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 잃은지 1년, 그의 정부 조언

머니투데이 박재범 기자 2008.12.19 0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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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재 민주당 의원의 3+10 제언 "5년 연연말고 장기적 안목을"

-"정권은 유한하지만 나라는 무한하다"
-"선거 때 말, 남 탓, 욕심 3가지 버려야"

 지난해 12월19일 대선이 치러진지 꼭 1년이 지났다. 새 정부 출범 1년이 됐다는 얘기도 된다. 솔직히 새 정부 1년에 대한 평가는 싸늘하다. 돌아보면 지난해 대선까지 5년 동안도 비슷했다. 종류와 정도는 다를지언정 국정 난맥상이 이어졌다. 전 정부는 난국을 타개할 뚜렷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 채 임기를 끝냈다.

 그 때 노무현 정부를 만들고 이끌었던 주역들은 지금의 위기를 보며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그들은 최소한 5년간의 녹록치 않은 국정 운영 속에서 "그 때 이렇게 했더라면 더 좋았을텐데"라는 노하우는 갖고 있지 않을까. 과거의 경험을 통해 지금의 정부에 대해 좀더 건설적인 조언을 해줄 수 있지 않을까.



정권 잃은지 1년, 그의 정부 조언


이런 생각으로 이광재 민주당 의원을 찾았다. 이 의원은 노무현 정부 첫해 초대 국정상황실장으로 5년 임기의 기틀을 세웠고 이후엔 여당(옛 열린우리당) 의원으로 주요 국정과제의 법제화에 주력했다.

이명박 정부가 성공하려면 무엇을 해야 한다고 생각하는지 이 의원에게 물어봤다. 이 의원은 '경험'을 토대로 비판 대신 진심 어린 충고를 담은 기고문을 전해왔다. 이 기고문을 토대로 인터뷰를 가미해 '선진국을 향한 3+10' 제안을 재정리했다.



▶"선거 때 말, 남 탓, 욕심을 버려라"

―이명박 정부에 대한 제안을 '3+10'으로 정리하셨는데 무엇인가요.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현 정부는 우선 3가지를 버려야 합니다. 그리고 반드시 해야할 굵직한 과제를 10개로 정리했습니다.

―버려야 할 3가지는 무엇인가요.
▶우선 선거 때 한 말을 잊어야 합니다. 그때 했던 말의 노예가 돼선 안됩니다. (대선 공약이었던) 대운하, 747은 해법이 아닙니다. 감세도 그렇습니다. 재정을 건전히 할 때입니다. 냉전적 남북관계도 재고해야 합니다.


둘째로 남 탓, 외부 탓을 말아야 합니다. 대선이 끝난 지 1년입니다. 언제까지 전 정부 탓을 할 겁니까. 당선되는 순간 모든 책임은 집권당과 집권자에게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5년은 짧습니다. 욕심을 버려야 합니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대선 때 국민들이 찍어준 마음을 잊으면 나락으로 떨어집니다. 경제 하나만 제대로 해야 합니다. 가장 중요한 1년이 벌써 지나가고 있습니다.



―선진국으로 가기 위해 해야 할 10대 과제 중 첫째로 대통령 직속의 규제개혁위원회를 제안하셨습니다.
▶대통령이 직접 나서 큰 틀에서 강화할 것은 강화하고 풀 것은 푸는 과감한 규제개혁을 해야 합니다. 대규모 투자 등 핵심 규제에 대해선 레드카펫 미팅을 통해 처리해야 합니다.

―레드카펫 미팅은 무엇인가요.
▶예컨대 중요한 외국인투자자들이 방문할 경우 대통령이 직접 맞자는 것입니다. 통상 실무선에서 영접을 하거나 장관이 만나지만 아예 격을 높이자는 것이죠. 대통령이 부처 장관들과 함께 외국인투자자들을 만나 그 자리에서 애로사항을 해결해주고 투자 약속을 받는 방식도 가능합니다. 그렇다고 절차를 다 무시하자는 것은 아닙니다. '다르다'라는 점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죠.

