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이 너무 이뻐요"…헉! 알고보니 노처녀

머니투데이 김병근 기자 2009.01.21 17: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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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생존백서-아찔했던 순간]⑨직장생활, "눈치도 능력"

"딸이 너무 이뻐요"…헉! 알고보니 노처녀


'남의 마음을 그때그때 상황에 미루어 알아내는 것'

'눈치'의 사전적 정의다. 말은 쉽지만 눈치 있게 행동하기는 쉽지 않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도 있지 않나.

사람은 사회적 동물인 만큼 눈치는 사회생활에서 필수 스펙(구직자의 학력·학점·토익점수 따위를 합한 조건)이다. 가정에서, 학교에서, 직장에서도 눈치 없는 사람은 이내 '눈칫밥'을 먹기 일쑤다.



'눈치가 밥 먹여 주냐'고 투덜댈 게 아니다. 실제 눈치가 '밥 먹여' 주는 사례는 주변에서도 쉽게 찾을 수 있다. 눈치는 '처세'에 다름 아니다.

특히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신입사원에게 때로는 눈치가 뛰어난 일 처리 능력, 언어 구사 능력보다 더 잘 먹힐 때가 많다.



주변을 돌아보자. 업무 능력은 자신과 별반 다르지 않거나 심지어 더 떨어지는데도 승진에서 앞서가는 이들이 있지 않은가.

이들은 대개 둘 중 하나다. 든든한 '후원자'가 있거나 타고난 '눈치'를 갖고 있다. 바야흐로 눈치도 '능력'인 시대인 것이다.

#화장품 대기업 입사 1년 차 신입사원 김씨.


"입사 기념으로 오늘 점심은 내가 맛있는 거 쏠게"란 말에 동기와 함께 기분 좋게 팀장님을 따라 나섰는데.

레스토랑에서 수프와 샐러드, 파스타에 후식까지 맛있게 먹고 막 나오려던 참이었다. 팀장님이 카운터에서 계산을 하려고 지갑을 여는데 지갑 속에서 어여쁜 여자 아이 2명의 사진이 보이는 게 아닌가.



김씨는 점심도 잘 얻어먹었겠다, 점수 좀 딸 요량으로 "어머 팀장님~ 아이들이 너무 예뻐요. 어쩜 엄마(팀장)를 이렇게 쏘옥 닮았을까~ 아이들이 이렇게 예쁜데 왜 평소에 한 말씀도 안 하셨어요"라고 말했다.

레스토랑 점원도 거들었다. "어머, 아이들이 엄마 닮아서 아주 예쁘네요. 나중에 미스코리아 내보내도 되겠어요."

팀장님의 환한 미소를 기대했건만 착각이었다. 분위기는 싸늘해지고 팀장님 얼굴은 굳어졌다.



팀장님은 41살 노처녀였다. 조용히 있던 동기는 알고 있었지만 김씨만 몰랐다. 김씨는 이날 먹은 게 얹혀 오후 내내 변기를 붙잡고 있었다.

#또 다른 대기업 화장품 회사에 다니는 이씨. 그에게도 비슷한 아픈 기억이 있다.

입사 3주 만에 부에서 마련해준 회식자리에서의 일이다. 술도 많이 마시고 이야기꽃도 피우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부장님 옆에 앉아서 아부도 떨고 점수도 땄다.



그러던 중 우연찮게 부장님 휴대폰 배경화면의 갓난아기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부장님 손녀인가봐여~. 너무 귀엽네요"

40대 후반인 부장님 나이에 갓난아기가 딸이 아닐 거라고 생각한 것이다.



아이스맨이 다녀갔을까. 화기애애했던 회식 자리는 순식간에 꽁꽁 얼어붙었다. 이씨가 손녀로 착각한 갓난아기는 부장님이 어렵게 본 늦둥이였다. '손녀' 운운한 자신의 한 마디에 한순간에 얼어붙은 그날의 분위기를 생각하면 지금도 살이 떨린다고. 이씨는 그날 일로 눈치의 중요성을 온몸으로 체득했다.

