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남기자, '핑크 팬티' 공개된 사연

머니투데이 김희정 기자 2009.01.20 1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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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사원 생존백서-아찔했던 순간]⑧술자리에서 필요한 센스-下

ⓒ삽화=윤장혁 기자 younzang@moneytoday.co.krⓒ삽화=윤장혁 기자 [email protected]


직장 내 술자리의 시작은 '잔을 돌리는 것'이고, 그 끝은 '무사귀가 후 무사출근 하는 것'이다.

술을 잘 마시는 것도 좋지만 먹고 난 사후처리가 훨씬 더 중요하다. 실수 없이 술자리를 마쳐도 일단 취기가 돈 상태인지라 자칫 제 2,3의 대형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 위계질서가 엄격하기로 유명한 모 신문사에 입사한 방년 27세의 J군. 그날도 잔뜩 군기가 든 채 술자리가 이어졌다. 1차 소주에서 2차 맥주, 다시 3차 폭탄주로 이어진 술자리. 거나하게 취기가 돌았고 어느 순간 정신을 차려보니 이게 웬일?



같은 부서 여자선배와 단 둘이 택시에 올라있었다. 문제는 두 사람 다 제 몸을 가누지 못할 정도로 술에 취했다는 것. 기사도 정신을 발휘해 선배를 집에 데려다주고 싶었지만, 자신의 몸도 가누기 어려운 상황. 엎치락뒤치락 업지도 못하고 질질 끌다시피 해서 J의 자취집으로 모셨다.

'그래도 남녀가 유별한데…'



고민 끝에 여자 선배를 김밥 말듯, 이불로 돌돌 말아 방구석으로 밀어 넣었다. 해야 할 일을 마쳤다는 생각에 안도감이 밀려온 J. 순간 아메바 뺨치는 건망증으로 여자선배가 있다는 것을 잊은 채, 평소대로 속옷만 입고 잠을 청했다.

그 땐 몰랐다. 여자친구가 선물해준 팬티 양쪽 엉덩이 부분을 핑크색 미키마우스 문양이 장식하고 있다는 사실도.

다음날 아침. 여자선배는 가고 없었다. J는 '본인도 민망했겠지' 싶었다. 하지만, 그날 이후 J의 별명은 '핑키마우스'가 됐다. 그나마 여자선배를 외박하게 만든 음흉한 수습기자라는 오해를 받지 않게 된 게 다행이었다.


만약 여자친구 귀에 이 얘기가 들어갔더라면? '콩 볶듯' 볶이고도 모자라 이별 통고를 받았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 오랜 시간 미국에서 유학하고 굴지의 대기업 C사 개발부서에 입사한 L양. 저녁에 환영식이 있다는 말에 살짝 긴장했지만, 강압적으로 술 마시는 분위기가 아니니 편하게 즐기라는 선배의 말에 안심했다.



맥주 한두 잔 먹어본 게 전부였던 L양은 부서장(임원급)으로부터 폭탄주를 받고, 그 카리스마에 눌려 일단 받아마셨다. 그 때 용수철 튀듯 L양에게 날아온 한 마디.

"못 마신다는 건 내숭이었네. 내 술만 거절해?"

한 잔이 두 잔, 두 잔이 석 잔, 다시 석 잔이 넉 잔…. 그렇게 마신 술이 어느 덧 열 잔을 넘어갔지만 L양의 얼굴은 빨갛게 익기는커녕, 투명 인간처럼 하얗고 뽀했다.



'어, 나도 알고 보니 폭탄주 체질?'

못 먹겠으면 먹지 말라는 선배들의 만류에도 L양은 '괜찮다, 괜찮다'를 연발하며 끝까지 마셨다. 메가톤급 폭탄이 노래방을 휩쓸고 지나간 그날 새벽, L양의 부서장은 뜻밖의 전화를 받았다. 멀쩡히 귀가한 줄 알았던 L양이 의식을 잃고 응급실로 실려 갔던 것.