▶"내치는 총리에게, 대통령은 장기 국정과제에"



―지금도 총리 산하에 규개위가 있긴 합니다만.
▶총리가 아니라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합니다. 그리고 총리에겐 내치의 상당부분을 맡겨야 합니다. 이것이 2번째 제언입니다. 물론 대통령이 국정 전반을 끌고 가야 하지만 외교·안보, 통일, 정보, 법무 수준에서 관여하면 된다고 봅니다.

대통령은 20∼30년 뒤를 내다보는 장기적 국정과제, 역사에 남을 과제에 집중해야죠. 이것만 해도 5년은 짧습니다. 현 정부는 핵심 과제가 무엇인지, 어디로 가겠다는 것인지 잘 보이지 않아요.

―'정무차관제도'는 지금 여당 내에서도 논의되고 있는데요. 이 의원께서도 국회와 협력을 강화하기 위해 필요하다고 제안하셨습니다.
▶참여정부 때도 검토한 문제입니다. 부처별로 정무차관을 두고 국회의원 중 상임위 간사를 임명하면 국회와 협조가 증대될 것입니다. 관료들도 정무적 업무에 따른 소모를 줄일 수 있습니다.



―최근 경제위기를 거치면서 경제부총리 부활 등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는 요구가 많습니다. 비슷한 제안을 하셨는데요.
▶저는 부총리제를 부활해야 한다고 봅니다. 컨트롤타워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선진국에 없는 제도라지만 한국 관료제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합니다.

아울러 금융분야 조직개편은 다시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국내금융과 국제금융을 합칠 필요가 있습니다. 이를 위해 금융정책 기능은 기획재정부로 환원해야 합니다. 대신 금융위와 금융감독원을 합쳐 금융감독청을 만드는 것이 합리적입니다.

감독청은 한국은행과 연계하는 시스템을 만들어 감독기능을 강화해야 합니다. 정책은 기획재정부에서 하고 감독은 감독청과 한은이 공조해서 하면 됩니다.



▶"재정 늘려 철도, 교육, 복지에 쓰라"

정권 잃은지 1년, 그의 정부 조언
―현 시점이 비상시국이라는 인식이 강한 것같습니다.
▶네. 최소 1년은 집중적으로 대응하는 기민함이 필요합니다. 기획재정부를 비롯한 주요 부처 고위공무원을 워싱턴과 뉴욕에 상주토록 해 이른바 '한국경제상황실'을 만들어 대응해나갈 필요가 있습니다. 특히 미국의 새로운 대통령이 탄생하는 시점이라는 점에서 이는 더욱 필요합니다.

―연초 개각설이 나오면서 탕평인사 요구가 많은데요.
▶우리나라엔 외환위기를 극복한 사람들이 있습니다. LG카드 등 신용카드대란에 대처한 사람들도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을 폭넓게 써야 합니다.



―현 정부는 감세를 강조합니다. 반면 민주당은 재정지출에 방점을 찍고 있습니다.
▶감세는 인기 위주 정책입니다. 지금은 재정지출을 통한 위기탈출이 중요한 시기입니다. 그리고 지출의 3대 방향은 철도건설, 교육, 복지가 돼야 합니다.

―지출항목으로 철도건설을 지목한 것이 눈에 띕니다.
▶일제시대 이후 철도노선 증가가 거의 없었습니다. 그간 도로건설 위주였는데 이 정책을 전환해야 합니다. 서해선 복선전철을 건설하고 광주까지 고속철도도 만들고 목포-부산, 포항-금강산, 서울-강릉, 나아가 블라디보스토크까지 철도로 연결해야 합니다.

