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금지, 교각살우의 우는 피해야

박영암 , 시장총괄 데스크 2008.09.30 11:42
글자크기

[마켓와치]공매도도 운용전략…공매도의 긍정적 측면도 인정해야

공매도 금지, 교각살우의 우는 피해야


미국에 이어 영국 호주 대만 한국 등에서 공매도 규제조치를 잇따라 내놓던 지난 9월하순. 최근 시장상황에 대해 얘기를 나누던 한 외국계 자산운용 사장은 잇단 공매도 규제조치가 중세의 ‘마녀사냥’을 연상케 한다고 말했다. 공매도가 주가하락의 주범인 양 제재를 가하는 것은 본질을 벗어난 처방이라고 지적했다. 공매도에 대한 과도한 제재는 자본시장의 효율성과 안정성을 해칠 수 있다고 우려감을 나타냈다.

물론 그도 현상황을 '100년만에 오는 금융위기'라고 인정했다. 이런 상황인식에 따라 4개월전부터 헤지펀드 등 외국계 펀드에 대한 대주를 중단했다. 신용경색으로 미국계 헤지펀드가 잇따라 청산되면서 거래상대방 위험(Counterparty risk)이 감내할 수준을 넘었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신용경색이 해소되면 재차 대주거래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그는 공매도에 나서는 헤지펀드나 이들에게 주식을 빌려주는 기관이나 모두 시장질서의 틀에서 움직인다고 강조했다. 헤지펀드는 시장상황과 무관하게 절대수익을 추구하기 때문에 하락장에서 공매도 전략을 채택하고 이를 성공적으로 달성하는 것이 고객에 대한 의무라는 설명이다. 반면 이들에게 주식을 빌려주는 기관입장에서도 대주를 통해 추가수익을 추구하는 것도 자연스런 행동이라고 얘기했다.

공매도 담보비율 확대는 시장상황에 맞게 탄력적용
지난 24일 금융위원회는 공매도제도 개선방안을 발표했다. 그동안 국내에서는 '네이키드 숏셀링'(보유주식없이 매도)을 금지하고 있어 큰 문제가 없다는 입장에서 한발 물러섰다. 이번 개선조치로 공매도 담보비율은 기존 100%에서 140%로 늘어난다. 공매도 비중이 높은 종목은 10거래일 동안 공매도가 금지된다.



금융위 개선방안과 별개로 국민연금은 대주 서비스를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주가하락을 부추기는 공매도를 예방하기 위해 주식을 빌려주지 않겠다는 취지다. 8월말까지 1조5000억원 어치의 주식을 빌려준 국민연금이 대주중단을 선언하면서 외국인과 국내 기관의 공매도는 사실상 불가능하게 됐다.

이같은 조치에 대다수 국내증권사는 긍정적 반응을 보였다. 그동안 공매도로 적정가치 이하로 떨어졌던 주식들이 반등할 수 있다는 기대감에서다. 특히 국민연금 등에서 주식을 빌려 공매도에 나섰던 외인들이 이들 물량을 다시 매수(숏커버)하면 시장반등을 이끌 수 있다는 전망도 내놨다.

개인적으로도 이번 금융위의 발표는 시의적절하다고 본다. 미국에서도 100년만에 발생하는 금융위기라고 인정하는 상황에서 이번 조치는 적어도 투자심리 안정에 기여할 것으로 믿는다.


특히 기관들도 공매도 결제능력을 확인하겠다고 한 대목은 높게 평가할 만하다. 사실 개인투자자들과의 형평성 차원에서도 기관들의 공매도 결제능력을 진작부터 강화했어야 했다. 외국인과 국내기관이 우월적 정보를 이용해서 자유롭게 네이키드 숏셀링을 활용하는 것은 시장경제원칙에도 어긋난다.

다만 이번 개선조치로 공매도의 긍정적 측면까지 부정될까 염려된다. 공매도는 합리적인 주가 형성과 유동성 증가에 기여한다. 역사적으로 펀더멘털보다 비정상적으로 주가가 급등했을 경우 ‘거품붕괴’에 베팅하는 공매도 투자자들은 항상 존재했다. 공매도 증가는 시장에 ‘고평가 신호’를 보내 가격조정을 가져온다. 또한 롱/숏 등 다양한 투자전략을 통해 새로운 투자기회 제공과 유동성 증가라는 순기능을 담당하고 있다.



국민연금이 주식대주 중단을 발표했지만 사실 장기투자기관 입장에서 공매도는 유용한 수익원이다. 공매도 세력에게 주식을 빌려주는 대가로 소정의 수수료를 챙긴다. 이같은 수수료는 '금융상품 가격인하'를 가능케 한다. 21세기 최고의 금융상품이라는 ETF(상장지수펀드)가 저렴하게 운용될 수 있는 것도 바로 대주수수료 덕분이다. 최근 변동성 장세의 유력한 투자수단으로 인기를 끌고 있는 ELW(주식워런트증권) ELS(주가연계증권) 등도 공매도가 있어 가능했다.

이처럼 공매도는 시장의 안정성과 효율성 제고, 새로운 투자기회 제공이라는 긍정적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주가하락 주범이라고 일방적으로 매도당할 이유가 없는 셈이다. 실제 공매도가 주가하락의 주범이라는 주장도 논란의 대상이다.

이번 개선조치가 시장안정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금융감독당국의 공매도에 대한 인식전환이 필요하다. 무엇보다 140%로 높아진 담보비율은 향후 '거래상대방 위험' 감소와 함께 하향조정돼야 할 부분이다. 담보비율을 교조적으로 적용하기 보다는 신용위험에 맞게 운영하는 것이 시장친화적이다. 또한 특정종목을 10거래일동안 공매도 금지하는 조치도 향후 유효성을 검증할 필요가 있다.



요즘처럼 변동성이 큰 장에서는 매수 일변도의 전략으로는 더 이상 고객자산을 안전하게 지켜주기 힘들다는 기관투자가의 하소연은 절박하다. 공매도를 활용해서라도 고객자산을 불려주겠다는 그들의 선의를 폄하할 필요는 없다. 그런 만큼 공매도는 운용전략의 하나라는 사실을 금융감독당국이 담대히 받아들였으면 한다.

(이 글을 표출하기 직전 금융위는 올연말까지 공매도 자체를 전면 금지를 발표했다. 전일 미의회의 구제법안 부결여파로 한국을 비롯한 글로벌 증시가 패닉상태에 빠지자 시장안정대책의 하나로 올연말까지 공매도를 금지시켰다. 하지만 공매도 전면금지라는 사상 유례없는 조치가 주가급락을 막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