그렇게 장렬히 '전사'한 L양은 꼬박 3일을 결근했다. 긴장 속에 마셔서 취하진 않았지만, 몸이 감당하기엔 무리였던 셈이다.



# 주류업체 J사 인사팀의 안 씨. 평소 소주 2병은 거뜬히 마셨기에, 회식 자리가 두렵진 않았다. 그런데 회사 선배들은 그야 말로 주당 중의 주당들이었다.

송년회를 겸해 회사 동호회 선배들과 모인 술자리. 1차가 4차까지 이어지며 시계추는 새벽 2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서울에서 이천공장으로 통근하던 안 씨였기에 출근할 일이 까마득했지만 이미 만취 상태였다.

아침 7시, 통근버스가 오는 본사 앞으로 울렁거리는 속을 달래며 전속력으로 뛰었다. '이젠 잠만 자면 되겠다' 싶어 마음은 편했다.



그 때, 속에서 신호가 왔다. 매스껍고 구토는 이어지는데 밀폐된 버스 안은 너무도 고요했다. 영화 '엽기적인 그녀'의 전지현처럼 올라오는 내용물을 눈 질끈 감고 다시 삼켰다. 내 속은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님을 확인하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두 번의 고비를 넘기고 분당쯤 지났을 때, 구사일생으로 통근 버스 문이 열렸다. 전광 석화처럼 뛰쳐나가 버스 표지판을 붙들고 거사를 치렀다.

버스 기사부터 시작해 버스 밖의 상황을 목도했을 선배들의 얼굴을 차마 쳐다볼 수가 없었다. 4개 밖에 안 되는 버스 탑승계단이 어느 장벽보다 높고 길게 느껴졌다.



얼마간의 정적이 흐른 뒤 어느 팀 차장이 "편히 누워가라"며 맨 뒷자리를 양보하고는 안 씨를 눕힌 채 안전벨트로 꽁꽁 묶었다. 여러 번 해본 듯 너무나 익숙한 솜씨였다.

이후 안 씨는 음주 전후 식사를 거르는 한이 있어도 숙취 해소음료만은 챙겨먹게 됐다고.

J사에는 지금도 통근버스 안전벨트에 꽁꽁 묶여 누운 채 출근하는 신입사원이 끊이지 않고 있다고 전해진다.



# 30대 후반의 베테랑 금융맨 이씨. 지금이야 하루 저녁 죽도록 술을 들이부어도 다음날 칼 출근하는 주신(酒神)이 됐지만, 그에게도 혹독한 시련의 시기는 있었다.

마음 맞는 남자 직원들끼리 '부어라, 마셔라'하며 삼킨 술은 역시 단합효과가 만점이었다.

"집에 갈 거 뭐 있나, 아무개네 집에서 자지."



이렇게 세 명이 함께 새벽을 달리고, 나란히 동침을 한 결과는 전원 지각. 슬금슬금 눈치를 보며 출근한 세 명에게 지점장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신입들이 빠져가지고… 네들은 영업할 필요 없다."

세 명의 '문제아'에게는 지점장실에 갇힌 채 하루 종일 신문만 정독하라는 벌이 떨어졌다.



'속도 안 좋은데 고맙지, 뭐.'

그런데, 일 안 하고 신문 보는 게 영업보다 더 힘들었다. 지점장 뿐 아니라 모든 선배들의 눈총을 견뎌야 했다. 일 안 하고 밥 먹는 것도 눈치가 보였다.

이 씨는 그 이후 아무리 술을 많이 먹어도 지각은 하지 않는다. 일단 회사에 출근해 휴가를 내는 한이 있어도, 정말 불가피한 상황이 아닌 한 출근 시간은 반드시 지켰다.



직장에서 술자리는 팀워크를 다지고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 위한 '윤활유'다. 술 때문에 업무에 지장이 생기면 주객이 전도되는 셈이다.

김유승 CJ제일제당 인사팀 과장은 "술 때문에 지각하지 않고 다음 날 일 하는데 지장을 주지 않을 정도로 음주를 자제하는 것은 업(業)에 임하는 기본적인 자세"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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