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모씨가 '폭력 사오정'이 된 사연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9.02.06 1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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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생존백서-아찔했던 순간]⑮

박 모씨가 '폭력 사오정'이 된 사연


'법'보다 '주먹'이 앞서는 곳이 현실세계다. 정장에 넥타이 차림을 하고 있더라도 가슴 한곳에는 '야성'이 꿈틀대는 것이 사람이다.

특히 긴장이 풀리고 갖가지 감정이 소용돌이치는 술자리에서는 이런 야성이 더욱 쉽게 모습을 드러내기 마련이다. 고도의 예의를 요구하는 직장생활도 예외는 아니다. 흔치는 않지만 혈기왕성하고, 사회생활에 익숙하지 않은 신입사원들도 술자리에서 분노를 억누르지 못하고 주먹을 날리거나 멱살잡이를 하는 경우들이 있다. 말을 둘러싼 오해, 나이와 기수의 괴리, 상사의 거친 주사 등이 '뇌관'이 되곤 한다.



#사례1
국내 굴지의 반도체업체 A사에 입사한 박모씨. 납품 관련 업무를 맡게 되면서 초년병임에도 불구하고 몇몇 협력업체를 직접 관리하게 됐다. 하루는 입사 동기인 남모씨가 협력업체에서 근무하는 친구로부터 부탁을 받고 저녁 자리를 마련했다. 그 친구에게 박씨를 소개시켜주기 위해서였다.

내키지 않았지만 동기의 청을 거절하지 못해 따라나선 자리에는 남씨의 친구와 그의 직속 상사가 함께 와 있었다. 박씨와 친해지고 싶었던 남씨의 친구는 취기가 돌기 시작하자 박씨에게 "친구의 친구면 친구 아니냐. 이제부터 말놓자"며 반말을 하기 시작했다.



시종일관 그의 말투가 거슬렸던 박씨는 "그래도 초면인데 어떻게··· 천천히 놓죠"라 했지만, 남씨의 친구는 뜻을 굽히지 않았다. 사소하게 시작된 실랑이가 점점 격해지더니 어느덧 언성이 높아지기 시작했다. 협력업체에서 나온 직속 상사까지 자신의 부하직원을 편들기 시작하자 박씨의 불쾌감은 극에 달했다.

"나 먼저 갈께" 더 이상 이 자리에 있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한 박씨가 자리에서 일어나는 순간 두 마디가 박씨의 귀에 꽂혔다. "개**, 왜 이래". 남씨 친구의 입에서 나온 말이었다.

난데없이 욕설까지 들은 박씨는 분노가 폭발했다. "뭐? 개**? 이 ***가 죽을려고!" 두명의 멱살잡이가 시작되고, 나머지 두명이 달려들어 싸움을 말리는 동안 식당은 아수라장이됐다.


사태가 진압(?)된 뒤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 남씨가 박씨에게 물었다. "남자들끼리 '이**'라고 한마디 한 것 갖고 왜 그렇게 열 받았냐?"

"'개**'라고 하지 않았어?", "아냐. 그냥 '이**'라고 했는데", "···". 그날 이후 박씨의 별명은 '폭력 사오정'이 됐다.



#사례2
한 워크아웃 기업에 취직한 정모씨. 3수 끝에 대학에 들어갔고, 대학에서도 학생회 활동 때문에 학점을 제대로 못 채우다가 군대를 다녀왔다. 제대 후에는 휴학까지 하며 고시 공부에 매달리느라 졸업과 취업이 남들보다 4년 정도 늦었다. 늦깎이로 입사한 때문에 동기는 물론 대부분의 2∼3년 선배들보다도 나이가 많았다.

무대는 신입사원 환영회. 후배들은 물론 선배들도 신입사원 환영를 빌미(?)로 모처럼 모여 거나하게 취했다.

분위기가 정점으로 치닫을 무렵 취기가 얼큰하게 오른 한 선배가 정씨의 테이블로 옮겨왔다. 이 선배는 정씨에게 대뜸 "니가 그 나이 많다는 정**냐?"고 물었다. 정씨가 맞다고 하자 "그 나이 먹도록 뭐하다가 지금에야 회사 굴어들어왔냐"며 몰아세우기 시작했다.



선배 행세하기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꾹 참은 정씨는 "네, 한 3년 정도 고시 공부 좀 했습니다"고 답했다. 그러자 "야! 고시해서 안 될 것 같으면 바로 때려치워야지. 뭘 그렇게 오래 붙잡고 있었냐. 난 너 같은 *들이 제일 한심하다"

선배의 황당한 '군기잡기'는 좀체 끝나지 않았다. 학번으로 봐서 자신보다 어린 사람이 선배랍시고 못 살게 구는 모습에 정씨의 불쾌감은 점점 극에 달하고 있었지만, 처음부터 밉보이면 안 되겠다 싶어 꾹꾹 눌러 참았다. 그러나 폭탄주의 취기가 올라오기 시작하면서 표정 관리가 안 됐고, 그 모습을 본 선배는 더욱 거칠게 정씨는 놀려댔다.

그런데 선배의 '호구조사' 분야가 고등학교로 확대되면서 전세가 역전됐다. "고등학교는 어디 나왔어?", "○○고등학교 나왔습니다", "···". 그 때 옆에 있던 다른 선배가 나섰다. "야 너도 거기 나왔잖아. 정**, 네가 얘보다 선배겠다"



순간 사색이 된 그 선배는 이내 "어···. 그렇지···. 그래도 뭐, 기수가 깡패라고 회사에선 내가 선배잖아. 그렇지?"라며 정씨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정씨의 눈이 뒤집힌 것은 그때였다. 고등학교 후배가 회사 선배랍시고 못 살게 굴고 심지어 머리까지 쓰다듬자 술에 취한 정씨는 결국 자제력을 잃고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고 말았다. "뭐 이런 ***가 다 있어!" 그 선배의 얼굴에 '분노의 주먹'을 날리고 만 것.

