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은 좀 더 많은 욕을 먹어야 한다"

머니투데이 박영암 기자 2009.01.12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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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장전문가에게 듣는다<2>] 조병문 KB투자증권 리서치 센터장

"은행은 좀 더 많은 욕을 먹어야 한다"


"은행들은 지금보다 더 욕을 먹어야 한다. 은행이 돈을 풀지 않는다는 비난을 참아내야 한국경제가 살 수 있다."

조병문 KB투자증권 리서치센터장(사진)은 지난 9일 장 마감후 서울 여의도 본사에서 기자와 만나 "지금보다 더 엄격한 대출잣대를 적용해야 은행 자산건전성이 훼손되지 않는다"며 "지역경제침체 등 사회여론에 굴복해서 한계기업에 자금을 제공할 경우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떠안게 된다"며 이같이 강조했다.

조 센터장은 은행권의 ‘냉정한 잣대’를 ‘은행 이기주의’로 매도하는 것은 금융시장의 냉혹한 현실을 모르는 순진한 발상이라고 반박했다. 특히 중소 건설사와 조선사의 구조조정을 앞두고 보다 많은 기업을 살려야 한다고 은행권에 외압을 가하는 것은 현명한 행동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은행은 '자선단체'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대신 조 센터장은 신용상태가 양호하지만 자금지원이 필요한 중소기업과 영세민 등에 대해서는 "정부 재정이나 정부출연조직 등에서 지원해야 한다"고 말했다. 재정이나 기금 등에서 지원한 후 부실이 발생하더라도 정치적으로나 대외신인도에서 충격이 적다는 판단에서다.

'배드뱅크' 통해 은행 부실자산 줄여줘야



그는 최근 은행권의 유상증자나 후순위채 발행 등을 통한 자기자본 확충에 대해서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조선이나 건설업체 구조조정, 부동산 가격하락, 키코 등에서 부실자산의 추가 발생이 예상되기 때문에 선제적으로 자기자본을 늘리는 것은 필요한 조치라고 후한 점수를 줬다. 다만 금융감독당국에서 요구하는 BIS 비율 12%(기본자본 9%)를 유지하기 위해서는 자본확충만으로는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조 센터장은 "지난해 하반기 정부에서 상호저축은행의 PF자산을 1조3000억원까지 매입하겠다고 밝힌 것처럼 은행의 부실자산을 ‘배드뱅크’ 등을 통해 사들이는 노력이 병행돼야 궁극적으로 양호한 자산건전성을 유지할 수 있다"고 전망했다.

물론 이렇게 해도 은행의 즉각적인 자금지원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게 조 센터장의 판단이다. 은행이 돈을 풀기 위해서는 기업이나 가계의 신용위험 감소가 가시화돼야 한다. 즉 설 연휴 이후 본격 추진될 구조조정 등을 통해 '불확실성'이 제거돼야 은행돈이 돌 것이라고 말했다. 생존을 장담하기 힘든 기업을 확인할 수 없는 상황에서 돈을 풀 은행이 없다는 얘기다.


비단 이같은 현상은 국내에만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지난해말 기준으로 미국 상업은행의 초과 지준액이 8000억달러를 넘었다. 금융회사간 자금흐름은 최악의 상황에서 벗어났지만 실물경제의 불확실성으로 미국 시중은행도 기업대출을 관망하고 있다는 설명이다.

'은행 이기주의'비난은 근시안적 평가



은행주에 대해서는 기업구조조정의 강도를 지켜본 후 투자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과거에 비해 낮은 밸류에이션을 보이지만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차원의 구조조정 영향을 쉽게 예상하기 힘들다는 판단에서다. 조 센터장은 "미국 자동차업계 ‘빅3’ 구조조정이 가사회되고 국내에서는 조선 건설업체의 처리가 구체화돼야 은행주의 저평가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조 센터장은 연세대 대학원 경제학과 출신으로 현대증권, LG투자증권 등에서 은행업종 등 금융업 애널리스트로 활약했다. 국내외 여러 언론사에서 2001년부터 2006년까지 5년간 ‘은행업종 등 금융업 베스트 애널리스트로 선정됐다. 2006년부터 KB투자증권 리서치센터를 이끌고 있다. 다음은 조 센터장과 일문일답.

