産銀이 채권시장 '약자'로 전락한 이유

더벨 황철 기자 2009.01.07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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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bell note]

이 기사는 01월06일(14:02)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산업은행은 그동안 회사채 시장에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절대강자로 통했다. 2007년까지 만해도 인수·주관 부문에서 견줄만한 곳을 찾기 어려웠다.



차순위 증권사들과 거래 금액만 두 배 가량 차이가 났고 영향력 역시 비할 곳이 없었다. 국내 기업의 자금조달이라면 발행규모·등급의 고하를 가리지 않고 팔을 걷어 부쳤다. 정책금융기관으로서 잠재력 갖춘 중견기업들의 채권 발행에 든든한 우군이 돼준 것이다.

그러나 지난해 초부터 산업은행의 입지가 크게 흔들리고 있다. 채권 거래의 질은 물론 양적 측면에서부터 과거의 위용을 찾기 어려워 졌다.



2008 더벨 리그테이블은 이러한 산업은행의 위상 변화를 여실히 드러낸다. 실제로 산업은행이 후발 증권사들의 강력한 도전장에 약한 모습을 보인 것은 진작의 일이다.

상반기 산업은행은 인수·주관 모두 1위 증권사(우리투자증권)와 1조원 이상 격차를 보이며 3위권으로 밀려났다. 4분기에는 연초 대비 절반 이하(5%)로 점유율이 깎이며 10위권에 간신히 턱걸이했다.

그렇다면 국내 최대 IB라는 산업은행이 갑작스레 DCM 시장에서 고전을 면치 못한 이유는 무엇일까. 시장에서는 성급한 민영화 행보가 정체성 혼란으로 이어진 점을 가장 큰 원인으로 꼽고 있다. 정부 주도의 무리한 국책·상업은행 분리 방침이 IB 부문의 전략적 혼선을 야기했다는 것이다.


증권사 관계자는 "정책금융기관으로서 BBB+급 중견기업 채권을 주로 취급해 왔지만 최근들어 채권전략의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며 "기업에 대한 공적 금융지원과 상업은행으로의 전환이라는 딜레마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산업은행의 몰락은 민영화 논의가 본격화하던 때와 궤를 함께 한다. 정부가 앞장서 체질 변화를 재촉하던 지난해 하반기부터 추락 속도는 급격히 빨라졌다. 상반기까지 11.0%를 기록하던 점유율은 하반기 처음으로 한자리수(6.60%)를 기록했다.



산업은행에서는 "4분기들어 진행한 금융지주사들의 계열증권사 우회지원이 점유율 하락의 가장 큰 원인"이라는 입장이다.

금융지주사들이 은행 자본확충을 위해 대규모 채권을 발행했고, 이를 다시 계열 증권사들이 나눠가졌다는 것이다. 우리금융지주 채권은 굿모닝신한증권이, 신한금융지주 채권은 우리투자증권이 주관·인수하는 형태다. 지난해 하반기 유독 이러한 경향이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

산업은행의 위상 변화가 IB업계 전체에 긍정적으로 작용할 것이라는 시각도 있다. DCM 시장에서 절대 강자의 독식 체제가 붕괴되면서 평준화를 이끌 것이라는 논리다.



수년 전 산업은행 민영화 논의가 처음 대두된 것도 이러한 인식 때문이었다. 그동안 IB업계에서는 정책금융기관이 채권자본시장(DCM)을 사실상 독점한다는 비판을 제기해 왔다.

산업은행 역시 이러한 지적을 애써 부인하지 않았다. 산업은행은 증권업계와 정치권의 요구 등을 반영해 DCM 시장에서 부분적으로 실적 줄이기에 돌입했다.

업계 관계자는 "산업은행은 2007년부터 DCM파트의 실적 관리에 들어가기 시작했다"며 "그러나 스스로 속도와 수위 조절을 하지 못했고, 결국 IB 부문의 장점만 잃게 됐다"고 비판했다. 또 "기업 입장에서 보면 채권 발행에 가장 우호적이던 주관·인수사를 놓치게 됐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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