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으로 본 세상] 법정에 선 '키코'

머니투데이 김만배 기자 2009.01.05 09: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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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코 계약을 한 상당수 중소기업들이 2007년 말 이전까지는 환차익을 실현했다'는 지난 7월 공정위의 발표가 사실이라면, 기업들도 계약의 책임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서울중앙지검 형사부장 출신 A변호사.

"통상 보험이란 미래의 불확실성에 대한 보장인데, 환 보험인 키코는 그와는 반대 개념인 상품이다. 그런데 지난 97년 환란을 경험한 국내 금융권이 미래 외환시장의 불확실성에 대한 준비 없이 키코를 판매한 것이 가장 문제다"-서울중앙지법 판사 출신 K변호사.



지난해 11월 초까지 키코 계약 피해를 신고한 중소기업만 170개가 웃돌고 있다. 이중 134곳이 13개 거래은행을 상대로 키코 계약 무효를 다투는 '채무부존재확인 소송'을 제기했다.

이들 기업의 키코 거래 손실액은 무려 (지난해 8월말 기준)1조6943억원에 이른다. 지난 9월 이후 본격화된 금융위기 여파로 원-달러 환율이 급등한 점을 고려하면, 키코 거래 손실이 3조원대에 이른다는 분석도 나온다.



이는 또 최근 두 달간 은행권이 16조6000억원을 확충한 자본 규모의 20%에 이르는 액수다.

구랍 30일 법원이 키코 계약 효력 정지 가처분신청을 제기한 기업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의 결정은 '계약 청산'이 아니라 '효력 정지'에 국한됐지만, 앞으로 이어질 소송에서 법원이 기업의 손을 들어줄 경우엔 은행들의 부담은 상상할 수 없는 수준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된다.


일반적으로 은행들은 키코 계약을 체결하는 순간 외국계 투자은행과 달러를 매도하는 반대 거래를 취하기 때문이다. 즉, 키코 계약 효력이 정지되면 이후 기업이 지급해야 하는 손실을 은행이 떠안아야 하는 탓에 수수료에 한정된 수익에 견줘 부담이 크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법원이 본안 소송에서 어느 쪽의 손을 들어 줄 것이냐에 대해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법원 주변에선 "어느 쪽의 과실을 더 인정하느냐가 이번 소송의 최대 관심사다"며 소송 구조상 어느 한쪽의 일방적인 승리는 기대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조심스런 관측이 나오고 있다.

법원이 이미 가처분 결정을 통해 소송의 결론을 이미 보여줬다는 것이다. 단지 금융사가 상품을 팔 때 '투자자보호 의무' 즉 '설명 의무'를 위반했는지 여부가 이번 소송의 최대 관건이 될 것이라는 의견이다.

또 법원의 판결 동향도 이번 재판에서 어떻게 영향을 미칠 지 중요한 변수라는 의견도 있다.



법원은 최근 투자자 과실 못지않게 상품계약 과정에서 금융사의 과실을 강하게 묻고 있고 금융사의 투자자 보호 의무를 강하게 따지고 있다는 것. 투자자 과실을 더 크게 인정했던 기존 판례와 달리 금융사 책임을 크게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금융사와 키코 피해 기업 양측이 도덕적 책임은 물론 과실의 책임을 피할 수는 없다는 의견이 지배적이다.

먼저 금융사에 대해선, 파생금융상품에 대해 충분한 설명 없이 투자계약을 유도해 온 '후진적 거래 관행'의 대가라는 극단적인 평이 나오고 있다.



또 '파생금융상품'이 최신금융공학의 총아라며 미국 월가 등을 따라 하기에 바빴던 국내 금융권의 천박성에 대한 비난이 함께 일고 있다.

이와 반대로 기업들이 키코에 대해 이해도가 낮은 상태에서 계약을 한 것은 매우 어리석었다며 충분히 과실이 인정된다는 의견도 뒤따르고 있다.

앞서 공정위는 지난해 7월 "키코의 계약 내용은 약관법상 문제가 없다"며 "단지 은행들이 키코와 같은 금융상품을 판매하면서 그 위험성을 고객에게 제대로 설명했는지 여부는 법원에서 판단할 사항"이라고 밝힌 바 있다.



사건의 본질은 이미 명확해졌다. 법원이 향후 심리를 통해 계약과정 등 전반적인 부분에 대해 살펴보겠지만, 판결 방향은 법조계의 예상 범위를 크게 벗어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무려 3조원대의 피해가 발생했고 또 금융시장에서 서로에 대한 신뢰가 훼손됐다는 점이다.

키코를 통해 나타난 우리 경제의 불행한 단면이 법정에서 판단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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