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무실 '기후변화 적응 종합계획'

머니투데이 황국상 기자 2008.11.12 17: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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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산업부문 1페이지 불과, "기본계획으로선 부족"

지구 평균 온도가 6.4도, 해수면이 59㎝ 각각 상승하고 지역에 따라 폭염과 열파, 폭설의 빈도가 증가한다. 물 부족으로 고통받는 지역 역시 그만큼 늘어난다.

쌀·밀·옥수수 등 인류를 먹여 살려온 작물들의 수확량이 급변해 식량안보가 취약해진다. 말라리아·뎅기열 등 열대·아열대 지방에 머물던 전염병 한계선이 점차 북상한다. 더 세진 태풍이 연안·내륙을 휩쓴다.




기후변화에 대한 정부간 패널(IPCC)은 지난해 4차 정기보고서를 통해, 기후변화가 초래할 암울한 미래를 이같이 점쳤다. 불과 200년 남짓한 인류 산업활동이 자초한 업보다.

온실효과를 초래하는 이산화탄소가 분해되기까지는 100년이 걸린다. 즉 지금 당장 모든 산업활동을 중단하더라도 기후변화 효과는 수 세기 이상 진행될 것이라는 말이다. 이제 인류는 싫든 좋든 지금까지와 다른 모습의 기후에 적응해 살아갈 수밖에 없다.



따라서 농업, 임업, 수산업 등 1차산업에서 제조업·서비스업에 이르는 산업 전반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도시·농촌 등 공간의 모습 등 모두가 지금과 달라져야 한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기후 적응' 관련 관심은, 온실가스 감축을 뜻하는 '기후영향 완화' 분야에 비해 관심이 저조한 게 사실. 2007년 기준 기후변화 대응을 위한 총 예산은 16조6000억원이지만, 적응 관련 부문에 배정된 예산은 190억원으로 0.1% 수준에 불과하다.

이같은 문제의식에서 정부는 12일 '국가 기후변화 적응 종합계획(안)'을 발표했다. 국무총리실을 비롯해 환경부·지식경제부·국토해양부·농림수산식품부 등 14개 정부 부처가 주관하고 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KEI)·에너지경제연구원·국립기상연구소 등 15개 연구기관이 참가했다.


윤종수 환경부 기후대기정책관은 이날 "이 안을 기후변화에 적응해 나가기 위한 기본계획으로 발전시켜 나갈 것"이라며 "빠른 시일 내에 예산 등 사항을 포함시킨 세부 실천계획을 내놓겠다"고 말했다.

이번 계획안은 △온실가스 감축산업 활성화 정책의 실효성을 높이고 △기후변화 영향에 적응하는 과정 역시 산업화해 새로운 경제적 기회를 창출하겠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관계부처 갈등 때문에 적응 계획의 주요 축인 '에너지' '도시계획' 등 분야가 미흡하다는 지적이 잇따른다.

애초 '2030년까지 기후 관련 신산업 매출을 국내총생산(GDP) 대비 1% 끌어올리는 방안을 공개할 것'이라는 정부의 발표와 달리 '에너지' '국토·도시계획' 등 부문 내용이 부족해, 적응 기본계획으로서 면모를 갖추지 못했다는 비판이다.

◇2012년까지 기후취약성 요소 파악



이번 계획에는 2012년까지 한반도 시공간적 취약성 지도를 완성하는 등 기후변화 적응 역량을 강화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이에 따르면 정부는 △2013년까지 기후변화가 육상·담수·연안 생태계와 생물종 변화에 미치는 영향에 대해 파악하고 △2020년까지 해양변동 관련 장기 모니터링 시스템을 구축하며 △내년부터 기후변화가 어린이·노인 등 취약계층에 미치는 건강영향 및 전염병 감시체계를 세운다는 방침이다.

또 2030년까지 자연재해 피해를 1996~2005년 피해규모(17조7000억원) 대비 10% 줄이겠다는 내용 역시 이번 계획에 포함됐다.



이를 위해 정부는 △2018년까지 한반도 및 주변국가 생물자원 확보 △2011년까지 수자원 장기종합계획을 수립해 안정적 용수공급 시스템 구축 △2015년까지 기존 댐 안정성 확보방안 마련 △2012년까지 지역별 홍수위험지도 제작 등 생태·국토 보전기반을 조성할 예정이다.

이외에도 △2012년까지 '폭염 건강경보 시스템 구축, 재해지역 건강관리 프로그램 개발·운영 △2010년부터 도시 폭염피해 예방계획을 도시개발계획과 연계 △내년까지 기후·사회구조 변화에 따른 재난발생 메커니즘 규명, 방제대책 마련 등 보건·방재 계획도 추진한다는 방침이다.

◇제조업 내용 全無, 에너지·산업분야 내용은 1페이지도 안돼



한편 이번 계획에는 제조업에 대한 내용이 전혀 들어있지 않다. 서비스 산업에 대한 부분 역시, 탄소를 가능한 한 적게 배출하는 방식으로 여행을 한다는 '생태관광' 관련 개념이 일부 들어 있을 뿐이다.

에너지 부문 적응대책으로 제시된 것 역시 '기후변화 대응 효율적 수급관리 체계를 구축하겠다' '에너지 공급시설의 안정성 확보방안을 도출하겠다' 등 구체적인 추진 과정은 전혀 제시돼 있지 않은 상태다.

190여 계획이 소개됐지만, 이를 추진하기 위한 예산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어떤 부문에 얼마나 투입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나와 있지 않다.



이번 계획안 작성에 참가한 한 관계자는 "연구기관들이 합동으로 190여 세부 계획을 짜서 정부 부처에 제안하고 정부 부처가 초안을 보완하는 형식으로 이번 계획을 작성했다"며 "지경부 등 관계부처에서 초안의 상당 부분을 빼주길 바랐기 때문에 이 부분 계획이 부실해졌다"고 토로했다.

이날 지정토론자로 참석한 임상수 대한상공회의소 연구위원은 "예상과 달리 에너지 부문과 서비스 산업 부문이 적어 아쉽다"며 "선진국들이 제조업 중심의 우리나라를 부러워한다고 하는데 적응대책에서 제외돼 있다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이같은 비판에 대해 이민호 환경부 기후변화협력과장은 "적응 계획을 내놓은 나라가 영국·미국·캐나다·호주 등 일부 국가에 국한돼 있는 만큼 우리나라가 일찍 대응에 나서고 있다"며 "비판이나 지적을 받은 점에 대해선 지속 보완해 내년엔 기본계획다운 계획을 정식으로 내놓을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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