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통법 시행, 의욕은 넘치는데 '개점휴업'

도병욱 기자 2009.02.04 16:28
글자크기

은행 창구, 펀드가입 문의 거의 없어...증권사에 고객 뺏길라

-보유재산, 연소득 등을 확인해야...은행들 난감
-상담 시간도 1시간 넘게 걸려
-호통치며 발끈하는 고객들

'출발은 의욕적으로 했는데, 효과가 글쎄…."

자본시장통합법(이하 자통법) 시행 첫 날인 4일, 시중은행 영업점의 투자상담 창구는 썰렁할 뿐이었다. 전담 상담직원들은 취재차 들른 기자에게 "손님이 없어 민망하다"고 하소연했다.



영업점 직원들은 최근 창구구조를 바꾸고 직원 특별연수도 받는 등 준비를 마쳤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펀드 가입을 문의하는 고객이 거의 없어 다들 맥 빠진 모습이었다.

이날 A은행 본점 영업부 창구에는 고객 2명이 방문한 상태였다. 그중 한명이 펀드고객을 위한 투자상담 창구에서 1시간 가량 상담을 받은 뒤 자리를 떴다. 창구 직원에 물어보니 "방금 그 손님도 실은 자통법을 취재하러 온 기자"라고 난감해했다.



이 직원은 "오늘 펀드에 가입하기 위해 찾아온 고객은 한명도 없었다"며 "증시가 얼어붙은 지난해 하반기 이후 신규 펀드가입 고객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서울 도심에 위치한 B은행의 한 지점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점심시간이 가까워졌지만 투자상담 창구를 찾는 고객은 없었다. 반면 대출과 예금 등을 취급하는 일반창구에는 대기표를 손에 쥔 고객들이 줄을 섰다.

이 지점의 펀드판매 담당직원은 "지난 2일부터 창구를 나눠 운영해왔는데, 최근 3일 동안 펀드관련 상담고객은 한명 뿐"이라며 "그 고객마저도 결국 가입하지 않고 돌아갔다"고 털어놨다.


그는 "일반 창구 6개와 투자상담 창구 2개를 운영하고 있는데 펀드 문의 고객이 없어 민망할 지경"이라며 "상황이 이렇다보니 자통법 시행이 은행 지점에 큰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 것 같다"고 말했다.

현장 직원들은 바뀐 규정에 대해 강한 거부감을 내비쳤다. B은행 직원은 "이제부터 펀드가입 고객에게 보유 재산이나 연소득 등 사생활에 가까운 내용을 불어봐야 한다"며 "솔직히 죄송하고 조심스럽다"고 말했다.



그는 "인근 지점을 찾은 일부 고객은 그런 내용까지 답해야 하냐며 역정을 내는 경우도 있었다"며 "펀드가입 시 절차도 복잡해져 상담시간이 1시간 이상 걸리는 등 고객 불편이 커지고 있다"고 우려했다.

C은행의 한 지점도 마찬가지였다. 이 지점의 한 직원은 "인근 지점에 문의한 결과 방문 고객 대부분의 투자 성향이 안정형으로 나왔다"며 "은행은 보수성향인 안정형으로 분류된 고객에게 원칙적으로 주식형펀드 등 공격 성향의 상품을 추천하지 못하게 돼 있다"고 말했다.

그는 "앞으로 고위험, 고수익을 노리는 공격적인 투자자들은 대부분 증권사를 찾게 될 것 같다"며 "인기상품을 팔지 못해 은행 고객이 줄어들 것이란 우려가 나오고 있다"고 전했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