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KO후폭풍]손실기업, 구제 가능한가

더벨 이승우 기자 2008.09.26 13:55
글자크기

⑥오버헤지 기업 구제가 최우선 돼야

편집자주 KIKO 통화옵션의 악몽이 시작됐다. 환헤지 상품시장의 최대 히트작 KIKO에 가입한 기업들이 헤지는 커녕 엄청난 환손실에 떨고 있다. 심지어 파산에 직면하는 곳까지 생겼다. 독이 될 수 있는 상품을 무리하게 팔아온 은행의 장삿속과 근시안적인 전망으로 안이하게 환위험에 대처한, 또는 불나방처럼 투기에 뛰어든 기업의 합작품이다. KIKO 통화옵션의 실태와 피해사례를 통해 향후 대책을 모색해 본다.

이 기사는 09월26일(13:49) 머니투데이가 만든 프로페셔널 정보 서비스 'thebell'에 출고된 기사입니다.


KIKO와 PIVOT 등 외환 파생상품에 가입한 이후 환율 급등으로 손실을 보고 있는 기업들에 대한 구제가 현실화될까. 글로벌 금융시장이 불안한 가운데 은행권으로까지 손실이 전염되는 것을 차단할 필요도 있다.



기업들이 금융감독원에 민원을 제기하며 시작된 은행과 기업간 KIKO 분쟁 1라운드는 은행의 승리로 끝났고 법적 소송이라는 2라운드가 펼쳐지고 있는 와중에 정책 당국이 다시 가세했다.

정책당국, 다시 가세..'3라운드'



사실 정책당국은 그동안 제 3자의 입장이었다. 박병원 청와대 수석은 최근 한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KIKO 문제를 직접 거론하며 "이는 은행과 기업이 알아서 해결할 일"이라며 정책적 해결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했었다.

하지만 태산엘시디 사태가 벌어지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정치권을 포함 재정부와 한국은행, 금융위원회 등 모두가 다시 가세할 가능성이 높아진 것이다. 이제는 3라운드다. 한은과 재정부는 상황이 어려운 중소기업에 대한 유동성 공급을 약속했다.

강만수 기획재정부 장관은 지난 24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에서 "(키코 피해 기업들에 대해) 사계약 차원을 넘어서 위기관리 차원에서 이번 주부터 정부가 본격적으로 대응하기로 했다"고 말했다.


강 장관은 "키코 관련 원리금에 대해 리스케줄링(채무재조정)과 같은 조치를 취하고 해당 은행의 유동성에 문제가 생기면 한국은행이 지원하겠다"는 뜻까지 밝혔다. 실무적으로도 KIKO 기업에 대한 준비 작업이 이뤄지고 있는 것으로 관측되고 있다. KIKO 계약을 외화대출로 전환할 경우, 은행권의 달러 부족을 감안 정부는 외국환평기금을 외화자금시장에 푼다는 계획도 이미 발표했다.

최종국 기획재정부 국제금융국장은 "외국환평형기금을 활용해 다음달초까지 최소한 100억달러, 필요하면 그 이상을 스왑시장에 공급할 것"이라고 말했다.



재정부 한 고위관계자는 "KIKO 문제를 포함한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이 계획되고 있다"고 밝혔다.

기준이 모호하다

하지만 문제는 있다. KIKO 손실 기업에 대한 구제를 하게 될 경우, 어떤 기업을 살려야 할지에 대한 기준이 모호하다는 것이다. KIKO에 가입한 모든 기업을 구제해야 하는건지, 구제한다고 하면 어떤 방법이 돼야 하는지에 대해 정책 당국자 뿐 아니라 전문가들도 그 해법에 대해서는 손사례를 치고 있는 것.



우선 파생상품 거래로 입은 손실을 만회해 준다는 것 자체가 금융 거래의 안정성을 훼손하는 행위로, 이는 불가능해 보인다. 어떤 파생상품이라도 이익을 내는 쪽이 있으면 손실을 보는 쪽이 있는 게 당연한데 그 손실을 만회해 준다는 건 금융 거래의 근간을 흔드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일부에서는 KIKO 손실 기업만 구제해준다는 것은 정치적 결정 이상도 이하도 아닐 것이라는 비아냥 섞인 이야기도 나온다. 선물환 매도로 헤지를 해놓은 기업들도 환율 급등으로 손실이 많이 났는데 이에 대해서도 구제해줘야 하는 게 아니냐는 것이다.

이 같은 상황 때문에 정책 당국도 그동안 고민에 빠졌었다.



금융위 한 관계자는 "은행에 대한 현장 조사 등으로 KIKO 거래에 대한 공정성 여부에 대한 판단은 이미 끝났다"고 말했다. 공정거래위원회가 불공정 행위가 아니어서 은행과기업간 분쟁은 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은행과 기업의 계약 자체가 문제가 될 수 없고 또 해결의 실마리가 아니라는 것.

손실 기업을 어디까지 한정할 것인지도 난제다.

이 관계자는 "KIKO에 가입한 기업 전체를 구제할 것인지 오버헤지를 한 기업을 구제해야할 것인지 솔직히 이에 대한 판단은 너무 어렵다"고 털어놨다.



금융위는 일부 기업만 골라서 하는 선별적 지원을 강구하기도 했다. 최근 이창용 금융위 부위원장은 'KIKO가 아니었으면 문제가 없었을 것으로 보이는 기업에 대한 선별적인 지원'을 언급했다.

오버헤지 기업, 구제 최우선 순위돼야

최근 정부의 KIKO 대책은 KIKO에 한정되지 않는 전체 중소기업 대책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높다. 물론 무게가KIKO 손실기업에 실리는 형태다.



기획재정부 한 고위 관계자는 "장관이 밝혔듯이 중소기업 전체에 대한 지원이 필요하다는 데에 공감대가 형성되고 있다"며 "부동산 PF와 KIKO 등 유동성이 부족한 중소기업 전체를 망라한 지원책이 나올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하지만 구제 기업에 대한 우선 순위를 명확히 하고 구제 방법이 구체적이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태산엘시디와 같은 오버헤지된 기업 중 외화가 부족한 기업에 우선적으로 구제의 손길이 가야 한다는 것. 오버헤지 기업은 KIKO 만기가 도래할 경우, 급등한 환율에 달러를 비싼 값에 사야 해 손실이 급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감안 은행권에서는 오버헤지 기업의 KIKO 계약을 대출로 전환해주는 방안이 강구되고 있다. 만기 이전 KIKO 계약을 청산하고 그 청산 자금을 대출로 바꾸는 것.



하지만 글로벌 신용경색으로 외화자금 부족 사태가 벌어지고 있어 국내 은행들에게 충분한 외화 공급이 이뤄질 필요가 있다. 외평기금의 스왑시장 지원이 바로 이 같은 상황을 감안해서 이뤄진 결정으로 해석되고 있다.

재정부 한관계자는 "추가 외화 대출을 해주면서 통화옵션을 청상하는 식의 처리가 가장 타당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금융감독당국은 KIKO 손실 기업 지원을 은행에 종용할 것으로 보인다. 하나은행과 같이 기업 손실이 은행에게 바로 전가되는 일이 발생, 금융권 건전성 훼손에 대해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기사의 관련기사

TOP