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경제 '침몰' 속도 빨라진다

머니투데이 이규창 기자 2008.12.10 15: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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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2위 경제대국 일본의 '침몰' 속도가 빨라지고 있다. 서브프라임 파동, 금융위기 등 현 글로벌 경제위기의 진앙지인 미국보다도 경제침체가 심화되고 있다.

일본 내각부는 9일 일본의 3분기 국내총생산(GDP) 성장률이 지난달 발표한 잠정치 -0.1%를 크게 밑도는 -0.5%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연율 기준 GDP 성장률은 -1.8%로 미국(-0.5%)보다 훨씬 큰 폭의 침체를 기록했다.



예고된 침체인 만큼 이날 일본 증시는 별다른 영향을 받지 않았다. 그러나 가속이 붙기 시작한 일본 경제의 '침체' 속도는 우려를 자아내고 있다.

◇"경제 더 악화"…합창하는 지표들
지난 9월 요사노 가오루 경제재정상은 일본의 오키나와를 제외한 전지역의 경제상황이 악화되고 있다고 밝혔다. 그러나 10월에는 오키나와마저 엔고 현상으로 인해 관광객이 줄면서 마이너스 성장을 했다.



일본의 10월 경상흑자는 전년 대비 56.5% 줄어 8개월 연속 내리막을 탔다. 무역흑자도 87.2%나 급감하며 4개월만에 감소세로 돌아섰다.

향후 수개월간 경기동향을 나타내주는 10월 경기선행지수는 4.2포인트 하락한 85를 기록할 전망이다. 이는 1980년 조사를 시작한 이래 사상 최대 하락폭이다.

길거리 체감경기도 사상 최악이다. 일본의 11월 길거리(街角)경기지수는 전월 대비 1.6포인트 하락한 21.0을 기록해 두달 연속 사상 최저치를 경신했다.


소비위축과 금융위기로 인한 자금경색으로 기업들의 투자도 위축됐다. 10월 선박과 전력을 제외한 민간 기계 주문액은 전월 대비 4.4% 감소한 8997억엔을 기록했다. 기업의 설비투자가 줄면서 리스업계의 취급액도 10월까지 17개월 연속 감소했다.

◇'디플레이션' 압박…기업파산도 급증
경기침체가 지속되는 가운데 '디플레이션'(자산가치 하락) 압력마저 일본 경제를 아래로 짓누르고 있다. 11월 기업물가는 전월 대비 1.9% 하락해 1960년 1월 조사를 시작한 이래 최대폭으로 하락했다.



일본의 땅값은 10월 한달 동안 상승한 곳이 전무했다.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전국 150개 중심지 중에서 10월 땅값이 3개월전과 비교해 오른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지난 7월에는 조사대상중 13%에 해당하는 지역의 땅값이 상승했으나 이번 조사에서는 도쿄의 긴자와 오오테마치 등 요지로 꼽히는 곳마저 하락세로 반전했다. 전국 150개 지역 중에서 85%에 해당하는 128개 지역의 땅값이 하락한 것으로 나타났다.

부동산 가격 하락에다 경기침체로 기업활동이 위축되면서 도쿄 시내의 오피스 임대료도 하락하기 시작했다. 10월말 조사한 도쿄의 신축 오피스빌딩의 임대료는 6년만에 처음으로 하락세로 돌아섰다. 도쿄에서도 상권 중심지로 꼽히는 신주쿠, 시부야 등 5개 구의 오피스 공실률은 4.11%로 9개월 연속 상승했다.



메릴린치는 10일 "일본은 유가약세와 고용시장 악화, 엔화 강세에 따라 더 깊은 디플레이션을 겪게 될 것"이라며 "내년 8월이 최악의 시점으로, 금년 8월 대비 디플레이션이 2%까지 심화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기업 파산과 감원공포도 확산되고 있다. 일본의 기업 파산건수는 5년래 최고 수준에 달했고, 특히 상장사 파산 건수는 30건에 달해 세계2차대전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들 기업의 파산이 일본 경제에 부담시킨 부채총액은 5760억엔에 달한다.

감원 공포도 확산되고 있다. 가전업체 소니는 정규직 8000명을 포함해 전세계 법인에서 총 1만6000명을 감원할 계획이다. 다음 회계연도까지 감원할 정규직원수는 전체 인력의 5%에 해당한다.



아소 다로 총리는 지난 1일 대기업 단체인 경단련 소속 재계지도자들을 만나 내년 봄 노조와의 단체협상에서 임금을 인상해 줄 것을 요구했지만, 정작 대기업들은 잇따른 감원계획을 발표하고 있다.

일본의 실업률 증가는 소비침체로 이어져 다시 경제침체를 가속화하는 요인으로 작용할 전망이다.

◇"새삼스러울 것 없다"…주가는 오바마 신뢰
다수의 경제전문가들은 일본 경제가 내년까지 마이너스 성장을 지속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회복의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는 상황이지만 정작 투자자들은 "새삼스러울 것 없다"는 반응이다.



일본 경제가 침체로 직행하는 동안 도쿄 증시는 미국과 중국의 경기부양책에 더 주의를 기울이며 8일부터 3일째 상승세를 이어가고 있다. 이미 누구나 알고있는 '침체'를 나타내는 지표나 아소 다로 정권의 무능력보다 최대 수출시장인 미국의 경기부양책에 주목하고 있다.

요미우리신문에 따르면 아소 총리는 2010년까지 총 20조엔을 투자해 '일본판 신뉴딜정책'을 펼 계획이다. 그러나 정부에 대한 불신이 극에 달해 시장에서는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아소 내각의 지지율은 20%에 턱걸이하고 있고 민주당이 정권을 잡아야 한다는 응답자는 60%를 넘었다.

반면 오바마 미국대통령 당선인이 내놓은 '신뉴딜정책'은 즉효를 발휘했다 8일 건설장비업체 코마츠는 오바마 정책의 수혜주로 부각되며 가격제한폭까지 주가가 상승했고 닛케이225지수도 5%대로 급등했다.



크레디트스위스의 이치가와 신이치 투자전략가는 "모두가 오바마 당선인이 글로벌 경제와 증시에 활력을 불어넣어줄 거라고 기대하고 있다"며 "부정적인 경제상황은 이미 주가에 반영됐고 새로운 지표가 나와도 주가가 크게 움직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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