#대기업 은행에 다니는 김씨. 일 처리 능력이 뛰어난 데다 사교성도 좋아 두루 인기 만점이다. 그러나 눈치가 '젬병'인 게 단점이다.

옆자리 대리님 앞에 아는 손님이 왔다.



대리님이 "셋이서 같이 커피 한잔 할까"하는 말에 "그래요"라고 웃으며 대답한 그는 손님과 계속 이야기하는데 열중했다.

다시 대리님이 "다 같이 커피 마실까" 하자 속으로 '먹겠다고 아까 말했는데 왜 또 다시 말하지'라고 생각하면서도 "네~"라고 대답했다.

결국 대리님은 눈치 없는 그를 놔두고 뒤로 가서 직접 커피를 타왔다. 김씨는 '아차' 싶었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다.



#삼성전자에 갓 입사한 최씨.

사무실에 있을 때 휴대폰 진동이 울리면 이내 '오프' 버튼을 눌러댔다. 신입사원으로서 개인적인 전화를 받는 게 눈치 보였기 때문.

옆자리 과장님이 구세주를 자처했다.



"OO씨, 사무실에서 개인적인 통화해도 괜찮아요. 왜 항상 오는 전화를 그냥 끊어요."

이날부터 오는 전화를 맘 편히 받기 시작했다. 그러나 편한 것도 정도가 있지.

오는 전화 다 받으며 '하하호호' 수다 떨다 주변에서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심지어 개인적인 전화하느라 회사로 걸려오는 전화를 안 받아 과장님이 대신 받는 일도 빈번해졌다.



결국 최씨에게 '사무실 내 개인 통화 금지령'이 떨어졌다. 너무 늦게 눈치를 봤다 큰 코 다쳤다.

#CJ미디어에 다니는 강씨. 매월 1회씩 영업본부에서 진행하는 행사 '와우데이'가 끝났다.

강씨가 속한 팀은 처리할 일이 남아 모두 회사로 복귀하는 데 강씨만 남게 됐다. 영업본부장님이 '저녁만 먹고 가라'고 잡는데 신입사원이 어찌 거부할쏘냐.



팀에서 혼자 남은 강씨는 본부장님을 비롯해 다른 상사들이 주는 술을 연신 받아 먹다 몸을 못 가눌 정도로 취하고 말았다.

2시간이 다 되가는 데도 돌아오지 않는 강씨에게 전화가 왔다. 팀장님이다.

"빨리 안 와!"



팀장님의 불호령에 정신을 가다듬고 회사로 쏜살같이 달려갔다. 이날 강씨는 입사 후 처음 팀장님으로부터 야단을 맞았다.

강씨는 혼자만 일을 안 한 게 미안하면서도 자신을 못 가게 해 놓고도 아무런 방패막이가 돼주지 못한 본부장님이 야속했다. 하지만 이때의 경험이 사안의 경중을 가려 적절한 해법을 찾을 수 있는 기회였다고 한다.

입사시험에 따로 '눈치'시험은 없다. 회사가 입사시험에서 신입사원의 눈치 능력을 평가하진 않는다.



그러나 눈치는 모든 사회인에게 필수 스펙이다. 사소해 보이지만 얼마나 눈치가 빠르냐에 따라 입사 동기들과 승진에서 차이가 나기도 한다. 일 잘 못하는 동료가 상사한테 더 사랑받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눈치를 배우는 데 왕도는 없다. 평소 주변 사람들의 행동을 유심히 살펴보며 다양한 경험을 통해 '눈치껏' 배우는 게 최선이다. 단, 주위에서 보기에 비굴할 정도의 눈치는 지양해야 한다.

한동호 웅진코웨이 홍보팀장은 "내가 속한 조직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을 이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며 이것을 애정이라고도 하고 좋은 뜻의 눈치라고도 할 수 있다"며 "눈치는 업무 능력과 더불어 사회에 첫발을 내딛은 신입사원은 물론 모든 직원들에게 요구되는 소양으로 적당한 눈치는 능력이지만 비굴할 정도의 지나친 눈치는 삼가야 한다"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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