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박'했다가 '지루'…예산안 처리 26시간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조철희 기자, 김지민 기자 2008.12.13 13: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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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야가 합의했던 내년도 예산안 처리 시한인 12일. 여야는 분주했다. 여야간 협상을 하고 물밑 조율을 하느라 눈코 뜰 새 없었다.

하지만 허사였다. 예산안 '합의'는 실패로 돌아갔다. 여당은 강행 처리를 했고 민주당은 사실상 '보이콧'으로 항의 표시를 했다. 이로써 18대 첫 예산안 처리는 '합의'가 아닌 '단독'의 꼬리표를 달게 됐다.



'단독'이었지만 최종 처리까지 가는 길은 쉽지 않았다. 여야간 협상이 진행됐던 12일이 '긴박'한 하루였다면 단독 플레이를 했던 13일 새벽과 오전은 '지루'한 시간이었다. 양당의 의원총회부터 본회의 처리까지 26시간을 시간대별로 재정리했다.

오전 9시 : 한나라당과 민주당 모두 의원총회로 하루를 시작했다. 전날밤 여야 원내대표간 협상 내용을 보고받고 향후 대책을 논의하는 자리였다.



양당 의총장 모두 긴장감이 팽배했다. 한나라당은 강경 입장을 재확인하며 의지를 다졌다.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는 "오늘이 마지막 처리 시한"이라고 압박했다. 또 당 소속 의원들을 향해 "여의도를 벗어나지 말라" "준비 태세를 갖춰라" "바로 집결해서 처리토록 하겠다" 등의 지침을 내렸다.

민주당 분위기도 강경했다. 구체적 예산 협상 전략도 짰다. 형님예산, 4대강 정비 예산 등은 각각 1000억원씩 깎아야 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4조3000억원 규모의 서민지원용 예산 확보도 전면에 내걸었다. 한나라당의 남북협력기금 감액도 받아들일 수 없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오전 10시00분 : 홍준표 한나라당 원내대표, 원혜영 민주당 원내대표, 권선택 선진과 창조의 모임 원내대표 등 여야 원내대표가 협상을 시작했다.

회동은 2시간 가까이 진행됐지만 최종 타결에 도달하진 못했다. 쟁점 사안 중 사회간접자본(SOC) 예산을 6000억원 가량 줄이는 선에서 잠정 합의한 게 전부였다. '형님예산' '4대강 정비 예산' '4조3000억 규모 민주당 요구 예산' 등에선 한 치의 물러섬이 없었다.



오후 2시30분 : 점심을 지나면서 분위기가 험악해졌다. 2차 원내대표 회동을 앞두고 이한구 예결위원장과 각당 예결위 간사들이 세부 조정을 마치기로 했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예결위의 조정을 토대로 담판을 지려했던 원내대표들의 구상은 어긋났다. 원내대표 회동은 사실상 무산됐다. 게다가 이한구 예결위원장이 자리를 비우며 예결소위 자체도 가동되지 않았다.

오후 5시 30분 : 3차 원내대표 회동이 이뤄졌다. 하지만 무의미했다. 오전 상황에서 한발짝도 내딛지 못해 논의할 게 없었다.



감정도 상했다. 민주당은 이한구 위원장이 의도적으로 피하면서 회의 지연 작전을 펴고 있다고 공세를 취했다. '단독 처리'를 위한 사전 정지 작업이란 의혹의 시선인 셈이다. 이에 한나라당은 예산안 정리를 하고 있다고 맞섰다.

오후 9시 : 4차 회동이 열렸다. 하지만 결과는 '결렬'이었다. 민주당은 속았다고 했다. 한나라당은 무리한 요구로 예산안 처리를 지연시킨다고 받아쳤다.

각 당은 이후 행동 지침을 마련했다. 민주당이 먼저 움직였다. 의원들을 소집, 예결위원회장 앞에서 농성을 시작했다. 반면 한나라당은 예산결산 소위를 가동하며 강행 태세를 취했다.



오후 10시 : 한나라당이 의원총회를 소집했다. '선 감세법안 처리-후 예산안 처리'의 방침을 정했다. 본회의 개회 시간은 밤 11시로 잡았다. 예결위 소위도 단독으로 계속 진행했다. 당 지도부와 실무진들의 발걸음은 눈에 띌 만큼 빨라졌다.