- 은행문턱이 너무 높다는 비난여론이 거세다. '공적자금을 받은 은행이 혼자만 살겠다며 자금을 풀지 않고 있다‘는 비난에 대해 어떻게 평가하나.
▶ 너무 근시안적인 평가다. 은행이 사회적 압력에 못 이겨 신용상태가 불량한 ‘사회적 약자’에 제공한 대출이 부실화될 경우 그 손실을 누가 책임질 수 있나. 은행 자산의 부실화는 곧바로 국가신용등급 하향조정으로 연결된다. 무디스 등 국제신용평가사에서 눈을 부릅뜨고 지켜보고 있는 상황에서 은행권에 수익성이 없는 곳에 자금을 풀라고 요구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발상이다. 금융위기 진원지인 미국에서 조차도 은행들에게 자금난을 겪고 있는 기업들에게 돈을 풀라는 얘기는 없다. 은행 부실화가 가져올 피해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중소업체나 자영업자, 농어민 등에 대한 대출도 은행권에서 자율적으로 판단해야 한다. 은행도 수익성을 추구하기 때문에 위험과 수익의 적절한 조합을 통해 돈을 풀 것이다. 다만 현재의 ‘시장실패’ 상황에서는 은행이 유동성을 공급할 수 있도록 정부가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한계기업을 퇴출시켜 은행권에서 건실한 기업으로 자금이 나갈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 유상증자와 후순위채 발행 등을 통해 은행권은 정부의 요구치인 BIS 비율 12%를 충족하고 있다. 지금까지 성과에 대해 평가해 달라.
▶ 은행권의 BIS비율 달성노력은 절반의 성과를 거뒀다. 지주회사가 후순위채 발행을 통해 은행의 자본금을 늘리거나 은행 자체적으로 유상증자를 통한 자본금 확충에 나섰다. 다만 이같은 노력만으로는 부족하다. BIS 비율은 자기자본 확대 뿐만 아니라 부실채권 감소를 통해서도 높아진다.

"한계기업 퇴출돼야 은행자금 풀어"



지금까지 정부와 은행권이 자기자본 확대에 초점을 맞췄다면 앞으로는 부실채권 감소가 주요한 과제다. 외환위기 직후처럼 은행권에서 부실자산을 사들이는 ‘배드 뱅크’를 설립해야 한다. 구조조정이나 경기침체로 은행권의 부실자산 증가가 예상되기 때문에 이를 사들여 은행의 자산건전성을 높여줘야 한다. 즉 자기자본 확대와 부실채권 매각을 동시에 추구해 은행의 자산건전성과 BIS 비율을 높여야 한다. 이같은 작업이 동시에 진행될 때 은행권도 일시적 자금난을 겪고 있는 우량기업에 대한 대출에 나설 수 있다.

- 은행채 RP편입, 자본확충펀드 조성 등 다양한 조치에도 은행권에서 돈을 풀지 않는 이유가 무엇인가.
▲ 구조조정 대상 기업의 ‘생사부'가 확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느 기업이 퇴출대상인줄 모르는 상황에서 은행권이 쉽게 돈을 풀기 어렵다. 구조조정의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는 한 은행에 아무리 많은 유동성을 공급해도 기업부분으로 자금이 흘러들어가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자금난은 유동성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구조조정에 대한 불확실성에서 기인하기 때문이다.

사실 이것은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미국도 마찬가지다. FRB에 따르면 미국 상업은행의 지난해 12월말기준 초과지급준비액은 8000억 달러를 넘었다. 금융위기 이전인 2007년 7월 초과지준액은 50억달러도 채 안 됐다. 이자율이 0%인 지준액을 대규모로 보유하는 것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기업구조조정에 대한 불확실성이 해소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마 미국 은행들도 자동차 업계의 ‘빅3’에 대한 가시적인 구조조정 성과가 나와야 돈을 풀 것이다. 국내에서도 조선 건설업종의 구조조정이 가시적인 성과를 보여야 한다. 구조적인 불확실성이 해소돼야 자금시장도 급속히 안정을 되찾을 것이다.



- 조선ㆍ건설업종 구조조정으로 예상되는 은행권의 부실자산 규모와 이에 따른 BIS 비율 하락 크기는 얼마나 되나.
▶ 현시점에서 부실자산 규모와 이에 따른 BIS 비율 하락을 정확히 산정하는 것은 쉽지 않다. 다만 현재까지 알려진 정보를 토대로 추정해 본다면 조선과 건설사 구조조정이 은행권의 BIS 비율에 크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건설사 구조조정으로 8개 상장은행의 BIS비율은 0.5%p 하락할 것이다. 10 여개 퇴출예상 건설사에 대한 여신은 9.3조원으로 추정되며 이중 4.3조원이 은행권의 잠재손실로 연결된다. 21개 중소형 조선사중 9개사가 구조조정 될 경우 0.2%의 BIS비율 하락을 추정할 수 있다. 조선사 여신(3.4조원)중 1.5조원이 부실채권으로 분류될 가능성이 높다. 다만 이들 건설과 조선업체의 구조조정 강도에 따라 부실자산 규모와 BIS 비율하락폭은 유동적이다.

