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코' 분쟁 본게임… 승부 어떻게 날까

머니투데이 류철호 기자 2009.01.05 1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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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행 계약 과정서 기업 '기망' 여부가 쟁점

법원이 지난해 말 통화옵션상품인 '키코(KIKO·knock-in knock-out)'와 관련한 가처분소송에서 첫 효력정지 결정을 내린 가운데 관련 본안 소송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이번 소송 결과가 향후 키코 관련 분쟁에 적잖은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이해당사자인 은행권과 해당 기업들의 촉각이 곤두서 있는 것이다.



법원이 구랍 30일 모나미㈜와 디에스엘시디㈜가 SC제일은행을 상대로 낸 옵션계약 효력정지 가처분신청을 일부 인용하면서 본안 소송에서 양측의 치열한 법리공방이 벌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가처분소송 재판부가 주요 쟁점이었던 설명의무 위반 등 은행권의 '불공정 계약'을 사실상 인정했기 때문에 본안 소송에서는 은행권이 애초 계약시점부터 기업들을 기망했는지 여부를 가리는데 초점이 모아질 것으로 보인다.



현재 피해 기업들은 은행이 계약 이전에 키코에 대한 투자가치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았고 계약 당시 손실 위험에 대해 충분한 설명이 없었기 때문에 '사기계약'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모나미 관계자는 "은행은 계약 당시 마치 큰 수익을 낼 수 있는 것처럼 현혹했다"며 "투자위험이 높다는 사실을 알았더라면 계약을 하지 않았을 것이므로 계약 자체가 무효이고 은행이 손실금 전액을 배상해야 마땅하다"고 말했다.

이 업체의 소송대리를 맡고 있는 법무법인 로고스의 김용호 변호사는 "은행권은 환보험이라 속여 키코를 기업에 팔았고 이 상품은 환율 하락 시 은행 책임은 제한적인데 반해 환율이 상승하면 기업 손실은 무제한인 불공정한 상품"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은행권이 키코를 판매할 당시 투자가치가 제대로 평가된 것인지, 가치평가 기준이 적합했는지 여부를 밝히는 게 본안 소송의 쟁점"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또 "은행권은 환율 변동 자체가 천재지변적인 요소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항변하지만 계약상 가장 중요한 요소인 '가치평가'를 소홀히 한 책임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며 "은행은 키코 계약에 따른 피해액 전부를 기업에 배상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에 은행 측은 계약 이전에 투자가치 등에 대한 사전 검토를 충실히 이행한데다 환율 변동은 천재지변으로 봐야 하기 때문에 책임이 없다며 맞서고 있다.

SC제일은행을 대리하고 있는 김앤장법률사무소는 "키코는 환율 변동에 대한 확률 분석을 바탕으로 한 공정한 계약 이다"며 "환율 변동은 그 누구도 예상치 못했던 사태인데다 기업도 일부분 리스크를 감수하고 계약한 것인데 손실이 발생했다고 은행에 책임을 모두 떠넘기는 것은 말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이처럼 양측이 계약 효력 문제를 놓고 공방을 벌이고 있는 가운데 재판부도 심각한 고민에 빠졌다.



결과가 어찌됐든 간에 일방적으로 한쪽의 손을 들어줄 경우 국가경제에 큰 타격을 입을 수 있기 때문이다.

재판부 관계자는 "책임 소재는 재판에서 판가름 나겠지만 결과가 어찌됐든 간에 은행이나 기업 모두 국가적 손실이란 점에서 매우 안타깝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은행이 키코에 대한 적절한 투자가치 평가를 거치지 않고 기업들에게 상품을 판매한 사실이 입증된다면 은행이 책임을 면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며 "투자자가 일정 부분 리스크를 감수하는 게 통상적이라고 해도 은행은 투자가치나 손실위험도 등을 충분히 검토해 계약 이전에 투자자 측에 관련 내용을 고시할 의무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앞서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50부(재판장 이동명 수석부장판사)는 "본안 판결 선고 시까지 신청인 기업들이 체결한 키코 계약 중 해지권 행사(11월3일) 이후에 만기가 도래하는 구간의 효력을 정지 한다"며 모나미 등이 제기한 가처분신청을 일부 받아들인 바 있다.

법원의 이 같은 결정은 은행 측이 키코 계약 당시 설명의무를 위반하는 등 불공정 계약을 한 점을 사실상 인정한 것이지만 피해 기업들의 주장을 모두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

법원의 결정으로 모나미 등은 키코 계약 해지를 요청한 이후 만기가 도래한 계약금 납입은 이행할 필요가 없게 된 상태며 키코로 피해를 입은 상당수 업체들이 소송을 준비하고 있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지난해 말부터 키코로 손실을 본 100여개 기업들이 1차로 소송을 제기했고 법원의 효력정지 결정 이후 키코 피해 기업체 모임인 '환헤지 피해기업공동대책위원회'와 법무법인 등을 통해 가처분신청을 낼 지, 아니면 다른 기업들과 공동으로 즉각 본안 소송을 제기할 지 문의하는 기업이 많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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