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달 4일로 자본시장통합법 시행이 코앞에 다가온 가운데 금융투자회사(기존의 증권사)들은 새로운 법안에 대한 준비만큼이나 영업기반 고사를 걱정해야 할 위기에 빠진 상태다.
준칙에 따라 특히 65세 이상이면서 파생상품 1년 미만 투자자에게는 파생상품 권유를 하지 못하게 원천봉쇄하고 투자자 성향 파악은 물론 상품 세부사항까지 설명해야 하는 의무가 부여된다. 이에 따라 펀드 하나 드는 데 최소 1시간에서 1시간30분가량의 시간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되는 상황이다. 특히 대부분의 일반투자자들은 채권형 펀드 등에만 투자권유를 받을 수 있게 돼 기준이 너무 까다롭다는 지적을 일고 있다.
또 준칙 적용을 1개월 남기고 표준안이 나와 직원 교육 등 이를 준비할 시간적 여유조차 없다는 불만과 함께 업계의 요구에 따른 또다른 수정 검토 작업이 진행 중이다. 익명을 요구한 한 증권사 기획담당 임원은 “자체적인 고객 분류.권유안을 정해놓고 20 ~ 30%에게는 선별적으로 금융상품을 권한다는 방침을 정해놨었다”며 “하지만 준칙을 따르면 기존 고객의 70 ~ 80%에게는 상품 권유가 불가능해진다”고 밝혔다.
또 같은 사람이 금융사 창구를 찾더라도 매번 자금의 특성을 다시 파악하도록 해 고객 불편이 불가피하다는 지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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증권 전문가들은 이 같은 규제가 미국과 유럽의 투자은행의 몰락에 대해 막연한 공포감을 갖는 것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고 있다. 85년간 `무적자' 를 이어온 베어스턴스와 158년 역사의 리먼브러더스의 지난해 파산 선언은 투자은행업의 몰락이 아닌 레버리지 투자의 몰락인데도 이를 오해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이들은 자본금에 비해 30 ~ 40배에 이르는 빚을 동원(레버리지)해 무리한 투자를 했다.
알렉스 배렛(Alex Barrett) 스탠다드차타드은행 글로벌 헤드는 "금융위기가 실물경기로 번지고 있지만, 자본시장통합법으로 혁신적인 금융시스템이 도입될 경우 새로운 상품을 많이 개발하면서 제조업과 기타 산업의 자금조달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혔다.
증권연구원은 "한국 증권사의 부채비율은 자기자본의 3~4배 정도에 불과하다"며 몰락한 미국 대형 투자은행과 국내의 사정은 다르다고 밝혔다.
금융사들의 적극적인 투자자 보호 노력 외에 투자자들의 의식 변화에 대한 주문도 있다. 최범수 신한금융지주 부사장은 "금융사들이 투자자들을 이해시키기 위한 노력이 필수적이지만 투자자들의 태도 변화도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해외 금융사의 금융상품 투자설명서에는 투자자들이 스스로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점이 강조돼 있다고 소개하기도 했다.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투자은행(IB)를 만들겠다는 취지에 맞춰 증권사들의 자본 확충과 인수·합병(M&A) 활성화가 필수인 만큼 이에 대한 인센티브 관련 내용이 필요하다고 조언하는 이들도 있다. 현재처럼 진입이 자유롭고 대형화나 퇴출에 대한 가이드라인이 부족하면 자통법 이전과 같은 파이를 더 많은 시장 참여자들이 나눠먹는데 그칠 수 있다는 것.
B증권사 임원은 “풍랑이 무서워 동력선을 못 띄운다면 여전히 범선으로 파도에 휘둘리게 된다”고 답답한 심정을 토로했다. 하지만 그는 "한국의 중소기업, 혁신기업 같은 고위험 산업이 육성되기 위해서는 위험을 전문적으로 다루는 IB와 위험자본을 제공할 자본시장이 꼭 필요하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