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급보증·예금보호, 우리는 왜 안하나

머니투데이 이학렬 기자 2008.10.14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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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 "극단적 상황 아니고, 안좋은 신호 될 수 있다" 판단

- 美·유럽 등 은행거래 지급보증·예금보호 확대
-"문제는 달러경색… 기업 신인도엔 문제없어"
- 외국과 같은 뱅크런도 아직 안나타나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 은행간 거래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 예금에 대한 무제한 보호 등 고강도 금융안정 정책이 쏟아지고 있다. 우리나라도 각종 금융안정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미국이나 유럽보다는 강도가 약한 편이다. 우리나라가 은행에 대한 지급보증과 예금보호라는 고강도 대책을 내놓지 않는 이유는 뭘까.



◇선진국, 은행간 대출보증·예금보호 조치 내놓아=월스트리트 저널, 블룸버그 통신 등 미국 주요언론들은 14일 조만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가 예금보험 한도를 더 늘리고 주요 은행들이 발행한 채권에 대해 지급 보증을 해주겠다고 발표할 것이라고 보도했다.

이에 앞서 유로존 15개국 정상들은 파리 엘리제궁에서 회의를 개최, 은행간 대출에 대한 보증을 실시키로 했다. 독일은 5000억유로를 지원하고 프랑스는 3600억유로를 투입하는 등 유럽 각국은 은행간 대출을 보증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을 쏟아붓기로 했다.



정부가 은행간 대출을 보증하려는 것은 '빌려간 돈을 못 갚을지도 모른다'는 은행간 상호불신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현재 위기의 본질이 '신뢰'이지 '돈'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정부의 예금보호 확대도 전세계적으로 퍼져나가고 있다. 일본 재무상은 "필요한 경우 모든 은행 예금의 지급을 보장하겠다"고 밝혔다. 인도네시아는 정부의 예금보호 한도를 종전의 20배로 대폭 늘렸고 아랍에미리트연합(UAE)도 모든 국내 은행예금을 보증키로 했다.

이에 앞서 유럽과 호주도 모든 은행 예금에 대해 지급보증을 해주기로 했다. 호주는 모든 금융기관의 고객예금에 대해 향후 3년간 지급보증키로 했다. 포르투갈은 구제금융 펀드와 예금보장을 위해 200억유로를 투입키로 했고 아일랜드는 유럽 나라에서 처음으로 은행의 예금과 채권에 대한 보증을 약속했다.


◇우리나라는 왜 안하나=반면 우리나라의 금융위기에 대한 대처방법은 다른 나라에 비해 소극적인 편이다.

자금조달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중소기업에 대한 금융지원이나 외화유동성 공급 등 금융 혼란을 줄이고 금융위기가 실물경제에 전이되는 것을 차단하기 위한 조치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강정원 국민은행장은 "해외 달러 차입 자금에 대한 정부의 지급보증이 필요하다"고 밝혔지만 정부는 신중한 입장이다.

정부가 대출보증이나 예금 보호를 하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그 정도로 국내 상황이 심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의 대출보증에 대해 "유럽의 일부 국가들이 하기로 했는데, 아시아 국가들은 그럴 필요까지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재정부 관계자는 "금융기관이 달러를 못 빌리는 것은 신인도의 문제가 아니라 달러경색 때문"이라며 "정부가 지급보증을 한다고 해서 달러경색 문제가 풀리지는 않는다"고 말했다.

지난달 정부가 외화표시 외국환평형채권을 발행하지 않은 것도 정부의 지급보증이 달러조달과 큰 관련이 없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정부가 보증하는 외평채를 투자자들이 사지 않은 것은 가격이 맞지 않아서였기 때문이다.

예금보호 확대도 시기상조라는 입장이다. 강 장관은 예금보호 관련해서 "예금자보호법 한도 상향도 뱅크런이 있을때 하는 것인데, 아직은 그런 상황이 아니다"고 말했다.



외국의 경우 금융기관이 넘어가냐 마냐 하는 상황에서 뱅크런 가능성이 우려되나 우리나라는 높은 수익률을 쫓은 자금이동은 있을지언정 예금인출 사태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정부의 지급보증이나 예금보호 조치가 시장에 괜한 오해를 줄 수도 있다. 특단의 대책은 시장에서 그만큼 상황이 안 좋다고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주 전세계적인 금리인하에도 불구하고 금융시장이 큰 폭으로 요동친 것도 같은 이유다.

재정부 관계자는 "상황이 나쁘지 않은데 정부가 나서서 지급보증 등을 한다면 상황이 더욱 악화될 수 있다"며 부작용을 우려했다.



이밖에 상황이 심각하지 않은 가운데 국회 동의를 얻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정부가 은행의 대출을 보증하려면 국회의 동의가 필요하고 예금보호 한도를 높이려면 예금자보호법을 고쳐야 한다.

경제 상황이 심각해지면 국회의 동의가 어렵지 않겠지만 미국 구제법안이 한때 하원에서 부결됐듯이 정치권의 동의를 구하는 일이 만만한 일은 아니다.

신민영 LG경제연구원 금융연구실장은 "정부의 지급보증이나 예금보호는 극단적인 경우에나 가능하다"며 "현재 우리 상황은 미국과 같은 최악의 상황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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