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끈한 미국, 소심한 한국

머니투데이 이상배 기자 2008.12.08 1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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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내년 역성장, 한국보다 심각
- 정부·의회·중앙은행 위기인식의 차이
- "절박한 위기, 보다 과감한 대책 필요"


화끈한 미국, 소심한 한국


"미국 61% vs 한국 12%"



미국과 우리나라가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투입키로 한 자금을 각각의 올해 국내총생산(GDP)으로 나눈 비율이다. 미국이 금융위기의 진원지임을 고려하더라도 상당한 차이다.

게다가 여기에는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 당선인이 준비 중인 대규모 고속도로 건설 등 이른바 '신(新) 뉴딜 정책'이 반영돼 있지 않다. 중앙은행의 금리인하에 따른 영향도 빠져있다. 이런 변수까지 포함하면 양국이 취한 위기대응 수준의 격차는 더욱 커진다.



이는 곧 양국 정부·국회가 가진 위기 인식의 차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글로벌 경제위기 속에 '중규모 개방경제'인 우리나라가 결코 자유로울 수 없고, 실제 내년 상반기 '제로 성장'까지 우려됨을 고려할 때 좀 더 과감한 대책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8일 로스앤젤레스타임스(LAT)에 따르면 지난달말까지 미국 정부가 금융위기 극복을 위해 투입키로 한 자금은 총 8조5000억달러로 원화로 1경2300조원(8일 원/달러 환율 종가 1448원 기준)에 이른다. 이는 올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1.4%)를 기준으로 한 올해 미국 GDP(14조달러) 추정치의 61%에 해당하는 규모다.

미 재무부는 구제금융 법안에 따라 7000억달러의 공적자금을 투입키로 했고, 연방준비제도이사회(FRB)는 기간입찰대출(TAF)를 통해 은행권에 1조6000억 달러를 풀고 있다. FRB는 또 유럽, 일본, 한국 중앙은행과의 통화스와프를 통해 달러화를 무제한 공급 중이다.


한편 우리나라가 위기 극복 재원으로 투입키로 한 자금은 114조원 수준이다. 기획재정부와 한국은행이 외화보유액을 동원해 550억달러, 원화로 80조원 어치의 달러화 유동성을 공급 중이다. 여기에 올해와 내년 재정지출로 총 19조원을 추가 투입하고, 내년부터 3년간 감세를 통해 15조원의 세금을 깎아준다. 그러나 이를 모두 합쳐봐야 올해 GDP 추정치 948조원(OECD 성장률 전망치 기준)의 12%에 불과하다.

한미 양국 정부가 내놓은 대책의 수위에 이처럼 차이가 나는 이유는 크게 3가지다.



첫째 여건의 차이다. 글로벌 금융위기의 발원지인 미국은 내년 마이너스 성장이 기정사실화돼 있다. OECD와 국제통화기금(IMF)을 비롯한 대부분의 연구기관들이 미국에 대해 내년 -1% 수준의 역성장을 예상하고 있다. 반면 우리나라는 내년 3% 성장률 달성도 어렵긴 하지만 미국만큼 상황이 심각하지는 않다.

게다가 미국은 비우량 주택담보대출(서브프라임 모기지) 부실로 국책 모기지업체인 페니매과 프레디맥, 세계최대 보험사 AIG까지 파산 위험에 직면했었지만 우리나라는 사정이 다르다.

둘째 기축통화국과 비국제통화국의 차이도 있다. 필요할 때 스스로 달러화를 찍어낼 수 있는 미국 입장에서는 달러화를 푸는 것에 대해 상대적으로 부담이 적다. FRB가 수조달러를 뿌려대는 것도 이 때문에 가능하다. 반면 우리나라는 외화유동성 지원을 위해서는 외환보유액을 아슬아슬하게 쥐어짜야만 하는 처지다.



마지막으로 위기 인식의 차이다. 미국은 1930년대 대공황 이후 최악의 경제위기를 맞아 전례없이 과감한 대책이 필요하다는 데 정부 뿐 아니라 의회, 학계, FRB 모두 공감하고 있다. 특히 미 의회는 하원에서 구제금융 법안을 한차례 부결시킨 것을 빼고는 정부의 위기대책에 협조적이다. FRB 역시 지난해 9월 이후 최근까지 정책금리를 5.25%에서 1.0%로 빠르게 인하하며 위기 대책에 동조하고 있다. 국회에서는 예산 삭감이 논의되고, 한국은행은 금리인하 폭을 놓고 정부와 갈등을 빚는 우리나라와 대조된다.

유병규 현대경제연구원 산업전략본부장은 "한미간 위기대책의 차이는 정부·의회·중앙은행의 위기 인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 같다"며 "지금이 절박한 위기 상황임을 고려할 때 금리인하, 적자재정의 후유증에 대한 우려는 잠시 접어두고 보다 과감한 대책을 내놓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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