일하지 못해 정부에서 실업급여를 받아야 하는 경제 상황이 암담하지만 이 곳을 찾은 사람들은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위안이다.


L씨(남, 33)는 "처음엔 실업급여 신청하기가 좀 부끄러웠는데 사람이 많으니 나 같은 사람들이 많은가 보다, 그런 생각이 든다"며 "나만 그런게 아니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좀 놓인다"고 말했다. L씨는 벌써 3달째 실업급여를 받고 있다.

수급자격이 인정되면 적극적으로 1~4주에 한번씩 센터를 들려 실업인정 신청을 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증명하는 것. 상담은 예약제로 실시되지만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이 늘며 기다리는 시간도 길어졌다.    수급자격이 인정되면 적극적으로 1~4주에 한번씩 센터를 들려 실업인정 신청을 해야 한다. 적극적으로 구직활동을 증명하는 것. 상담은 예약제로 실시되지만 실업급여를 받는 사람이 늘며 기다리는 시간도 길어졌다.
10년 이상 건축현장에서 일해 온 K씨(여, 45세)는 이번이 두 번째 센터 방문이다. K씨는 "불경기에 일감이 떨어지면서 지난해 말에 직장을 잃었는데 금방 일자리를 구할 수 있을 걸로 알고 한달여간 실업급여를 신청하지 않았다"며 "한달간 새 일을 못 구해 반찬 살 돈도 떨어져 일주일 전에야 이 곳을 찾았다"고 말했다.



K씨처럼 새로 실업급여를 신청한 사람이 지난 1월에만 전국에서 12만8000명에 달한다. 지난 1996년 실업급여가 지급된 이래 역대 최고다.

예전에는 실업급여 수급 자격이 있더라도 절반 정도만 실업급여를 신청했지만 이제는 80% 이상이 실업급여를 신청한다. 재취업이 어려워 실직 전 받았던 평균 임금의 절반에 불과한 실업급여라도 아쉬운 사람이 늘고 있다는 뜻이다.

점심시간이 가까워 오자 여성들이 부쩍 늘었다. 아이를 업은 주부도 상당수였다. 오전에 집안일을 끝내고 방문하는 주부들이었다. 딸아이를 안고 온 한 여성은 "왜 실업급여를 받을 수 없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센터 직원은 "아주머니는 회사 서류를 보면 아이를 돌보기 위해 스스로 회사를 그만 둔 것으로 돼 있다"며 "실업급여는 구조조정 등으로 비자발적으로 회사를 그만 둔 사람만 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그 여성은 "3년간 직장 다니며 고용보험료를 꼬박꼬박 냈다"는 말만 되풀이했다. 언뜻 가슴에 안긴 딸아이가 쳐다보는 엄마의 눈에 눈물이 비쳤다.

윤 팀장은 "내가 편하려고 그러는 게 아니라 정말 실업급여 받는 사람이 줄어 내 일이 좀 줄었으면 좋겠다"고 한숨을 쉬었다. '하루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는 것조차 지금은 사치다.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행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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