그 다음 상황은 정씨의 기억 속에 없다. 다음날 아침 얼굴과 팔에 상처가 나 있고, 옷이 찢겨져 있는 것을 발견하고 뼈저린 후회를 해봤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정씨의 '술집 난동사건'으로 전날 환영식은 엉망이 됐다. 정씨는 회사에서 '한 성질하는 녀석, 선배까지 패는 독한 녀석'으로 찍혀 '특수 구조조정팀'으로 발령이 났고, 지금까지 3년째 이른바 '손에 피 묻힌다'는 인력 구조조정 업무를 맡고 있다.

#사례3
정의감에 불타는 기사도의 화신 김모씨. 한 중견 제조업체에 공채로 취직했다. 입사 초기 술 좋아하는 부장 때문에 김씨의 부서는 최소한 1주일의 1번 이상은 거나한 술자리를 가졌다. 부장이 좋아하는 것은 술만이 아니었다. 2차는 언제나 노래방.



노랭방에서 김씨를 항상 언짢게 하는 것은 부장의 '억지 블루스'였다. 김씨의 여자 동기 한명이 의사와 상관없이 매번 부장의 블루스 상대가 됐다. 그 여자 동기는 겉으로 싫은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김씨에게 만큼은 "사실은 너무 싫다"며 속내를 드러냈다. 눈앞에서 일종의 '성희롱'이, 그것도 자신의 동기를 상대로 이뤄지는 것을 바라보며 김씨의 기사도는 불타기 시작했다.

'기사도의 화신'와 '부장의 부하직원'이라는 2가지 정체성을 놓고 고민하던 김씨에게 어느 날 결단의 순간이 찾아왔다.

평소 부장에게 손목이 잡혀 묵묵하게 끌려나갔던 김씨의 여자 동기는 한번은 더 이상 참기 힘들었는지 김씨에게 SOS를 쳤다. 노래방의 스테이지(?)로 나가면서 가련한 눈빛과 함께 김씨의 손등을 두번 긁은 것이다.



"구해달라"는 신호로 알아들은 김씨는 부장의 두 손목을 붙잡고 "대신 저랑 추시죠"라고 말했다. 순간 황당한 부장은 "뭐야? 네가 왜? 너 얘랑 사귀어?"라며 버럭 화를 냈다. "아닙니다. 그냥 동기가 오늘 너무 피곤해 보이는 것 같아서요"라고 했지만 부장의 화는 가라앉지 않았다. "일단 손목 놔. 빨리! 안 놔?". 그러나 김씨는 "아 부장님, 그런게 아니고"라며 간청한다는 의미로 부장의 손목을 계속 붙잡고 있었다.

순간 부장이 오른손이 김씨의 손을 거칠게 빠져나오더니 김씨의 왼쪽 뺨을 정확히 가격했다. 갑작스러운 충격에 노래방 의자에 풀썩 주저앉은 김씨는 이내 안경을 수습하고 정신을 차렸다. 가만 있을 수 없었다. 아무리 그래도 때리는 것 너무 했다고 생각한 김씨는 "자! 더 치세요. 더 쳐봐요"라며 부장에게 다가갔고, 다른 직원들이 달려들어 둘 사이를 떼어냈다.

그때 차장이 "야! 너 나가있어"라며 김씨는 다른 직원과 함께 노래방에서 내보낸 뒤에야 상황이 정리됐다.



이튿날 부장이 김씨를 불렀다. 잔뜩 주눅이 든 김씨에게 부장은 "오늘 점심 약속 있나? 나랑 해장이나 하지"라고 했다. 해장국을 먹으면서 알게 된 것은 부장에겐 가끔 주먹을 휘두르는 주사가 있는데, 누가 자신의 두 손목을 움켜잡는 것도 '뇌관'이 되곤 한다는 사실이었다. 누구라도 취중에 두 손목을 잡히면 무의식 중에 불안하다고 느껴 극단적인 행동을 할 수도 있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부장은 "앞으로는 술자리에서 나를 말릴 때 손목을 잡지 말고, 뒤에서 어깨를 잡아. 그러면 덜 불안하니까" 부장이 나름대로 쿨한 성격이었던 것이 다행이었다.

자존심에 죽고 사는 게 사람이다. 아무리 조직사회라고 해도 인격을 모독당하면 누구라도 참기 어렵다. 취기가 오른 술자리에서라면 더욱 그렇다. 하지만 신입사원이 술자리에서 주먹을 휘두르는 것은 '정치적 자살행위'에 가깝다. 아무리 화가 나도 참는 것 역시 방법이지만 처음부터 험한 상황을 예방하는 것이 가장 좋은 해법이다.



웃는 얼굴에 침 못 뱉는다고, 처음부터 몸을 낮추고 밝고 정중하게 모든 사람을 대하는 것이 거친 상황을 피할 수 있는 최고의 예방책이다.

임진성 두산그룹연수원(DLI) 연강원 차장은 "신입사원의 경우 우선은 모두가 자신보다 윗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스스로를 낮추며 배우는 자세로 상대방을 대한다면 물리적 폭력이 발생하는 상황까지는 가지 않을 수 있다"고 말했다.

임 차장은 "그러나 주먹다짐과 같은 불미스러운 일에 이미 휘말렸다면 먼저 나서서 사과하고, 그래도 해결되지 않으면 주위에 도움을 청하는 것도 방법"이라며 "자신의 어떤 점이 문제를 유발했는지 스스로 되짚어보는 것도 필요하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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