자산과 부채의 만기불일치가 가장 큰 리스크



- 금융위기 발생이후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적지 않은 은행들이 파산했다. 심지어 일부 은행에서는 자금대량 인출(뱅크런)도 발생했다. 국내은행이 미국이나 유럽은행보다 리스크 관리에 성공한 결과인가.
▶ 사실 리스크 관리능력보다는 한국은행들의 운이 좋았다. 가령 미국이나 유럽 은행들은 대부분 파생상품투자에서 거액의 손실을 기록했다. 서브프라임 모기지를 기초자산으로 하는 파생상품투자에서 치명타를 입었다. 반면 국내은행들은 이들 파생상품에 대한 이해부족으로 투자를 못해 손실을 모면했다.

물론 국내기업들의 양호한 재무건전성도 은행 자산건전성 악화 방지에 일조했다. 가계대출과 중소기업 대출채권에 대한 부실이 우려되지만 자본금 확충과 신속한 구조조정으로 국내은행이 감내할 수 있다.

- 은행 애널리스트로서 미국발 금융위기를 겪는 국내 은행의 가장 시급한 과제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 개인적으로 크게 2가지 교훈을 이번 금융위기에서 얻었다. 첫째는 자금운용의 미스매칭을 줄이는 것이다. 자금조달과 자금운용의 만기불일치에 따른 ‘유동성 위기’가 가장 급선무다. 지난해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국내 은행들이 가장 취약했던 부분이 바로 ‘자산과 부채의 만기 불일치’였다.



국내은행들은 보통 단기로 조달한 달러화를 1년이상 장기로 운용한다. 이것은 평상시에는 크게 문제되지 않을 수 있다. 하지만 이번 금융위기처럼 글로벌 차원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유동성 경색이 발생하면 ‘만기 불일치’에 따른 파산위험이 크게 높아진다. 지난해 4분기 국내 외환시장이 요동친 것도 은행권의 달러 조달과 운용의 기간 불일치에서 비롯됐다.

은행주 투자는 구조조정 이후

두번째로 시장성 자금조달에 의한 성장전략을 재고해야 한다. 지난 몇 년간 국내 은행은 저금리로 저축성 예금이 감소하자 은행채와 CP 발행을 통해 대출재원을 마련했다. 또한 펀드와 방카슈랑스 등 수수료 수익원을 적극 판매했다. 이같은 성장전략으로 예대마진 감소 등을 보완했다. 하지만 이 역시 이번 금융위기로 한계를 노출했다. 펀드수익률 하락으로 은행의 신뢰성에 큰 흠집이 났다. 조달금리 급등으로 은행권 마진은 더 악화됐다.



- 골드만삭스나 모간스탠리, JP모간 등 외국계 증권사들은 경기침체와 구조조정 우려감 등으로 국내은행업종에 대해 보수적인 접근을 주문하고 있다. KB증권은 어떤 태도를 갖고 있나
▶ 은행주는 조선 건설업종 구조조정후 투자할 것을 권한다. 현 주가수준에서 밸류에이션 매력은 있지만 향후 구조조정 불확실성이 남아 있어서다. 예를 들면 은행업종의 PBR(주가순자산배율)이 과거 1.5배수준보다 낮은 0.6배 수준에서 거래되고 있다. 은행 순자산의 60%만 시장에서 인정해 주고 있다는 의미다. 경기침체와 구조조정 불안감이 반영된 결과다. 구조조정 진행에 따라 부실자산이 추가 발생할 경우 PBR이 더 낮아질 수 도 있다. 섣불리 현주가수준에서 투자하기 어려운 이유다.

다만 과거 미국이나 한국 은행주의 주가 추이를 보면 실물경기 회복이전에 은행주들이 상승추세로 돌아섰다. 경기가 바닥권을 벗어나기 전에 은행주들이 먼저 반등할 수 있다는 의미다. 향후 국내은행주들의 턴어라운드 여부는 불확실성의 해소에 달려있다. 즉 실물경기 침체로 은행의 자산건전성과 수익성은 2009년에도 어렵겠지만, 은행 주가는 이와 별개로 구조조정을 통해 불확실성이 제거되면 저점이 먼저 확인될 수 있다. 따라서 향후 은행주 는 구조조정과 불확실성의 해소추세를 보면서 투자할 것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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