철도는 에너지 효율이 높은 교통망입니다. 다시 유가가 오를 때에 대비한다는 측면에서도 미래를 위한 좋은 투자입니다. 국토를 가로지르는 종횡의 철도망이 필요합니다. 중국도 이번 경제위기 때 철도에 400조원을 투입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남북 평화 공존을 위해 신경제가 필요하다"

―여권에서도 행정구역 개편 얘기가 나오고 있습니다.
▶필요합니다. 지방정부 예산 130조원 중 불용액, 즉 쓸 필요가 없던 예산이 매년 10조원이 넘습니다. 행정구역 개편과 함께 지방선거도 바뀌어야 합니다. 광역단체장만 선거로 뽑고 기초단체장 선거는 없애는 방안을 연구해야 합니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정당 공천도 없애고요. 지방의회도 개편해야 합니다. 아울러 장·차관 등 중앙부처 고위직을 지낸 인물들이 고향에 내려가 고향을 업그레이드하는 운동도 필요합니다.

―남북관계가 얼어붙고 있습니다.
▶해외에 가서 우리나라 이미지를 조사하면 '분단' '전쟁 위험 국가' 등이 대부분입니다. '코리아 리스크'가 그만큼 크다는 얘기입니다. 남북관계는 경제 측면에서 볼 때도 매우 중요합니다. '코리아 리스크'를 극복하는 것이 우리 경제에도 도움이 됩니다. 남북문제를 좀더 전향적으로 접근할 필요가 있습니다.



―남북관계에서 '신경제'를 주창하셨는데요.
▶평화 공존을 위한 프로젝트입니다. 우선 개성공단이 성공해야 합니다. 그리고 비무장지대(DMZ)를 관광자원화하고 2000조원에 달하는 북한 지하자원에 주목해야 합니다.

또 북한경제 재건을 위한 방안으로 개발은행을 고려할 필요가 있습니다. 6자회담 당사국 중 북한을 제외한 5자가 참여하는 동북아 평화개발은행이 되겠죠. 정치적 상황을 고려해야겠지만 동계올림픽을 남북한이 동시 개최하는 것도 한 방법입니다. 금강산지역과 동시에 추진하면 됩니다.

▶"행시 2배로 뽑아 민간과 교류해야"



―글로벌 경기침체로 원자재 가격이 하락하긴 했지만 여전히 에너지, 자원 등이 화두입니다.
▶한국경제에서 에너지문제는 결정적입니다. 일단 에너지, 자원이 있는 나라의 대사관을 강화해야 합니다. 국정원, 지식경제부, 에너지 관련 공기업 등 자원과 관련된 인물들을 집중 배치해 대사관이 비즈니스와 에너지 확보센터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이죠.

더불어 주요 에너지부국에는 지경부 장관이나 그 나라에 적합한 인재들을 대사로 보내는 것이 필요합니다. 대사들이 여러 나라를 돌아다닐 것이 아니라 특정 나라의 전문가로 육성하고 민간에서도 과감히 발탁해야 합니다.

―에너지·자원문제에는 대통령이 직접 나서야 한다는 의견도 갖고 계신데요.
▶대규모 에너지펀드를 조성해 지도자가 직접 움직일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전력, 석유공사 등에서 펀드를 만들고 정부가 성과급제도를 강화해 리스크와 이익을 정부가 함께하는 획기적이고 과감한 재정투자가 있어야 합니다. 아울러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를 낮추기 위해 원자력 건설도 추진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지도자가 국민들에게 직접 호소해 설득해야 합니다.



―국가인재 충원방식에 대해서도 제언을 하셨습니다.
▶개방형 사회입니다. 행정고시, 외무고시 모두 선발인원을 2배 늘려야 합니다. 선발된 인원 중 절반 정도는 정부, 지방정부, 산하기관 등에서 활용하고 절반은 민간에 보냅니다. 각 영역에서 활동하다 인사교류를 하게 되면 훨씬 더 역동적인 사회가 될 수 있습니다.

―현 정부에 애정어린 조언을 해주셨는데요. 끝으로 당부하실 게 있다면요.
▶어려운 시기에 갈등이 큰 사안은 가급적 피해야 합니다. 여야가 합의하는 선에서 추진해야 합니다. 정부 임기는 짧습니다. 그러나 국가는 무한합니다. 너무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신중에 신중을 기해, 한걸음을 나아가야 멀리, 높이 갈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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