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가 적금을 깼다… 눈물만 난다"

머니투데이 박상주 기자 2009.02.11 08:52
글자크기

고환율에 신음하는 유학생 "환율아 제발 떨어져라"

"어제 엄마에게 전화를 드렸다. 환율이 많이 올라 걱정을 많이 하시더라. 아빠 사업도 안되고 엄마가 운영하시는 가게는 그나마 생계유지 정도다. 못난 자식 유학시키시겠다고. 다음 학기 학비 보내주신다고 그 동안 부으셨던 적금을 깨서 그 돈을 마련하신단다. 걱정하지 말라고 하시더라. 눈물만 났다."

"환율은 오르는데 학비 납기일이 다가온다. 이어지는 한숨과 늘어만 가는 부모님 걱정. 그리고 불투명한 나의 미래. 그래도 내일 나의 발걸음은 또 도서관으로 향하겠구나. 휴. 울 힘도 없다."



해외 유학 중인 한국 학생들이 자주 찾는다는 한 사이트. 익명으로 쓴 유학생들의 일기다. 유학생들은 요즘 환율뉴스에 따라 울상이다. 원/달러 환율이 1000원 아래일 때 해외로 떠난 이들은 1300원대로 오른 환율을 '살인적'으로 받아들인다.

이 사이트에 올린 글을 보면 고환율로 중도 포기한 유학생, 사정이 나빠지자 명절에도 귀국하지 못하는 유학생이 부지기수다. 체재비 부담이 커져 공부할 시간을 쪼개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려는 유학생들도 늘고 있다.



미국으로 간 유학생은 지난해 말 11만 명을 넘었다. 미국 내 외국인 유학생들의 출신국별 비율로 보면 한국은 3년 연속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대부분 부모들이 보내주는 원화자산으로 등록금과 체재비를 충당한다.

유학생들이 가을학기를 등록하기 직전인 지난해 8월, 원/달러 환율 평균은 1047원 수준이었다. 그러나 이달 환율 평균은 1384원 수준이다. 5개월 만에 300원 이상 올랐다.

1년 등록금을 5만 달러로 보면, 지난해 5235만원에서 6920만원으로 급등했다. 연간 연간 1685만원이 늘어났는데, 한국 사립대 중에서도 가장 비싼 등록금을 환율 상승 때문에 더 내는 셈이다.


◇유학 준비 부담도 커져= 오는 9월 미국 대학의 박사과정을 밟는 박경남씨(28ㆍ여)는 지난해 유학을 준비하면서부터 고환율의 위력을 실감했다.

GRE(대학원 입학시험)나 토플 수험료가 15만원 안팎에서 20만원으로 훌쩍 뛰어버린 것이다. 박씨는 "2007년까지 좋은 점수를 받기 위해 시험을 여러 번 쳤는데, 이제는 두세 차례 보는 것도 부담"이라고 말했다.



복수 지원을 하기 위해 미국에 보내는 원서 수도 줄었다. 보통 유학생들은 20여개 대학을 골라 원서를 접수시키는데 대학 당 40∼70달러 가량이다. 평균(20개×55달러)으로 따지면 지난해 초 115만원이던 접수비가 152만원으로 많아진다. 박씨는 "돈이 많이 들어 지원하는 대학 수를 10개로 줄였다"고 말했다.

미국 대학은 합격을 전후해 1년 치 대학등록비에 달하는 재정증명서를 요구한다. 약 5만 달러에 달하는 원화가 입금된 통장을 보여줘야 한다. 지난해 초였으면 5300만원 정도만 입금하면 됐지만, 박씨는 최근 친척과 지인들을 총 동원해 7000만원 가량을 끌어와야 했다.

◇"7∼8월에는 환율 떨어져라"= 외국 대학의 입학시즌은 9월, 유학을 시작하는 학생들은 7∼8월경까지 환율이 떨어지길 간절히 바라고 있다.



"환율 확인하는 거, 아침에 기름 값 내린 거 보고 좋아하고, 저녁에 환율 올라가는 거 보고 좌절한다. 제길, 기름 값 그대로여도 괜찮으니 환율만 내려줘. 이제 공부 좀 재미 붙이고 GPA(미국 고등학교 성적평가점 평균)도 4.0 유지 잘하는데 환율 보면 한숨만 나와. 공부할 의욕도 안 생긴다."

정미영 삼성선물 리서치팀장은 "국내외 시장의 원/달러 환율 컨센서스는 6월까지 상승세를 유지하다 하반기 들어 차츰 환율이 하락한다는 것"이라며 "이런 예상의 전제는 하반기 금융시장이 안정되고 경기가 회복된다는 가정"이라고 말했다.

삼성선물은 올해 원/달러 환율이 3월 1450원, 6월 1300원, 9월 1200원, 12월 1150원으로 차츰 하락할 것이라는 장기 전망을 내놨다. 이 말대로만 된다면 유학생들의 가을학기 등록금 부담은 크게 줄어들 수 있다.



정 팀장은 "유학생들에게 있어 환율만 부담되는 것은 아닐 것"이라며 "경기부진으로 원화를 송금하는 부모들의 원화자산이 크게 줄어든 것, 최근 환율이 국내 요인보다 글로벌 달러의 움직임에 큰 영향을 받고 있어 국제금융시장의 불안감도 문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ㆍ중국 친구들 부러워"=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절하 폭만큼은 안되지만 원/파운드 환율도 높기는 마찬가지다.

영국 맨체스터 대학에 유학 중인 손지인(20ㆍ여)씨는 "2006년 영국에 도착해 2007년 중반까지 원/파운드 환율은 1830원에서 1870원 사이였고 환율이 크게 변동하지 않았다"며 "총 학비를 할부로 내면서 첫 번째 3500파운드(1파운드당 2100원)를 낼 때는 수수료를 포함해 750만 원 정도가 들었는데, 두 번째 할부 때는 환율이 2250원으로 올라 800만 원 가까이 내야 했다"고 말했다.



체재비도 매달 꼬박꼬박 더 들어갔다. 손씨는 "아파트 비용 등으로 매달 600파운드 정도 지출하는데 원/파운드 환율 1800원대일 때와 2000원대일 때를 비교해보니 매월 10만 원 가량 더 쓰는 셈"이라고 말했다.

그는 "슬로바키아, 중국, 인도네시아 등 외국인 친구들은 파운드화 화폐 가치 절하로 학비절감 효과를 톡톡히 보고 있다"며 "유독 원화에만 파운드가 강세"라고 말했다.

다시 찾은 유학생 사이트. "주말마다 한국에서 오는 전화 받기가 겁나. 돈은 없지. 돈 없다고 말은 못하지. 쌀 떨어진 지 한 달이 넘어가지. 밥은 굶어도 괜찮아. 옷 안 사 입어도 괜찮아. 학비 지원이 끊어지지 않을 정도만 환율아 내려가라. (중략) 처음으로 일본 친구랑 중국 친구들이 부러웠다. 얘들 환율은 떨어지더라."



외환시장 전문가들은 오는 3월 말 환율이 1400원대를 쉽게 넘어설 것으로 보고 있다. 한국 외화자금시장 불안정과 3월 말 일본 연간 결산일에 따른 엔화 강세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환율에 대한 우울한 전망이 나올 때마다 유학생들의 얼굴엔 그늘이 진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