오후 10시50분 : 민주당은 본회의 불참을 선언했다. 민주노동당은 본회의장 앞에서 항의 농성을 시작했다.

오후 10시57분 :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이 본회의장에 입장했다. 당 지도부와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도 참석했다.



오후 11시8분 : 민주노동당 소속 5명의 의원이 본회의장에 들어섰다. 곧바로 의장석으로 향했다. 하지만 곧바로 끌려내려왔다. 플래카드를 들고 농성을 했지만 경위들에 의해 본회의장 밖으로 밀려났다.

오후 11시 30분 : 김형오 의장이 개회를 선언했다. 한나라당 소속 의원들만 자리를 지켰다. 자유선진당 소속 의원들은 의원 총회 후 참석키로 방침을 정했다.

오후 11시 36분 : 김형오 의장이 13개 감세법안을 일괄 상정했다. 당초 16개 법안중 농어촌특별세 폐지법안 등 3개는 미뤄졌다. 이혜훈 한나라당 의원이 법안 설명을 했다.



오후 11시47분 : 13개 감세 법안에 대한 투표가 시작됐다.

오후 11시59분 : 감세 법안에 대한 모든 투표가 마무리됐다. 김형오 의장은 차수 변경을 위해 산회를 선포했다.

13일 0시5분 : 2차 본회의가 개회했다. 1시간 동안 국가재정법 개정안 등 11개 법안을 처리했다.



오전 1시20분 : 김형오 의장이 정회를 선언했다. 예산안을 처리해야 하지만 예결위의 예산안 심사가 끝나지 않은 탓이다.

오전 1시40분 : 정무위원회가 긴급 소집됐다. 자산관리공사 증자를 위한 예산 편성을 위해서다. 정부가 긴급히 요청한 자금으로 예산 편성을 위해선 해당 상임위 의결이 필수였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의원들만 참석한 가운데 곧바로 처리됐다. 그 사이 예결위는 계수조정 작업을 마무리하며 내년도 예산안 윤곽을 잡아갔다.

오전 4시10분 : 행정안전위원회가 열렸다. 정무위 소집 이유와 같았다. 행안부 공공기관 인턴제 예산 190억2500만원, 행안부 정부통합전산시스템 백업전용센터 기본설계 10억원 등의 예산안이 처리됐다. 이에앞서 기획재정위와 국토해양위는 각각 통계청 예산 70억5000만원, 도로건설 예산 55억원에 대한 동의 절차를 밟았다.



오전 4시15분 : 강만수 기획재정부장관이 예결특위를 찾았다. 정부 여당간 마지막 정리 작업을 위해서였다. 강 장관은 30분 뒤인 4시45분 자리를 뜨며 "다 잘 됐다"라고 말했다. 이는 예산안 심사 작업이 사실상 마무리됐다는 의미로 해석됐다. 이한구 예결특위 위원장도 곧바로 오전 5시30분 계수조정소위를 소집하겠다고 통보했다.

오전 6시00분 : 계수조정소위에는 민주당 의원들도 참석했다. 하지만 심사 목적이 아니라 항의 목적이었다. 그렇다고 '실력 저지'까지 한 것은 아니다. 민주당 의원들은 소위가 시작되고 12분 가량 머물다 오전 6시께 회의장을 빠져나왔다.

오전 7시 20분 : '탕탕탕' 의사봉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예산안이 소위에서 의결되는 순간이었다. 예산안은 곧바로 예결위 전체회의로 넘겨졌다. 이한구 예결특위 위원장은 기자간담회를 갖고 예산안 확정에 대한 소회를 밝혔다.



오전 9시 20분 : 새해 예산안이 예결위를 통과해 본회의로 넘겨졌다. 소위를 통과한 지 2시간 만의 일이다. 양당이 의원총회를 통해 예산안 협상에 나선 지 24시간이 지났을 때이기도 하다.

오전 9시50분 : 드디어 본회의가 열렸다. 하지만 예산안 처리로 가는 길엔 마지막 '진통'이 남아 있었다. 1시간 넘게 진행된 찬반 토론은 예산안을 둘러싼 논쟁이 아닌 정치 공방의 장이었다.

오전 11시17분 : 예산안은 11시 17분에야 본회의를 통과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을 때였다. 밤을 꼬박 세운 지루했던 이틀이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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